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 만학에 나선 인천 여성 노동자들의 큰언니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의 부인 김지선 씨는 정치인의 배우자가 아닌 여성노동운동가, 사회운동가의 족적만으로도 주어진 지면을 채우고도 남는다. 부모 고향은 북한 황해도지만 김씨는 대청도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고 2남 4녀 중 넷째이자 셋째딸로 자랐다. 인천송현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비인가 중학교 과정을 마친 16세에 신분을 숨기고 인천의 대성목재에 들어갔다. 어린 나이 때문에 취직을 못 하자 20살이던 언니 신분증을 내밀었다. 대학을 나온 한 노동운동가가 노동운동을 하던 김씨에게 “노동자가 된 계기가 뭐냐”고 묻자 “먹고살기 힘들어서”라고 짧게 답했다고 한다.이처럼 김씨는 생존을 위해 노동자가 됐고, 노동자의 권익을 찾고자 노동운동을 했다. 그는 1978년 CBS생방송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다 구속되기도 하고, 1983년 ‘인천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또 수감됐다. 이후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 등을 지낸 뒤로는 ‘인천 노동자들의 누나’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노 전 대표에게 두 번의 프러포즈를 받은 끝에 1988년 결혼했다. 이때 김씨 나이가 36세, 노 전 대표 나이는 34세였다. 늦은 결혼인 데다 수배 중이던 남편이 결혼 10개월 만에 붙잡혔고 2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때를 놓친 탓인지 슬하에 아직 자녀가 없다. 지금은 가정폭력피해여성 지원을 위한 상담활동을 하고 있으며, 풀뿌리 여성운동을 장려하는 모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김씨는 만학도다.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2004년 방송대 법학과에 입학, 2008년 졸업했다. 2009년에는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했으며,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김씨는 노 전 대표와는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고 밝혔다. “넉넉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사회 변화를 도모하는 활동을 하면서 내 자신도 함께 성장해가는 데 초점을 뒀고 많은 것을 얻었다.”정치인 배우자로 비쳐지기보다는 “인간 김지선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정치를 하는 노 전 대표에 대해서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정치적 신념이 강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노 전 대표가 국정을 이끌면 다른 정치인보다 ‘균형감각’과 ‘문화적 코드’에서 특별히 더 잘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여성 노동 운동의 대모격이라고 합니다.
가족 세습일지라도 진보정의당의 공천을 받을만한 인물이긴 하네요.
그리고 노원병은 18대에 홍정욱을 제외하고는 계속 야권에서 국회의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홍정욱이 당선된 18대에서는 민주당 한나라당 노회찬의원 3파전이었고 노 40% 홍 40% 민주 10% 대로 홍정욱이
당선 된 지역이네요.
인지도 면에서 안철수 후보가 더 낫고 살아온 인생은 둘다 존경 받을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