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사람인지 문득 궁금해 집니다.
요즘 하는 장.옥.정 드라마 유.아.인이 넘 멋져서
계속 보고있는데
문득 숙빈이 나름 떡대있는 무수리였다가
오로지 착한 성품만으로 빈이 되었다고만 알았는데
아들을 내리 셋 나을정도면
희.빈.의 미모에 버금가는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네요..
드센 여자에 치인 숙.종.이 안식할수 있는
편안한 성품? 처세술?
역사를 잘아시는분 계신지..
있는 사람인지 문득 궁금해 집니다.
요즘 하는 장.옥.정 드라마 유.아.인이 넘 멋져서
계속 보고있는데
문득 숙빈이 나름 떡대있는 무수리였다가
오로지 착한 성품만으로 빈이 되었다고만 알았는데
아들을 내리 셋 나을정도면
희.빈.의 미모에 버금가는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네요..
드센 여자에 치인 숙.종.이 안식할수 있는
편안한 성품? 처세술?
역사를 잘아시는분 계신지..
무수리였다는 기록은 없다고 하네요. 다만 추측하건데 무수리가 아니었을까? 정도인건 지밀나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전에 역사이야기에서 소개된 바로는 인현왕후 복원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맞는것 같아요
그걸 누가 알까요. 다만 장희빈 인현왕후와는 다르게 외척이나 당파 같은 정치색이 덜했을테니 숙종에게는 그게 장점이였겠죠. 실제 역사로는 승은상궁이였다가 아들 낳고 바로 빈이된 명빈박씨 아들을 가장 사랑했다네요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가..무수리보다 더 낮은... 즉 무수리의 빨래를 해주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책엔 숙빈 최씨가 궁내에 살지 않고 궁밖에서 궁으로 들어와서 빨래를 하던... 그만큼 신분이 비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영조가 피해의식도 좀 있었던것 같고...
대신 숙빈 최씨가 그만큼 건강하고 식생활도 서민적이라.. 아드님이셨던 영조도 건강했다고...
참..윗 댓글중에 연잉군이랑 같이 살지 못하게 한게 아니고...
아마 훗날 영조가 되시는 연잉군도 대군으로 아마 궐밖에서 사시다 임금이 되시면서 궁으로 들어간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조선시대 임금중에 제일 검소하게 지내셨다네요.
이용한거죠 실지로 무수리가 아니라 인현왕후 측근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숙종은 인현왕후 측 견제 하기 위해 장희빈 이용하고 장희빈 세력을 견제 하기 위해 숙빈 이용하다
장희빈 죽고 바로 숙빈 팽하고 궐밖으로 보냈어요
http://potatobook.tistory.com/453
장옥정 첫회에 어린 최무수리 등장에서
그 영악함을 잠깐 드러냈었죠.
숙빈이 머리가 좋았다면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지 말고 계속 밀당 하며 시소를 탓다면 아마 끝까지 궁에 남아 있었을거라는
말도 하더라구요
제가 어떤 방송에서 봤는지 책에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숙빈이 결혼을 한 번 한 과부라는 설... 천한 태생때문에 영조가 컴플렉스에 시달렸다는 ....
무수리의 빨래를 해주던....
무수리가 궁녀의 빨래를 해주던 직업입니다.
말이 와전 된 것 같아요.
무수리여서 신분이 천해서 이런 말이 있지만 궁녀도 딱히 신분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궁녀는 궁안에서 살고 무수리는 출퇴근을 하므로
그래서 숙빈이 무수리라는 설엔 숙종의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게 나중에 영조때 나주벽서사건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소론과 경종의 왕비는 영조가 숙종의 자식이 아니라 김춘택의 자식이라고 믿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역사는 잘 모르지만
여기 저기 읽은 느낌으론
숙종이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세 여인을 이용했다는 것 뿐입니다.
근데 하도 뒤치락 엎치락해서 왕권 강화를 해도 이상하게 해서
나중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게 만들었죠.
숙종이 연잉군을 홀대하다니요??
대신들 반대를 무릅쓰고 세자인 세자인 윤(경종)과 함께 세자가 받는 수업을 받게 했는걸요.
세자가 병약하고 후손이 없는데다가 연잉군의 총명함을 알고 숙종이 세자의 후사로 정한거에요.
숙빈 최씨처럼 미천한 신분이 아닌 후궁이 낳은 다른 왕자들이 있었는데도요.
숙종 아들 셋...막내는 20살 때 죽고
경종때 후사 없고, 동생이라곤 연잉군 밖에 없는 상태였음
숙변 최씨 어떤 매력?
숙변최씨가 뭐지? 약인가?
매력? 약효가 좋은가? 생각하며 들어온 나는 누구?
여긴 어디? - -;;;
아.. 저 요즘 왜 이러죠? ㅠ.ㅠ
ㅋㅋ
동이 그 드라마가 숙빈 최씨 이야기였죠?
그때 들리던 말로는 진짜 사랑한 여자였다. 죽을때까지...그런 자료도 있다 했었는데...
헐 꾸지뽕나무님 잘 못 알고있으심~~숙종이 숙빈 죽고나서 장지자리도 안잡아주고~~공주들의 묘가 있는곳에 묘자리을 잡으려했다가 장지을 올린 신하가 파직되었고 두번째로 감히능히 보이는 곳에 묘을 잡으려한다고 그에 또 화을내었습니다~또한 일반백성으로 취급하는 발언까지 실록에 기록되어있죠..숙빈의 묘는 영조가 직접 구한 것입니다~숙빈은 희빈사후 이현궁으로 나가 살다가 영조가 출궁하는 숙빈죽기7년전에야 같이 사는걸 허락받았죠~이현궁은 도로 환수시키고여~후궁에게 줬던걸 도로 빼았을 정도면 숙빈이 숙종에게 지대로 미움받은걸로 보여집니다~희빈에 일에 너므 나선것이 문제였지 않을까합니다...아님 서인에 뒤에있어서 숙종이 냉대했거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