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도 거의 없지 싶네요.
10여년전...
아이도 어리고 뭐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네요.
그때 제가 사는 아파트 라인 반장이 60대 남자분이셨어요.
그 아저씨가 반장을 2년째하는 것을 보고 저희는 외국 갔다가 몇년만에 돌아왔는데 아직도 반장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귀국하고 몇달 뒤 그냥저냥 이야기하고 지내는 윗집 언니뻘 되는 분이 반장아저씨가 좀 이상하다며 반상회 때 정식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말하더군요.
거의 5년 이상 반장 일을 하고 계신데 반상회비 걷은 결산 회계를 한번도 안하셨다네요.
그 언니가 몇번이고 결산회계에 대해 물었고 답이 없어서 반장을 다른 분께 넘기라고 권유도 했다고 하더군요.
드디어 그 반상회 날.
일단 평소와 같이 인사하고 몇가지 전달사항이 전해지고 난 뒤 예의 그 언니가 조심스레 결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니
갑자기 그 반장 아저씨가 흥분을 하며 막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더군요.
맡겨놓았으면 믿어야지 이런 일이 어디있냐고....반장 절대 그만 안두겠다고.....
그러면서 봐라 하며 공책 하나를 휙 던지더군요.
그 언니를 비롯해서 몇명이 노트를 보는데 세상에 회계는 커녕 딱 그전달 반상회 회비 상황만 적혀있더군요.
사람들이 지나간 반상회비가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데
그 반장 아저씨가 갑자기 으윽 하더니 그냥 픽 쓰러지더군요.
다들 갑자기 생긴 일에 이게 무슨 일이지하고 멍해서 굳어져있는데 아저씨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더군요.
새파래진 입술...뻣뻣해지는 팔다리....무서웠어요...
저도 그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서 서서 보고만 있었는데
그 언니가 119 불러라... 아저씨 주물러라...막 지시를 하더군요.
제가 119 불렀어요.
바로 집앞에 길 건너에 소방서가 있어 출동은 빨랐는데
제가 아파트 현관에서 기다려 맞이하면서다시 한번아저씨 증세를 소상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구급대원은 아무런 장비도 챙기지 않고 맨손으로 올라가더군요.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같이 올라갔는데 아저씨는 축 늘러져 있고
구급대원은 눈동자를 확인하더니 대기하고 있는 직원에게 무전기로 침대를 요청하더군요.
인공호흡기도 달지않고 그냥 병원으로 출발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미 돌아가신 것 같아요...)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반상회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어버렸지요...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로 아저씨가 던진 노트가 한구석에서 딩굴고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어정쩡한 얼굴로 서로 쳐다만보고...
몇시간 뒤 그 언니랑 병원에 전화했더니 돌아가셨대요...
다음날 몇몇 사람들과 조문을 갔었는데 그 아저씨 아들이 저희들을 굉장히 원망하더군요.
그러면서 아저씨가 반장일을 하면서 문제가 되었던 반상회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사람의 죽음 앞에 돈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없는 셈치고 덮어버렸어요...
그 반상회 사건이후 우리 아파트 반상회 없애버렸어요.
그 와중에 그날 현장에 있었던 주민 중의 어느 아주머니는 남자 잡아먹은 독한 *들이라며 욕까지 하고 다니고...
다들 두문불출... 인생에 회의를 느낄 지경이었어요.
제 지인이 같은 아파트 살았는데 우울증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 후유증이 몇달간 지속되더군요.
누군가의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이었어요...
인간이 죽는 것은 참으로 한순간이구나하는 생각이 그 이후로도 계속 머리 속에 맴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