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친구가 지금 우울증이 깊은가 봅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이혼을 하고, 병을 앓은 지는 십여년 정도 되었어요. 저에게 많이 의지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친구인데, 사실 저도 애 키우며 살림한다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일년에 몇 번 연락이 닿는 정도였지요. (밑으로 글이 깁니다 ...)
워낙 말이 없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안하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어 좀 답답하기도 했구요, 저 뿐 아니라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거의 없어 지나가듯 스치는 말들로 전후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지요. 그래도 저보다 성적도 좋았고, 취직도 연애도 결혼도 먼저 한 친구라 잘 지내겠거니 했고, 실제로 제가 도움도 많이 받았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제가 그 도움 받고 고마워하는 걸 잘 모르나봐요. 제가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겠지요, 그리고 저의 상황들이 그 친구의 상황보다 낫다고 지내오는 대부분 그렇게 층을 지어 생각하더라구요. 가정 환경이라든가, 씀씀이라던가...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어떻게 단정지어 판단하기 힘들어서 그런가보다... 하며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어려서부터 친한 것도 아니고 대학시절에 만난 친구와 그렇게 속 깊게 사귀는 것도 제가 잘 할 줄 몰랐고, 그 전까지는 사람 사귀는 법도 잘 몰라 외톨이로 지내는 게 속 편하기도 했었어요. 나름 왕따의 기억도 있구요, 그래서 사람들과 허물 없이 터놓고 지내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저와는 그렇게 지내고 싶었나봐요. 근데 그게 좀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 시절에 재가 관심 가지고 하고 싶은 일들에 빠져 지내느라 그 친구가 바라듯 그렇게 좋은 단짝은 되어주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그 친구 아프고 나서 저에게 그러더군요. 그때 많이 서운하고 힘들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 사과했지요, 여러가지 상황들이 좋지 않은 시기에 놓였고,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에게 정말 미안하기도 했구요... 저도 결혼해서 이래저래 어렵게 지내던 시기라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는 않았어도 나름 최선을 다해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몇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사는 이야긴 그 당시 유행하듯 블로그에 올리고 아이 키우는 이야기로 채워가던 시기였으니 이혼하고 친정에 식구들과 지내는 친구에겐 마음 상할 부분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저 혼자 글 올리던 블로그에 어느날 이 친구가 찾아왔더라구요. 그렇다고 블로그를 안할 수도 없고... 그냥 그렇게 블로그로 서로 사는 이야기 보며 지냈습니다. 가끔의 만남에선 어쩐지 제가 좀 불편했어요. 오랫만에 보니 별로 할 말도 없었고, 제 가정사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아서 그게 신경쓰이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나만 사라지면..." 이런 뉘앙스를 보내기 시작하더군요. "그동안 고마웠다"고도 하구요. "올해가 가기 전에 널 볼 수 있을까" 뭐 이런 식의 표현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병이 깊어졌나 불안해서 이야기를 해보려해도 제가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많이 위로하고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만 했지요. 그러다가 또 조용히 몇달 소식 없다 뜬금없이 활기차게 연락도 하고... 그렇지만 어떻다고 제 속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사이 저희부부에겐 새로운 일이 생겨 저도 이제 같이 일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지방으로 이사도 했구요, 괜찮으면 와서 바람 쐬고 가라 하니 "내 방도 만들어줄거냐" 하길래, 오면 좋지 정도로만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상태가 좋아진다면 와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워낙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듯 해서요. 그런데 서서히 저에 대한 관심보다는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부분으로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가려하더군요... 좀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아마도 전처럼 '그 자리에 내가 있다면'라며 대입하는 병증이라 여겼지만, 제 마음도 불편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사는 게 팍팍해서 "너처럼 살면 좋겠다'는 말이 너무 싫더라구요. 아픈 친군지 알겠는데 더 받아주기에는 제 마음도 여유가 없더군요. 제 삶을 이상화시켜 자신을 폄하하기에 급급한 것도 너무 답답하구요, 병이 깊다고 참는데도 한계가 오더군요. 그래서 문자로 나도 살기 힘든데, 이렇게 사는 거 너무 부러워마라고 대상화시키지 마라고 퍼부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래? 그렇구나"하더니 몇 년을 연락을 안하더군요. 이제 그렇게 서로 뗴어내고 살겠구나 싶어 시원섭섭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동생에게 저에게 그랬듯 죽고 싶다고 하소연을 한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 동생이 저에게 도움을 청하더군요. 제가 안 들어주니 그 동생에게 그러는가 싶어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말하는 제 자신도 너무 밉고, 화는 나는데 받아줄 수도 없고 이래저래 그 친구만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습니다. 여전히 우울증 약은 먹는가 보던데... 그 동생도 아는 상황이 없더라구요.
그런데, 요즈음 그 친구가 다시 저에게 연락을 합니다. 사는 게 힘들고, 떼어내기 힘든 가장 잔인한 생각들이 괴롭힌다구요... 저는 어떡해야 할런지요. 그냥 생까고 모르는 척 받아주지 말아야 할까요? 늘 비슷한 패턴의 반복에 힘이 드는데, 그래도 그때(대학시절) 너가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며 압박을 해오면 다시금 죄의식이 듭니다. 화도 나구요, 세게 몰아치면 정말 세상을 뜰까도 싶고...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친구 이상하다, 너 잘못했다, 이렇게 몰아세우지 마시고 제가 그 친구에게 취해야 할 가장 현명한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도 제 마음을 달랠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