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조반(初朝飯)
궁중에서는 아침 수라가 10시경에 드시므로 보약을 드시지 않는 날에는 유동식이며 보양이 되는 죽·응이·미음 등을 이른 아침에 드린다.
아침 일찍 드시는 조반이므로 초조반 또는 지릿조반이라 하고 정리의궤에서는 죽수라 라고 칭하였다.
궁중에서는 죽은 아플 때 먹는 것이 아니고 초조반 또는 낮것상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죽으로 흰죽 잣죽 낙죽(酩粥;우유죽) 깨죽 흑임자죽 행인죽 등을 올린다.
미음으로 차조 인삼 대추 황률 등을 오래 고아서 밭친 차조 미음이나 멥쌀만을 고아서 밭인 곡정수 (穀精水), 찹쌀과 마른 해삼 홍합 우둔고기를 한데 고은 삼합미음 등이 있다.
응이에는 율무응이 갈분응이 녹말응이 오미자응이 등이 있다.
초조반상은 죽이나 응이나 미음 등 유동식이 주식인 상으로 찬품이 아주 간단하다. 죽상을 차릴 때는 죽 미음 응이 등을 합에 담고, 따로 덜어먹을 공기와 수저를 놓는다.
찬품으로는 어포 육포 암치보프레기 북어보프레기 자반 등의 마른찬을 두세 가지를 차리고, 조미에 필요한 소금 꿀 청장 등을 종지에 담는다.
김치는 국물김치로 나박김치나 동치미가 어울린다. 죽상에 놓는 조치는 맑은 조치로 소금이나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춘 찌개이다.
(2) 수라상
밥에 대한 표현이 받은 이의 위상(位相)에 따라 밥 진지(進支) 메 수라 등으로 각기 다르게 부른다.
임금님의 진지는 '수라(水剌)'라 하는데 이는 우리 고유의 말이 아니고 고려 말 몽고의 부마국(駙馬國;사위의 나라)이던 시대에 몽고어에서 전해진 말이다. 조선조 궁중 에서는 이 말이 전하여져서 임금과 왕비가 평소에 받는 진지상을 수라상이라 하였다.
수라를 드시는 것을 '수라를 젓수신다'라고 하여 '진지를 잡수신다'보다 더 높여 올려서 표현한다. 왕자나 왕녀에게는 진지라 하였다.
궁중에서는 이른 아침에 보약을 드시거나 또는 미음, 응이를 드시고 아침수라(朝水剌) 는 10시가 지나야 드시고 저녁수라는 저녁 5시경에 드신다.
평상시의 수라상은 수라간(水剌間)에서 주방 상궁들이 만들어 왕과 왕비께서 각각 동온돌과 서온돌에서 받으시며 결코 겸상을 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왕족인 대왕대비전과 세자전은 각각의 전각에서 따로 살림을 하며 거기에 딸린 주방에서 만들어 올린다.
수라상에 올리는 찬물은 왕의 침전과 거리가 떨어져있는 수라간에서 만들어서 지밀에 부속되어있는 중간 부엌의 역할을 하는 배선실(配膳室)인 퇴선간에서 일단 받는다.
퇴선간 에서 식은 찬물들을 덥히고, 수라를 곱돌솥이나 새옹에 백탄을 피워서 짓어서 상을 차려서 올린다.
㉮ 수라상의 찬품(饌品)
평소의 수라상은 12첩 반상차림으로 수라와 탕을 두 가지씩과 기본 찬품과 쟁첩에 담는 12가지 찬물들로 구성된다.
기본음식으로 수라는 백반(白飯)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두 가지을 수라기에 담고,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을 두 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리어 그날에 따라 좋아하시는 것을 골라서 드시도록 준비한다.
조치는 토장조치와 젓국조치 2가지 을 준비하고 찜 전골 침채 3가지가 기본 음식이다.
그리고 상위에 놓이는 조미품으로 청장 초장 윤집(초고추장) 겨자집 등을 종지에 담는다. 쟁첩에는 12가지 찬물을 다양한 식품재료로 조리법도 각기 달리하여 만든다.
㉯수라상의 기명(器皿)
수라상은 큰 원반과 곁반인 작은 원반과 책상반의 3개 상에 차린다.
대원반은 붉은색의 주칠(朱漆)을 하고 중자개로 문양을 넣거나 다리에 용트림 장식이 조각되어있다. 대원반은 중앙에 놓이며 왕이나 왕비가 앉아서 드시는 상이다. 곁반으로 소원반과 네모진 책상반이 쓰인다. 책상반 대신 때로는 둥근 소반을 쓰이기도 한다.
찬물을 담는 그릇은 철에 따라 달리 쓴다. 추운 철인 추석부터 다음 해의 단오 전까지 는 은반상기(銀飯床器)를 쓰고, 더운 철인 단오에서 추석 전까지는 사기(砂器)반상기를 쓰고, 수저는 연중 내내 은수저가 쓰였다.
(참고문헌)
황혜성,
1. 궁중 음식 여성동아 1971
2.한국요리백과사전 삼중당 1976
3.한국의 미각, 궁중음식연구원 1971
4.김용숙의 조선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1987
5.한국고전연구회 편 한중록 시간과 공간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