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사정을 말하자면 길어요.
11년 전 엄마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그후 몇년이 지나고 아버지는 저랑 제 여동생의 동의를 구하고는 재혼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당시 저는 20대 초반이고 동생은 19살..
받아들이자고 했던 약속과는 달리 어렸던 동생은 많이 삐툴어져 나갔죠..
그 후 제 여동생은 저와 아버지께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어요.
지금 저는 결혼한지 7년이 되었고 그 사이 두아이 엄마가 되었는데.. 제 딸들은 제 동생 얼굴 한번 못봤어요.
저희 신랑도 그렇고..
새엄마가 성격이 좋게 해주면 좋고.. (정말 제가 많이 맞춰드리려고 노력했어요. 상처주는 말도 많았는데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가슴 쓸어내리고 말았죠..) 질투도 많고 샘도 많은 분인데.. 그건 상처가 많은 분이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상처가 많았던 제 동생과는 서로 맞추고 살기가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아버지랑 새엄마랑 같이 살던 동생은 독립을 하게 되었어요.. (같은 건물로) 그 후 저는 제 남편 만나 결혼을 했어요.(결혼식 당일에도 제 동생은 오지 않았어요) 동생은 가족들과 접선 조차 싫어해서 집에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전화번호 바꾸고는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아서 직접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저도 제 아이들을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처지라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자주 찾아가기도 힘들었구요. 그러다보니 못본지 7년이 넘었네요..
새엄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 성격이 불같고 어렸을적부터 워낙 속썩였던 일이 많아서 17살 때부터 아들과도 따로 살았다 해요. 그런데 서른넘은 아들이 이제는 엄마가 그리운지 아버지랑 사는 집으로 작년 초부터 들어와서는 같이 살자고 했나봐요. 새엄마도 아들이 많이 그리웠겠죠.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불편해 진건지.. 불필요해진건지.. 아버지에게 제 동생 때문에 같이 못살겠다고.. (같은 건물에 살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이혼을 요구하셨고 아버지도 이제는 그 사이에서 지쳤는지 알겠다고 하고는 어제 이사를 하셨네요. 물론 동생도 같이 이사를 해서 이제는 아버지랑 동생이랑 같이 살게 됐어요.
처음 아버지가 이렇게 결론이 났다고 조만간 이사할꺼라고.. 지난달 전화왔을때에는 가슴이 무너지는거 같았어요. 아버지가 또 상처를 받으셨겠다라는 생각과 그럴꺼면 뭐하러 재혼을 해서 동생 마음만 틀어지게 했을까라는 생각부터 여러가지 생각때문에 며칠동안 가슴에 돌덩어리가 내려 앉은 듯 답답했었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동생도 점차 마음의 문을 열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되고..
시어머님께도 이렇게 됐다고 말씀드리니 시어머니도 차라리 잘됐다고 하셨어요. 안그래도 이런 결론이 나오기 며칠 전부터 시어머니가 아버지를 네가 모시고 사는게 어떻겠냐며.. 새엄마에 대해 신뢰가 안간다고 심각하게 말씀하셨었어요.
(새엄마는 60세 정년퇴직때까지 집안일을 거의 안하고 사셨데요. 회사에서 아침점심 해결하고 반찬 사서 저녁 드시고 하셨데요. 그러니 주방일은 60 되시도록 거의 전무하신거예요. 아버지 만나셨을때가 57세 정도 되셨을때인데..
퇴직하시고는 아버지가 강원도에 농사 좀 지으려고 사두셨던 밭이 있었는데 허리를 다치셔서 그 밭을 쓰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새엄마가 퇴직하자마자 그밭 가꾸시고. 2년 지나고는 그 주변에 관광시설이 들어선다고 시에서 사갔나봐요. 그러자 새엄마는 다른 지방에 땅을 사서는 가꾸시고. 밭을 가꾸시면서 거의 지방에서 보내다보니 아버지랑 보낸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요. 겨울에는 서울집에 올라오면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시고.. 집에 붙어있지 못하는 성격이다보니 저희 시어머니가 보시기에는 늦은나이에 재혼하셨으면서 새엄마가 너무 바깥으로만 도는거 같다고 하셨었거든요. )
그리고 작년 명절부터는 아버지가 친정집에 저희 가족을 못오게 했었어요.
저는 일찍 결혼해서 자리 잡고 자식 낳고 잘 살고 있는데 새엄마 아들은 저보다 나이도 많은데 결혼도 안하고 있지.. 회사도 그저 그렇고 하니 저희 사는거랑 비교가 되었는지.. 새엄마가 오지 말라고 했다고. 이 얘기 듣고 저도 신랑도 많이 당황하고 기분도 나빴어요. 시댁이랑 5분 거리의 친정에 가보지도 못하다니.. 명절이 너무 외롭더라고요. 갈 곳없는 철새처럼.. 무엇보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당황하시고..(저랑 시어머니 관계는 친모녀처럼 좋아요. 그래서 저희 집안 얘기도 곧잘 하고 고민거리나 조언을 구할때에도 저는 시어머니를 찾아요. 현명하시고 다정하신 분이시거든요..)
며칠동안 가슴앓이 했었는데 이제는
아버지께 반찬도 해드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네요.
(제가 결혼해서 3년간 맞벌이하느랴 저희 집 반찬하기도 힘들었는데 둘째 임신해서 퇴사하고는 시간이 생기니 아버지께 반찬부터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 좋아하시는 깻잎절임 해갔더니.. 새엄마가 알아서 잘 해주고 있는데 뭐가 걱정된다고 이런걸 해왔냐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후로는 반찬은 안해갔었어요. 새엄마가 안좋아하는거 같아서.. )
반찬 목록에 조언을 구하고자 들어왔다가 주저리주저리 쓰게되네요.
이 이야기를 어디 털어 놓을 곳도 없다보니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82에라도 털어 놓으니 마음이 한결 좋아지는거 같아요..
눈물은 쓰윽~ 닦고.
서른 넘은 딸이 아버지께 제대로 반찬셔틀 해보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고혈압이 있으시고
동생은 웰빙음식을 좋아해요. 살안찌는 음식.
제가 대략 생각한 음식 목록은 이래요.
바지락 미역국
굴순두부찌개(이건 양념이랑 재료만 준비해서 미역국 다 드시고 나면 끓여서만 드시라고 재료만 싸가려고요~)
물미역+초장
무쌈말이
메추리알 장조림
단호박샐러드(요플레넣고)
김치찜(이건 예전에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인데 제가 엇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라서..)
1~2가지 정도 추가 하는게 좋을 거 같은데 뭐가 좋을까요?
제 푸념까지 읽어 주시느랴 고생 많으셨습니다~ ^^
가벼운 제목에 무거운 글이라 죄송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