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부모님, 연세가 많긴 하세요.
저는 아직 30대 중반에 아기 키우고 있는데,
결혼을 늦게 하시기도 했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셔서 엄마 60대 후반, 아버지 70대 중반이세요.
두 분을 모시고 이번에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려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네요.
아버지는 대화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 이야기에요.
뭐 저희랑 공감대 형성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아서 그러시겠지만,
음식 이야기도 온통 불만... 저희가 어딜 모시고 가서 식사 대접을 하면,
이건 죄다 수입산이다, 이건 조미료를 엄청 쓴다, 이건 옛날 맛이 아니다, 하여간 요즘 식당들은 어쩌고...
한식은 죄다 잔반 재활용한다, 중국집은 불만제로 보니까 사먹을게 못되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불평불만이세요.
그럼 그런 음식 사드리는 저희 입장이 뭐가 되나요.
게다가 무슨 날 한 잔이라도 술을 안드시면 큰일나요. 언젠가 별미 사드린다고 인도음식점에 모시고 가는데,
거긴 술을 따로 안판다고 했더니,
검은 비닐봉지에 소주를 숨겨오셔서 컵에 따라 드시길래 정말 기함한 적 있어요. 남편 보기 민망해서요.
담배도 하루에 반갑 이상 피시는게, 아기가 뒤따라 가는데도 앞에서 담배 피시면서 가시고
게다가 저희 남편은 담배에 아주 치를 떠는 사람. -_-
여행 다니면서 또 얼마나 남편 눈치를 보게 될까요.
그리고 저희한테 금전적으로 해주신 것 없어도... 저는 그걸 한 번도 탓한 적 없는데...
부모님께 할 도리는 다 하려고 노력하는데...
쓸데없이 돈쓴다고 나무라시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물론 딸 내외한테 미안해서 그러시는거 잘 아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지,
단 한 번이라도 그냥 고맙다, 이렇게 잘해주니 참 좋구나, 선물이 멋지다 라고 해주시면 안되는지.
"쓸데없이" "낭비하고" "이따위 것에 돈을 허투로" 쓴다고 맨날 짜증섞인 말씀을 백 마디씩 하시니,
진심은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짜증이 확 나네요.
여행도 당장 내일모레인데, 오늘 안부전화 드리니 다짜고짜
"야! 낼모레부터 일주일 내내 비온댄다, 당장 취소해버려라. 무슨 날짜를 잡아도 그렇게 잡냐"
이러시니 정말 미치겠어요. 정말 취소하고 싶더라고요.
이번 여행 제일 가고 싶어하시는 분이 저러니까요...
엄마도, 매사 어른스럽게 결정하시는 것 없이 쩔쩔 매는 모습 너무 속상해요.
저희 가족이 친정 들러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늘 쩔쩔...
"맛있게 하려고 했는데 맛이 너무 없어서..."
"이 반찬을 어떤 그릇에 담아야하지 도대체 마땅한게 없어서..."
결혼하고 5년동안 단 한 번이라도 이 말씀을 안하시는 걸 본적이 없어요.
게다가 사위한테 아직도 반말을 턱턱 못하시고, 말씀을 늘 "네"와 "응"의 중간 발음을 하세요.
남편이 어머님, 어쩌고 저쩌고 하면 "에응" 이런 식으로 대답을-_-;;;;;
손녀랑 좀 시간을 보내달라고 부탁해도 (정말 어쩌다 한 두시간)
도대체 어떻게 놀아줘야되나 쩔쩔쩔.... 멍하니 바라만 보고 계시죠.
재력이나 명예 따위를 떠나서
나이가 들수록 평소의 생활 습관이나 언행이 그 사람을 빛낼 수도 있고, 빛바래게 할 수도 있구나를
서글프게도 저희 부모님을 보면서 느끼네요.
깔끔하지도 못하셔서...
친정에 아기를 잠시도 맡길 수가 없어요.
제가 3월 초에 중요한 일이 있어 아기를 친정에 이틀 재웠는데,
그 때 아토피가 재발되어 친정만 갔다하면 얼굴이 울긋불긋해져서 오네요.
여기저기 먼지 투성이에 목욕도 안하는 강아지... 집에 밴 개냄새, 몇 달이 가도 빨지 않는 이불...
그에 반해 저희 시어머니는 정말 깔끔하고 당당하시거든요.
아기랑 하루종일이라도 놀아주실 수 있고,
정말 애가 시어머니만 있으면 저를 안찾을 정도니까요.
내가 한 이 음식 맛은 없어도 몸에는 좋을거다! 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것도 보기 좋고,
집은 얼마나 깔끔하게 정돈해두시는지... 가구 구석구석 어디 먼지 한 톨 없고...
연세는 우리 어머니랑 동갑인데 말이죠...
아 여행가기 싫어요...
남편이 천사같은 타입이라 장인장모님이 그러셔도 허허실실 넘기면 고맙기라도 하겠지만,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닌지라, 인상 빡빡 쓰며 저 눈치보게 하겠죠.
다 떼놓고 혼자 가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