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m의 강풍을 타고 폭설이 몰아쳤다. 천지가 분간 안 되는 길 위에서 아버지는 어린 딸을 트럭에 태운 채 발이 묶였다. 구조를 요청했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걸어서 인근 집을 찾아가다가 눈 속에 파묻혔다. 아버지는 자신의 얇은 점퍼를 벗어 딸을 감싸고 숨진 채 발견됐다. 딸은 아버지의 품속에서 살아 울었다.며칠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늙은 아비는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어린 딸을 홀로 애틋하게 키웠다고 한다. 일찍이 여 시인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애인이 된다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딸에 대한 아비의 사랑이 극진하다.
한국 사회의 각광받는 대중문화도 ‘딸 바보’ 아비들이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여섯 살 지능의 바보 아버지가 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이야기다. 개봉 38일 만에 관객 1100만명을 넘어서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희생을 그린 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지난 주말 50%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과시하며 끝을 맺었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에는 고개 숙인 아버지를 다룬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슈퍼 밀리언셀러로 각광받았다. 조창인의 ‘가시고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개정판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다시 부각됐다.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이 알만 낳고 떠난 집을 지키면서 알이 상하지 않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기진해서 죽으면 새끼들이 몰려와 뜯어먹는 먹이가 되어준다.
아버지의 권위가 약화된 지는 오래다. 그렇다고 아버지들이 가장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다. 이즈음 다시 아버지가, 그것도 ‘딸 바보’들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는 이즈음 아비들, 정말로 눈물겹다. 다시한번 이땅의 아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