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라는 말처럼 거센 반감을 사고 있는 용어도 드물다. 지난 10여 년 간 페미니즘 진영과 격렬한 논쟁을 벌여온 사람들은 결국 이들을 ‘꼴통 페미’라고 명명하고 등을 돌렸다,
이프의, 그리고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시대에 따른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노쇠한 페미니즘?’이라며 농을 던진다. “싸울 기운을 잃어버려서라기보다는 사회가 변한 까닭이 큽니다. 이런 사회의 변화에 따라 페미니즘도 ‘공격하는 페미니즘’보다는 ‘함께 하는 페미니즘’으로 변화해가고 있거든요. 남자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함께 가는 페미니즘을 지향해보자, 라는 게 새로운 이프의 가장 큰 변화일 겁니다.”
가부장 사회의 충실한 교육을 받아온 남성들이 이프의 급진적인 구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일면 당연했다. 여성 인권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고착화된 유교 논리는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빈번해지면서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고 있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가부장이 힘을 잃거나 구성원과 평준화되면서 사회 인식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예전에는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했어요. 우리가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데 ‘가해자’들 교육까지 해야 하느냐고(웃음). 그 당시는 여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그런 남자들에 대한 공격만으로도 페미니즘이 할 게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남자들하고 함께 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요즈음은 매맞는 남자들도 있고, 육아휴직하는 남편들도 있거든요.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 남자를 포용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같이 살겠다는 거죠, 남자와 여자가.”
가부장 사회에 대해 투쟁하는 ‘전사’의 이미지 대신, 이제는 남성에게 손을 내미는 페미니즘으로의 변화는 더 이상 반목이 아닌 상생의 길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이들 사이에 병역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군대 문제는 정치×종교 문제와 함께 사적 대화에서 금기시되는 토픽으로 꼽힐 정도지만, 정치×종교 문제가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병역 문제의 끝은 대개 여성 문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여기에 군 가산점 문제가 등장하면 양성의 감정싸움은 더욱 격렬해진다. 유 대표도 이러한 소모적 논쟁 구조에 목소리를 냈다가 오히려 더욱 불씨를 당기기도 했다.
“남자들의 불만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죠. 남녀평등의 입장에서 보면 군대는 명백히 불평등한 거에요. 이제 여자들도 군대를 간다고는 하지만 장교로만 지원하고 사병은 가지 않잖아요. 이건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이프에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가 여성들, 특히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난을 받았던 적도 있어요
북한의 핵 위기에서 군대와 생존이 등가적으로 다루어지는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더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아울러 페미니즘이 여성들만의, 그들만의 논의가 아니라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모든 소수자들의 삶의 목소리임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는 독자들의 단평은 그래서 의미있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 같은 ‘여성을 위한’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유 대표는 앞으로의 이프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이제까지 계속 해오던 작업을 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결국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간 선언이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의 눈길이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이 ‘이기적 취향’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