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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아저씨... 안녕히 가셔요

늙은 소녀 조회수 : 4,347
작성일 : 2013-04-29 07:22:37

내가 중2때

아저씨는 (경북에서 제일 유명한)상고졸업 후 막 은행에 취업하신 때

나이를 계산해보니 나와 7살 차이인가 보다

 

그때 그런 감정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숙집에서 그 아저씨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었다

 

그때 친구의 얘길 들어보면 아저씨는 내 친구들에게 맛있는 짜장면도 사주셨다 하고

대학생이었던 아저씨 친구 전언에 의하면 일기장이나 낙서에 내 이름을 긁적이셨다 하고

내 이름으로 적금을 들고 있더라는 하숙집 주인 아줌마의 순박한 표정도 떠오른다

대구의 중앙통에 있던 그 은행에 퇴근 무렵 찾아가서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도 있고

하숙집에서 단체로 놀러가면 아저씨는 나를 중심으로 열심히 샷터를 눌러 주셔서

지금도 흑백사진으로 그때의 기록이 있다

 

곧 하숙집을 옮기면서 나는 그 아저씨를 잊고 지냈고

서울로 진학해 명동을 누비던 소위 명문대의 용모단정하던 나는 충분히 그럴만 했었나 보다

결혼에 실패하고 가족과 사회에서의 아픔에 만신창이가 되었던 중년의 어느 날

문득 아저씨가 궁금해서 그 은행을 통해 수소문 해보니

예전의 그 반듯하심으로 지점장으로 계셨고 퇴임하신 후였다

 

한번 차를 마시며 하숙집 식구들 안부를 궁금해 하던 것이 재회의 전부였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 안부 문자를 가끔 주셨고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피하고

서로의 가정에 대해서는 모른 체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좋은 분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중에

그저께 소천하셨다는 급보를 받고 오늘 발인...

참 맑고 따뜻하신 분이셨고 그저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의 의지가 되었었기에

반백의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몇 자 쓰고 싶다.

 

눈물도 흐르고 안절부절하는 며칠을 보내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만큼의 핑계로 그저 몇 만원 계좌이체한 걸로 이제 내 마음을 추스려 담아야 하나보다

내 마음속엔 언제나 중2 (나름 모범생이었지만) 외롭던 시절의 .... 아저씨

65세 너무 일찍 ... 원망스럽습니다

IP : 58.225.xxx.26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13.4.29 7:26 AM (211.178.xxx.78)

    그아저씨와 결혼안하길? 잘하셨어요.물론 너무 앞서갔지만.
    넘 일찍 과부됐을뻔..나이도 7살이나 차이나는데..

  • 2. 윗님
    '13.4.29 7:31 AM (58.225.xxx.26)

    긴 글 읽어 주시고...
    친절한 댓글 감사합니다

  • 3. 아련한 추억을
    '13.4.29 7:31 AM (116.120.xxx.67)

    현실로 한퀴에 가져와 버린 첫댓글님...
    당신이 bbㅎㅎㅎㅎㅎ
    요즘 세상에 너무 이른 연세에 가셨네요.
    반듯한 분이셨다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 4. 마음아프네요
    '13.4.29 7:32 AM (2.217.xxx.65)

    .... 목마와 숙녀라는 시가 문득 떠오르네요..
    삶은 아름다운 시절에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 채 흐르고
    그 라일락 이파리 같은 여리고 고운 기억에 기대어 남은 생을 지탱해가는 때가 있는 듯 합니다..
    그래도 꽃은 피고 해는 뜨고 또 남은 사람은 살아야겠지요.. 힘내시고 아름다운 날들로 이어가시길 바래봅니다

  • 5. 원글
    '13.4.29 7:48 AM (58.225.xxx.26)

    아련한 추억을...님
    내 마음이 아파서인지 어떤 댓글이든 눈물 한바가지네요

    마음아프네요...님
    목마와 숙녀
    명동을 누비던 시절
    박인희선배의 낭송으로 즐겨 듣던 시.....

    감사합니다

  • 6. * * *
    '13.4.29 7:51 AM (122.34.xxx.218)

    그 어떤 소설 한 귀절 옮겨오신 줄 알았어요.

    저도 어슴푸레 남은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여섯살 소녀일 적
    놀이터에서 만난 고등학생 오빠....
    (당시엔 남고생들은 교련 바지를 입었는데
    그 오빠의 바지에 있던 얼룩 무늬로 추정해서는....)

    늘 제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자기 친구들도 데려와 소개시켜 주고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코믹한 장면이죠.. 6세 여자 친구.. ㅎㅎ)

    과자나 빙과류를 사서 손에 쥐어 주고...
    그네 밀어주고...

    그게 전부였는데.. 오후마다 놀이터에서 만나
    저를 홀린 듯 바라보던 그 오빠가 문득 문득 생각나더군요..

    요샌 세상이 험해
    제 아이에게 그렇게 접근(?)하는 고교생이 있다면
    제가 놀라서 쓰러지겠지만....

    넘 순수함으로 남아 있는 존재에요...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결국 결혼을 10살 차이 남자와 했나봐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

    어쩌면... 이 지옥같은 한국에서 떠나
    멀리 멀리 저 평안한 차원으로 일찍 가신 건...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인연있는 사람들은 다음 生에도 어떤 인연으로든 만난다니..
    추억하며 기다리세요.....

  • 7.
    '13.4.29 8:20 AM (110.70.xxx.200)

    원글과 함께 아름다운 댓글들이 비오는 이 아침 제 심장을 말랑말랑하게 하네요..

  • 8. 유지니맘
    '13.4.29 8:32 AM (203.226.xxx.50)

    부디 좋은곳에서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원글님도 건강하시구요

  • 9. 내일도 햇살
    '13.4.29 8:39 AM (114.202.xxx.86)

    아,,
    목마와 숙녀를 떠올리는 분도 게시고 ,,
    전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이 떠오르게 하네요

    수채화같이 아스라한 이 계절,, 그 분 좋은곳으로 가시길 바라며
    님 또한 그 기억과 추억의 힘(?)으로 더 예쁜 삶을 살아가실거예요

  • 10. 추억..
    '13.4.29 8:47 AM (121.160.xxx.1)

    한때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수 있죠.. 저도 그래요. 우리 가끔 그때의 감정, 기억들 꺼내어보면서 남은 삶도 행복하게 살아내보아요

  • 11. 사람이
    '13.4.29 8:54 AM (221.151.xxx.168)

    인품이 좋은 사람이든, 능력이 좋은 사람이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저는
    슬프다는 감정보다는 '사람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덕이든 능력이든
    좋은 걸 가진 사람들은 좀 더 오래 살아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고 갔음 좋겠는데 안타까와요...

  • 12. ㅇㄱㅇ
    '13.4.29 9:00 AM (117.111.xxx.102)

    아련한 추억에 눈물짓게하는 글이네요..
    현실을 떠난 마음의 노스텔지어라고할까요..
    좋은곳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 13. 늙은 소녀
    '13.4.29 9:51 AM (58.225.xxx.26)

    어쩌면... 이 지옥같은 한국에서 떠나
    멀리 멀리 저 평안한 차원으로 일찍 가신 건...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네,맞아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네요
    내가 행복할땐 잊고 지내다가 외롭고 우울하니 떠올린 이기적인 나도 스스로 비난하고요

    .. 점 두개님
    아름답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쓰면서도 눈총 받을 면도 있지 않을까 한편 조심스럽기도 했답니다

    유지니맘님
    익숙한 닉네임
    사실 저도 오래 묵은 회원이랍니다

    내일도 햇살님
    피천득의 인연
    연초에 주위에 감사의 선물로 성의표시를 한 적이 있는 책이네요

    추억님
    오늘은 이곳에서 내내 서성일 것 같습니다

    사람이....님
    사람의 호불호가 상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좋은 분이셨기에 더 아쉬움이 큽니다

    ㅇㄱㅇ님
    서툰 표현에 공감해 주셔서 ....힘내겠습니다

  • 14. //
    '13.4.29 2:20 PM (211.209.xxx.95)

    사람 하나 좋았던, 친구로는 좋았던, 그러나 남편이었던 그를 저도 얼마전 보냈어요.
    젊고 능력있는 아깝다는 소리 다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장례식에서 그를 그리며 우는 친구들을 보며(저도 좋아하는 친구들입니다)
    문득 살아있는 허망한 육체가 죽은 허망한 육체를 슬퍼하네.
    싶더군요. 산 것이 죽은 것에 비해 꼭 좋지만도 않잖아요.
    인생은 고행이라 착한 사람들 세상에서 더 힘들까 일찍 데려간 것일거다 말도 안되는 위안 하고 있어요.
    너무 슬퍼하지만 마시라구요.

  • 15. 늙은 소녀
    '13.4.29 4:05 PM (58.225.xxx.26)

    산 것이 죽은 것에 비해 꼭 좋지만도 않잖아요...그렇지요

    나이 들어 한번밖에 뵌적이 없어서
    인터넷상에서 이곳저곳 검색해서
    그 모습을 떠올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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