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뭔가 좀 쏟아놓고 싶어서 영화 '늑대아이'를 봤는데 의외로 안쏟아지더군요..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근데 오늘 내딸 서영이 마지막 장면 보면서 쏟아졌네요..
저, 이 드라마 좀 띄엄띄엄 봤거든요. 근데 오늘 마지막 장면에서 서영이가 자기 트라우마를
쏟아냈을때,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더군요.
그 트라우마를 쏟아낼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오랜 세월 그 바위와도 같은 트라우마를 마음속에
넣고 살면서 살아왔을 그 세월이 한꺼번에 통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저도 형태는 다르지만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지긋지긋했던 아버지의 취중폭력.. 불행했던 어린시절...
오죽하면 아버지가 암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날에도 저는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했어요.
아니 오히려 너무너무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동네 애들을 불러모아놓고 야구를 했었지요.
아버지를 장시지내는 며칠동안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울고 있는 어머니 누나들을보면서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죠.
슬픈거야? 왜? 왜 슬픈거지? 난 미칠듯이 좋은데.....
그 아버지와 심정적으로 화해하기까지 그 후로도 20년이 더 넘게 걸리더군요.
이버지가 6.25때 총을 들었는 그리고 가장 살벌한 곳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사람이었다는것을
알고난 이후, 아버지를 심정적으로 용서했고 화해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용서고 화해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아버지한테 받은 트라우마가 폭력 한가지인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폭력만 극복하면 그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줄 알았고
군대에서 선임들에게 그렇게 맞았으면서도 저는 고참이 되어서 단 한사람의 후임에게도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폭력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아버지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는 폭력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근래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가정에 대한 좌절이더군요. 불행한 가정만 겪고 살아왔으니까요..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 폭력이 점철된 가정, 그 가정은 행복하지 못하고 와이프든 자식이든
그 구성원들을 아무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옥과도 같은 불행의 나락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어렸을때 가정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폭력과 불행한 가족이라는 두가지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 폭력이 친구들로부터 왔다면, 그 아이는 폭력과 단체생활 또는 사회생활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트라우마가
올 가능성이 큰것이겠죠.
나는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어.. 그래서 폭력만 극복하면 돼. 이 고리를 끊어야돼...
그래서 그것을 끊었는데, 그 폭력의 트라우마가 다른 곳으로 전이가돼서 다른곳에서 또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이 트라우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두사람밖에 없을정도로
트라우마는 내면적이고 폐쇄적인것 같습니다. 드러내기 힘듭니다.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이죠.
하지만 그 트라우마가 그 사람의 인생 전반의 저변에 흐르며 그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오늘 이곳 82에 저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털어놨으니 좀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지만
제가 오프에서 저 두 사람 앞에서 저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했을때 피와같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 생각으로, 적어도 가족끼리는 아니 적어도 부부간에는 이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알고 있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이 모든 기저에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바위같은, 천형같은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것이 맞을 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뭐라도 해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입밖을 꺼내는건 쉬운일이 아니고 고통과 인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것 또한 잘 압니다.
오늘 서영이가 자기자신이 가진 트라우마의 일단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와 안타까움 그리고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되더군요.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우리시대에 많이 끊어지고 극복되어서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고통의 트라우마대신
행복의 기억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서영아 그동안 힘들었지? 이제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