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50중반입니다.
작년 결국 남편의 오랜 바람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렇게 뒤통수 맞듯이 이혼을 했어요..
퇴직금으로 당분간 지내고 있는데 인생이 불안하고 요즘 들어 더 우울해져
자주 눈물을 흘립니다.
전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지만 아이들과의 교류가 지금은 제생활의 전부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나가야 하는데 ... 이런 대책없는 마음으로 시계만 쳐다보고 누워만 있다 보면
어느샌가 하루가 끝나가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 네이버 기사 읽기가 좀 까다로워져 다음을 찿게 되더군요.
보통 대문기사만 보고 나오는데 어제는 웬일로 로그인을 했습니다.
메일도 많이 와 있고 쪽지도 많이 와 있더군요.
대부분 상업적인거라 삭제하려고 전체 삭제하기를 누르는데 가장 최근에 온 쪽지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단체가 아닌, 사람 ㅡ 이 보낸듯한 쪽지였어요.
"혹시 오래전 제가 아는 ㅇ ㅇ ㅇ 선배 아니신지요.."
선배(저)와 함께 ㅇ 교회를 다녔던 ㅇ ㅇ를 기억하느냐는 내용이었어요.
교회에서 한 남자선배로 부터 " ㅇㅇ이는 길가면 아는체를 못하겠다. 항상 땅만 보고
다른 사람들을 안보는것 같다" 는 말을 들었는데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면서도 사람들을
잘 못알아봐서 나름대로는 실수안하려고 사람을 잘 보지 않는 제 행동이 그 당시에는 여학교에서
유명했던 남학생 하나도 알지 못하는 순수하고 착실한 제 모습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관심있는 남학생은 있었지만 그런 내색은 해본적도 없이 학생회 활동은 열심히
했었습니다.
남학생중 유독 기도를 잘 하는 한학년 어린 남학생이 있었어요.
모범생이었던걸로 기억되는데 저한테 좀 쌀쌀함이 느껴질정도로 단 한번도 제게 개인적인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도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요즘과 달라 그때는 연상연하 이런 개념자체가 없었고 그런 감정은 생각조차 못했던때였습니다.
단지 제가 무슨 일이 있거나 전달 사항이 있어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때 유난히 무표정하고
제가 좀 민망할정도로 반응이 차가웠다는것.. 그런 느낌을 그아이에게 받았었지만 워낙 그 아이가
준수했었고 (제 기억에) 모범생이라는 생각과
어쩌면 저렇게 기도를 잘 할까.. 책을 많이 읽었나 보다.. 라는 생각을 매번 느끼게 해 줬던 아이,
그 정도였습니다.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저도 잊어버린 제 기억들을 고스란히 얘기하며 쪽지를 보낸 사람이 아마도
그 후배인것 같았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동문회까페에서 제 이름을 보고 반가워 쪽지를 보낸다 하며 행복하시지요?
하고 끝말을 대신했더군요.
그 이름을 기억한적도, 단 한번 생각한적도 없어서 누군가 얘기 했다면 절대로 생각도 못했을것 같았어요.
그런데 단 몇줄로도 오래전 이미 지워지고 그 교회를 떠난 이후 단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그 이름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살았던곳은 지방 소도시였는데 가까운곳에 해수욕장이 있었습니다.
교회 수련회로 2박 3일인가 .. 교회에서 수련회를 갔던적이 있습니다.
낮에 잠깐 수련회갔던 교회 한 문간방에서 잠을 잤었나 봅니다.
잠결인데 누군가 아이스케키를 살짝 놓고 가는게 느껴졌어요.
일어났는데 그 아이스케키를 누가 두고 갔을까..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하루종일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스케키를 놓고간 누군가를 절대로 알아내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저에게 그 어떤 암시의
눈빛이나 표정한번 보낸적이 없었습니다.
그 날밤 달빛을 맞으면서 쪽배를 타고 밤바다를 유영했던 생각이 제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단 한편의
수채화였습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기억. 제 옆에 아이스케키를 두고간 사람은 누굴까...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했던것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스케키의 기억은 제 일생 아름다운 수국처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어제밤 그쪽지에서 아이스케키의 향기가 느껴졌어요.
그러나 제 착각일수도 있을거에요.
ㅇ 이는 그때 저에게 무척 차갑고 말 한마디 하지 않던 그런 녀석이었으니까요..
솔직히 그 아이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후배남학생은 다른사람일수도 있구요.
그런데 저에게 떠오르는 유일한 사람이네요.
그 때 그시절이 그립네요.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던 함박꽃같았던 그 풋풋한 어린시절..
영어선생님이 너무나 사랑(?)해 주셔서 온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나서 선생님 피해 다니느라
고생했던 그시절이 지금 너무나 그립네요.
가슴에 모래알이 쌓여 가끔은 너무 쓰리고 아픈데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준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
내게도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있었구나..
오늘 아침 또 교회를 못 갔네요.
언젠가는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조는 날이 오겠지요.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산다는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