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궁?
'13.1.28 2:48 PM
(175.200.xxx.190)
앗, 그랬군요.
그러면 그 첩에게 아이가 나오면 인정하진 않았나봐요? 1부 1처제라서요?
사실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절대군주제를 확립하고 매우 강력한 왕으로 알고 있는데
그 아버지인 루이 13세때도 왕의 권력이 막강했을텐데, 그러면 첩들도 많았을텐데
그 첩과의 사이에 후사가 없었나 싶기도 하고, 그냥 궁금해지네요^^;
2. 난봉꾼
'13.1.28 2:48 PM
(222.114.xxx.57)
헨리 8세 쳐보세요...
난봉꾼의 대표
3. 후궁?
'13.1.28 2:49 PM
(175.200.xxx.190)
헨리 8세의 경우에는 이혼이 안되니 종교까지 바꾸잖아요.
그럼 그게 모두 종교때문에 그런거네요..
교황의 인정을 받지 못하니 후궁을 들일수 없는..
4. **
'13.1.28 2:53 PM
(124.49.xxx.19)
-
삭제된댓글
일부일처제라서 후궁같은 건 없었구요, 정부가 있었어요,,보통 이런 정부들은 유부녀들이엇어요,
그래서 왕들은 정부들과 많이 놀아났어요, 루이15세 정부,, 퐁파두르부인이라고,,,아주 유명하죠,,
대부분 정부들이고 유부녀들이니 아이가 생겨도 왕의 자식이라고 증명할 길도 없죠,
5. 후궁?
'13.1.28 2:55 PM
(175.200.xxx.190)
ㅋㅋㅋ 맞네요. 영화보면 많이 나오잖아요. 무슨 백작부인이 왕의 정부이고..
그러니 그 애가 백작의 아이인지, 왕의 아이인지 알 길이 없고..
아예 왕비의 아이가 아니면 왕이 될수 없으니 그 정부들이 왕비의 자리를 넘보거나 자기 자식을 왕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없고 오히려 그래서 더 분란이 없었겠네요.
우리나라나 동양의 경우엔 왕의 아이만 가지면 자기가 권력을 얻고 아이를 왕 만드려고 난리가 많이 났으니까요 ㅋㅋ
6. 진홍주
'13.1.28 2:55 PM
(218.148.xxx.4)
왕의 권력의 크기때문에 공식적인 후궁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동양은 왕이 절대 권력이었죠....서양은 교황이 존재했어요 절대 권력을
왕이 독점 할 수 없는 그런 구조였죠...왕의 권력이 쎈 이슬람 문화권은
아예 할램이라는 왕의여인들의 처소 도 있을정도이고요
그래서 동양처럼 품계는 없었고...왕은 애인들은 여백작 여남작 같은....
지위를 준걸로 알아요.....공식으로 결혼한 부인의 자식만 후계권이 인정된걸로
알고요.
7. 그게요...
'13.1.28 3:07 PM
(121.190.xxx.230)
그 당시의 유럽에서는 왕은 거의가 다른나라의 공주와 결혼을했어요.
혼사 자체가 그 공주가 가져오는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막대한 딜이었죠.
루이 13세의 왕비도 스페인의 공주였구요.
우리가 잘 아는 마리 앙트와네트도 오스트리아의 공주였구요.
때문에...우리나라에서처럼 신하의 딸이 왕비가 되는 경우와는 많이 다르죠.
기본적으로 장인이 나의 신하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왕비가 아들을 못낳으면 후궁을 들일 수가 있죠.
하지만...유럽의 왕비는 다른나라의 공주구요.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후궁따위를 대놓고 맞이하거나 후궁의 아들에게 왕자의 지위를 주거나 하는 따위는 없었어요.
기본적으로 그당시의 유럽의 왕가는 거의가 한 핏줄로 연결되어있는 친척들이었어요.
왕가는 귀족들과 혼인을 거의 안했답니다.
아...그리고...영화에 보면 왕비의 시녀들이 나오잖아요.
그 시녀들도 다 귀족이에요.
우리나라처럼 천한 신분의 궁녀가 아니라...
자체높은 귀족을 딸들이 공주나 왕비의 시녀를 해요.
물론 아주 힘든 일들은 밑의 하녀가 하겠지만...
귀족집안에서 왕가와 친해지기 위해 딸들을 시녀로 많이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8. 흐흐
'13.1.28 3:13 PM
(210.219.xxx.180)
그 시녀들은 궁궐에서 파티하고 먹고 놀기만 햇을거 같네요.
지금의 이너서클같은 사교계 데뷰겸 해서요.
일은 하녀들이 하고..
9. opus
'13.1.28 3:20 PM
(124.243.xxx.151)
루이 13세가 게이였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안느가 불임이 아니라 루이13세가 불임이었던 말도 들었고요.
그리고 궁금해하시는 개념은 '애첩' 개념이 맞을 겁니다.
15세의 유명한 애첩인 마담 퐁파두르, 14세의 애첩인 맹트농 부인, 몽테스팡 부인 (이 몽테스팡 부인은 흑마술에도 가담해서 유명해졌죠)
10. opus
'13.1.28 3:22 PM
(124.243.xxx.151)
암튼 이 정부들이 프랑스 사교계의 꽃으로 문학, 미술, 조각 모든 예술의 패트런으로써 온갖 문화를 꽃피게 했다는 게 참 웃기죠.. ㅎㅎ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위말하는 '갈랑-갈란트' 문화는 거의 이 애첩들의 손에서 나오거나 결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1. 천일의 앤 영화가
'13.1.28 3:22 PM
(121.88.xxx.128)
그런 내용이 잘 나와있더군요.
왕족끼리 근친 결혼으로 주거턱이 많았다고하지요. 마리 앙투와네트도 주걱턱 이였다고해요. 티비 서프라이즈에서 합스부르크립이라고 나왔던거 같아요.
12. 네 맞아요
'13.1.28 3:28 PM
(121.190.xxx.230)
천일의 앤...
전 예전에 앤이 천한 신분의 시녀인 줄 알았거든요.
어찌 시녀따위가 왕비를 꿈꾸나 했었는데...
근데 그 당시 명망높은 귀족의 딸이더라구요.
그런 귀족딸들이 왕비나 공주의 시녀로 들어가고,
왕의 눈에 띄어서 정부가 되고 그런 인생을 사는거죠.
근데 앤은 정부가 아닌 왕비를 꿈꾸었구요.
13. 그래서
'13.1.28 3:34 PM
(175.201.xxx.93)
프랑스의 왕비로 시집을 갔어도 왕비의 본국쪽 후계자가 없을 경우 통치권을 이어받고
그게 결과적으로 프랑스 왕인 남편입장에선 왕비의 나라까지 꿀꺽할 통치권이 생기기때문에
보이지않는 알력다툼이 심했죠.
그런 식으로 왕가끼리 정략 결혼이 흔했기때문에 현재 왕의 자식이 없거나 죽거나해서 후계자가 마땅히 정해지지 않을 경우 공주 신분에서 각 나라로 결혼해서 나간 왕비가 된 여인들의 남편이자 자식들이 다 자기한테 통치권한이 있다고 아웅다웅.ㅋㅋㅋ
그리고 저런 식으로 돌고 돌면 근친 결혼이 결과적으로 늘어나면서 유전병이 왕자 공주들한테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혈우병 같은 거요.
남아 사망률이 높다보니 어릴 땐 일부러 여자옷을 입혀서 키우고요.(터부에서 비롯된 거죠)
그 당시 왕족들 초상화 보면 왕자여도 여자애처럼 입힌 초상화들이 많은 이유죠.
14. 그게 정부죠
'13.1.28 3:50 PM
(59.4.xxx.131)
공식정부는 따로 이름도 붙고 왕비만 아닐 뿐 왕비대접 받았어요.
애들도 권력에 참여하지 못할 뿐 대접받았고요.
유럽의 그런 풍습을 현대인의 관점으로만 보면 좀 곤란해요.결혼이란 국가간의 정략관계에 불과한 데다 서로간에 핏줄이 얽혀 있다 보니 외모 건강 등이 정상적이 않은 경우도 많았답니다.유명한 루이 14세의 부인인 스페인공주는 성장에 문제가 있었고요.왕비는 형식일 뿐 왕은 실질적인 결혼은 정부와 한 셈이예요.불쌍한 건 왕비뿐.그냥 형식적인 대우만 받고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쓸쓸하게 살았죠.
15. 커피향기
'13.1.28 9:52 PM
(58.234.xxx.18)
그래서 앤이 죽죠..
천일의 앤에서 앤이 이혼을 안해주자 누명?을 씌어서 사형시키잖아요
앤 다음의 후궁이 아들(왕이 그토록 원하던)을 낳자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줄려고 이혼을 종용하죠..
근데 앤이 자기딸에게 왕위를 물려줄려고
이혼을 거부하자 왕이 앤을 죽이잖아요..
16. ..
'13.1.29 1:43 AM
(58.235.xxx.30)
정말 다들 유식하세요.ㅡ82에 오는 이유 가끔 공부도 되서ㅡㅋ
17. 정부가 있으니 서자, 서녀들도 실제로 있었어요
'13.1.29 10:21 AM
(121.133.xxx.34)
하지만 왕위계승권이 없었다는 거.
영국왕 Charles 2세는 정식 왕비한테는 아들이 없고 Monmouth공작이라는 서자가 있었지만
사후, 동생인 James 2세가 계승, Monmouth공작이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는.
왕의 아들이니 공작으로 서임할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혼외자식에 불과하다는
아무래도 일부일처제의 기독교 영향이라고 해야할까요.
18. 알고보니
'13.1.29 10:51 AM
(121.134.xxx.102)
참 재밌네요..
역시 결혼도 파워게임이었네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19. 왕위계승권이 없었음
'13.1.29 1:15 PM
(183.97.xxx.44)
루이14세의 할아버지 앙리4세는 제가 알기로 애첩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56명이라던가? 그 중에서도 가브리엘 데스테레란 여자를 총애했고 애도 셋까지 낳았으니
곧 왕비까지 시켜주려고 했으나 네째아이가진 상태에서 죽었다고 해요.
(임신중독증이란 설과 앙리4세가 마리 드 메디치랑 결혼하려고 독살했다는 설도...)
그래서 앙리4세는 첩에게 많은 자식이 있었어도 후사는 정식 결혼한 마리 드 메디치가 낳은
루이13세가 이어받죠.
근데 왕위계승권은 없었어도 왕의 자식이라 지위는 뭐 보장 되었지요.
앙리2세의 애첩은 특이하게 앙리2세의 유모로 (애들 유모가 아니라 앙리2세의 유모)
20년 연상의 디안 드 푸아티에(전 남편은 39살 연상 참 위아래로 나이차가 ㅎㄷㄷㄷ)였는데
앙리2세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치가 둘 때문에 속을 많이 상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는 처음엔 왕비의 시녀인 발리에르 부인을 애첩으로 두었다가
나중엔 발리에르 부인의 시녀인 몽테스팡부인을 애첩으로 두게 됩니다. (예쁜 탓)
몽테스팡은 자기보다 예쁜 여자는 시녀로 두지 않았고 애들 유모도 절대 왕에 눈에 띄지 않을
맹트농부인(발리에르랑 몽테스팡은 유부녀였고 맹트농부인은 과부)을 유모로 두었는데
처음엔 루이 14세도 별로 관심도 없어하다가 맹트농 부인의 박학다식에 반해서 몽테스팡 부인을
멀리하고 맹트농 부인을 가까이 두죠. 왕의 사랑이 식자 몽테스팡 부인은 흑마술에 빠져서
결국 내쳐지게 되고 맹트농부인은 왕비는 아니지만 왕과 정식결혼까지 합니다.
맹트농부인은 왕이 자꾸 몽테스팡부인을 찾아오자 "왕이 되가지고 뻘짓하지 말고 니 마누라를 더 사랑해라"고 조언도 서슴치 않고 왕비가 죽은 후에야 정식결혼을 했고 왕의 자녀들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사랑했다고 합니다. 몽테스팡 부인이 발리에르부인의 자녀를 무척 미워했던(뭐 당연한 것인지도...)거랑 많이 비교가...
루이15세의 애첩은 유명한 퐁파두르부인이고 다음에 또 있는데 프랑스 혁명때 죽죠. 단두대에서...
퐁파두르가 아주 전권을 막 휘두르고 그래서 왕비의 자녀들이 퐁파두르를 무척 미워했다고 해요.
근데 우리나라 왕들도 자기나라 출신의 양반가문 출신의 여자들과 결혼을 해서 그렇지
그냥 출신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느정도 파워게임의 선상에서 맞추어 결혼하고 그랬던 걸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