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두돌반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에요.
울 딸은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지만, 등원 전과 하원후에는 시부모님이 돌봐주고 계시구요. 시댁에는 대를 이어 어미-딸 식으로 키워오신 요크셔 강아지 두마리가 있어요.
언젠가 여기에 강아지 글을 올린적도 있어요. 엄마개 말고 딸 개가 자꾸 우리 아가 이불이나 옷 개켜놓은 것에 쉬를 해서 저걸 딴 집에 줘, 말어 하시면서 시아버지께서 분노하시고...저도 저걸 어쩌냐며 글 올린적 있었어요.
그로부터 몇달이 지났는데, 요즘은 그러진 않네요.
대신 우리 딸의 꼬봉이 되었어요. ㅎㅎㅎㅎ
딸이 리듬체조를 하겠다며 나무젓가락에 리본 매어 준걸 휘두르고 다니더니만, 요즘은 체조에 흥미를 잃고 그 리본달린 젓가락을 어깨에 얹고 '고기를 잡으러~바다로 갈까나~'하고 노래를 부르며 거실을 행진하면, 그 뒤를 강아지 두마리가 차례로 졸졸졸 따라갑니다. (아무래도 리본이 바닥에 끌리는 걸 따라가는 재미인 것 같아요.)
딸래미도 자기가 낚시 놀이 할때 멍멍이들이 안 따라오면 호통을 치구요.
"00야! **야! 빨리 따라와! 낚시 하러 가야지!" 하면서요.
여전히 예전처럼 강아지 밥그릇에 사료 담아 주는건 우리 딸 몫입니다. ㅎㅎㅎ
그때 82님들 말씀대로 작은 강아지 녀석을 다른 집에 보내지 않은게 잘 된 것 같아요.
암튼, 어제 있었던 일이에요. 저는 퇴근길에 시댁으로 바삐 가고 있었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시댁 아파트 단지 정문을 지날때즈음, 계속 통화가 안되던 신랑과 통화가 연결이 되어 전화를 하면서 걷느라 평소처럼 빠르게 걷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어요.
신랑 회사에서 어제 사고가 있어서 괜찮냐고 계속 얘기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왠 쪼끄만 개 한마리가 제 옆으로 오더니 제 발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거에요.
평소처럼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라면 관심도 없었을텐데, 전화 통화 끝내고 가방에 휴대폰을 넣느라 그야말로 몇초동안 서 있던 참이었거든요.
날도 어두컴컴하고, 뉘집 개인가 별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어째 개가 제 발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폼이 어디서 많이 본 폼이더라구요.
안아올리니 글쎄 시댁의 작은 강아지 녀석인거에요.
어쩌다가 혼자 밖으로 나와서 그 동도 아니고, 아파트 단지안을 혼자 배회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너무 놀라서 안아들고 시댁에 왔더니 안그래도 강아지 없어진걸 막 아시고 찾으러 가시려고 옷입고 계시더라구요.
알고보니, 딸이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장소가 제가 강아지를 발견한 그 자리였어요. 딸 데리러 나가실때 강아지 두마리가 항상 따라나가는데, 그 시간이 오후 세시 좀 넘었을 때라고 하시더라구요. 시어머니는 그러고 바로 손녀 씻기시고 저녁준비하시고, 시아버지는 손녀랑 놀아주시고 책읽어주시고 하시느라 강아지들이 당연히 둘다 들어왔겠거니 하신거죠.
한참 지나 저녁 여섯시 넘어서 울 딸이 강아지 사료를 담고는 강아지들을 불렀는데, 엄마개만 나오고 작은 녀석은 없었나봐요. 딸이 이 방 저 방을 다 돌아다니면서, 그 강아지 이름을 부르다가
"할아버지. **가 숨어버렸어! 맘마먹는 시간이니까 얼른 나오라고 해~"하면서 찾아내라고 야단을 떨길래, 소파 밑부터 베란다까지 다 뒤지시고는 진짜 집 안에 없는걸 아신거에요.
제가 데리고 들어온 녀석은 집에 오니 안심한듯, 왕성한 식욕으로 사료부터 삶은 계란까지 다 먹고, 딸래미가 까준 귤까지 드시더군요. ㅎㅎㅎㅎㅎ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 녀석이 그나마 어린이집 버스 서는 거기가 익숙했던 모양이라고, 거기서 배회하다가 저랑 마주쳤으니 망정이지, 날도 춥고 어두워지는 때에 단지 밖으로 나갔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하셨어요.
저도, 평소처럼 주변 안보고 엄청 빠른 속도로(저 혼자 걸을때 거의 경보하는 속도거든요. 특히나 아기보러 가야할때는 더욱.)걸었더라면 강아지 발견도 못했을 거에요. 하필 막 신랑이랑 통화하고 난 때라 막 멈춰선 그 몇 초 동안에 발견한 거니....어휴.ㅎㅎㅎㅎㅎ
암튼, 사고뭉치 녀석, 신년에 운수대통이었나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