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의 자전에세이 <4001>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신씨가 기자 관리에 들인 공은 평균적인 인간관계 이상을 웃돈다.
그는 추석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기자를 위해 웃돈을 얹어 티켓을 마련해줬고, 친하게 지내던 여기자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명품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또, 여기자와 술을 같이 마신 날에는 아무리 멀어도 집까지 바래다줬고, 심지어는 대신 취재한 자료에 전문용어까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넘겨주기도 했다. 고향 청송에서 보내준 사과 40박스를 기자들에게 돌리거나 주부 기자들에게 참기름과 고사리 등 맞춤 선물을 따로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씨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정성을 기울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신경을 써주는 신씨에게 기자들이 호감을 가졌을 것은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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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가 본격적으로 신문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다. 큐레이터 경력 8년차이던 그는 국민일보와 서울신문에서 동시에 고정 칼럼 필진을 맡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에는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신씨는 당시 동국대 조교수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의 자리에 있었다.
조선일보도 그에게 미술전시를 소개하는 지면을 내줬다. 나중에는 아예 파격적으로 문화면 머리기사를 맡기기도 했다. 조선일보 10월 13일자에는 신씨가 서양의 유명미술관을 둘러보고 쓴 <도시 특성 살려 최고 미술관으로 거듭나다> 기사가 남아있다.
국민일보에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예일대 서양미술사 박사가 탄생한다는 인터뷰까지 실렸다. 2005년 5월 9일자 <큐레이터 신정아씨 “대중 사랑받는 미술관 만들게요”> 기사에는 신씨가 미국 캔사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공부하고 이 대학 대학원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전공했다는 내용, 그리고 국내 큐레이터로는 미술관련 외국박사 1호이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예일대 서양미술사 박사가 탄생한다는 내용이 확인 없이 실렸다.
동아일보도 앞선 5월 3일 <성곡미술관 신정아씨가 전하는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신씨의 예일대 박사학위 사실을 보도했다. 신씨는 언론을 통해 예일대 학력이 알려지면서 현장지식과 이론을 갖춘 인재로 서울대와 중앙대, 동국대 세 곳에서 동시에 교수자리를 제안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와 미술관에서 함께 일했던 한 직원은 언론인터뷰에서 “신씨는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교수가 될 거라는 얘기를 자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국 교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그의 허위 학력이 밝혀지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동국대 내부의 알력과 학위 검증과정에서 신씨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신씨가 자서전에서 차라리 작가를 선택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 이유다.
신씨의 학력 위조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검찰 수사내용을 통해 공개되면서 그와 친분을 유지했던 언론들조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문화일보가 신씨의 누드사진을 게재하는 무리수를 둔 것도 과도한 취재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씨는 자신의 사건이 학력위조 사건에서 정치적인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된 데에는 참여정부와 보수언론의 불편한 관계가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신씨와 변 전 정책실장의 관계를 대대적으로 파고 든 조선일보를 두고 한 말이다. 조선일보는 당시 신씨와 변 전 실장이 연인관계였다는 사실을 파헤쳐 삼성언론상 ‘뉴스취재부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보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모 기자가 얼마 후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면서 입방아에 올랐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뒤의 얘기지만 신씨가 지난 2006년 1월 12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 <미술 속의 자화상>은 마치 학력을 속이고 있던 신씨의 자기고백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노력으로 과연 진정한 ‘나’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봤다. 스스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니 나 아닌 무수한 얼굴들이 마치 퍼져가는 파문처럼 오버랩 돼 있음을 느낀다(중략). 나는 오늘의 시대극. 그 무대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기도하기도 한다. 나의 모습을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뭇관객들과 함께 발견하기도 한다. 나의 왜소한 몸뚱어리는 혹시 이들과 함께 시대극을 관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