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유일하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건 피아노 치기입니다;;
다른 업무는 뭐 그냥 현상유지에 급급 ㅋㅋ
살림은 개판 0.5초 전 ㅜㅜ
선생님에게 지적받는 매순간이 황홀할 정도로, 지금껏 나는 피아노를 칠 줄은 알았던가,
깎이고 깨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피아노는 '치는' 게 아니라
몸을 '쓰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는 혹은 시기마다 고전음악에 꽂히는 때가 오더라구요.
질풍노도의 시기엔 다 때려 부수며, 너 죽고 나 죽자~ 덤비는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인생의 고비마다 치유 음악 1순위는 메탈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제가 처음 용돈을 모아서 산 테푸(발음은 반드시 테푸!)는 빌헬름 켐프옹의
베토벤 소나타와 변주곡이 함께 수록된 테푸였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아, A면엔 유재하, B면엔 유열이 있던 복제 테이프였던가 갑자기 헷갈리네요~
저는 그저 서울 변두리 동네 골목에서 눈만 뜨면 고무줄을 하던 어린이였는데,
그 시절엔 그래도 동네 피아노 학원 정도는 꽤 다녔죠.
마~ 교육열 쎈데 살던 엄마 친구 아들은 윤선생 영어도 하고 소수는 현악기도 배웠지만ㅋ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전 학교 친구 어머니가 하시던 작은 피아노 교습소를 관두고
동네에서 제일 큰 학원으로 옮겼습니다. 작은 교습소는 동네 친구들이 많다는 점과, 위인전, 전래 동화 등
집에는 없던 책을 공짜로 읽을 수 있다는 점, 그 때 혼자 좋아한 동네 오빠를 훔쳐볼 수 있었던 곳이지만...
(글쎄, 그 오빠네 집까지 미행한 적도 있습니다. 스토커 첫 체험이랄까요.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요ㅋㅋ ㅎㅈㅎ 오빠 ㅋㅋㅋ)
새로 옮긴 학원에서 당시 40대 후반 정도 골드 미스 원장샘의 열성적인 지도로...
그러니까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건반을 틀리는 애가 있으면 머리를 막 쥐어 박아서
우리는 맞아가면서 눈물젖은 악보를 넘겨가며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아동인권 탄압인데
그런데도 꾸역꾸역 학원에 오는 애들이 참 신기했죠. 그나마 전 맞기 싫어서 잘치든 못치든
맞지는 말자, 열심히 쳤고, 허구헌날 얻어 터지는 애들을 보면서 나 같음 당장 때려쳤을 텐데 그런 생각했죠.
그렇다고 진짜 심하게 팬 건 아니고요, 엄지로 머리를 콩콩 쳤던 걸로 기억해요...
암튼 뒤라스의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 첫 장면처럼, 음을 틀리게 치는 걸 도저히 못 참는 히스테릭한
여자 선생님의 모습과 흡사했어요.
엄마들한테 물렁물렁하게 사람 좋은 선생님보다는, 엄하게 애들을 '잡는' 훈육형 교사가 은근히 인기가 있듯이
학원은 동네에서 규모도 가장 크고 연습을 많이 시켜서 인기가 많았어요.
좀 이상한 건... 아이들이 치는 오른손 멜로디를 원장님이 높은 옥타브에서 따라치는데
늘 원래 멜로디와는 다르게, 틀리게 쳤어요. '도레미'면 '솔파라' 이런 식으로.... 딱히 3화음도 아닌 것이 요상하게.
대신 노래는 아주 잘하고 학원 발표회에서 합창대회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척 높았던 것으로 보아
이 분도 성악과였던가;;;
학원에 오시는 레슨 샘은 지금 생각해 보니, 음대생이었는데 저에게는 진짜 이쁘고 우러러 볼 대학생 언니였죠!
학원 홀에는 원장님의 자랑인 '쭐'리어드 출신의 여조카가 호루겔 콩쿨에서 타온 호루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그 여파로 '쭐' (반드시 쭐이라고 해야함)리어드는 세계 최고의 음대!로 기억
이전 학원에서는 피아노 배우는 건 시원찮아도 좋은 책을 많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요즘으로 치면 월간 피아노나, 객석 같은 음악 잡지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 잡지에는 사실 기사는 별로없고 죄다 콘서트, 리사이트 광고였는데,
그런데 보면 프로필 사진 나오고 옆에 프로필, 그러니까 신상이 있잖아요.
그 때 가졌던 궁금중 중에 하나가... 왜 대학은 다 달라도 대학원은 '동대학원' 을 가는가!
동대학원이라는 데가 댑따리 좋은 가 보다~ 어쩌면 '동독'에 있는 것일까? 이상한 상상력이...
아직 베를린 장벽이 견고할 때이긴 했죠 ㅋㅋㅋ
국민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말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다녔어요.
원장님은 매년 크리스마스면 파티를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잡채, 떡볶이, 탕수육, 과일접시, 맛있는 쥬스, 치킨.... 딱 보기에도 화려하기 그지 없는 진수성찬이었고
학원에 다닐 정도면 굶는 아이는 없었어도 고만고만한 살림에, 누가 봐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차림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원장샘의 낙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학원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매년 학원생들이 합창곡을 연습하고,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개구장이 남자 애들까지 모아
5부 합창곡을 했으니, 그 여름은 연습으로 죽어났죠;;) 하나씩 연주곡을 연습하여 성대한(?) 발표회를 했는데,
그래도 당시 한국일보사 강당인가를 빌렸고, 드레스 비스무레한 걸 입었습니다 ㅋ
살림살이에 비하면 엄마가 옷은 그럭저럭 잘 입힌 편이었는데, 발표회날 입었던 옅은 분홍 원피스는 아직도 기억나네요.
불투명한 면 하얀 스타킹에 까만 애나멜 구두.................아오. 오글오글 ㅋㅋ
그 해 제 준비한 곡은 이 바로 베토벤 Nel cor piu non mi sento 6개의 변주곡입니다.
심장 떨리게 경주를 해야하는 콩쿨은 죽어도 싫었지만, 이런 발표회는 재밌었어요.
그러고 보니 전 변주곡을 좋아합니다. 같은 주제가 어떻게 여러가지로 진행되는지,
또 중간에 비감어린 단조도 한 번씩 나오고 ... 어떤 계기로 바흐에 매료되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서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된 경험을 했던 것처럼. 또 꼬리에 꼬리를 물면 변주곡 형식, 또 대위법 뿐 아니라
회화에서도 조금씩 색감을 달리하여 비슷한 게 반복되는 추상적인 그림이 좋아서. 그라데이션에 흥분함.
클레도 좋고. 아, 서양 퀼트나 조각보를 보면 흥분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수 있구요.
하여간 '반복과 차이' 는 언젠가 연구해야할 주제입니다 ^^;
문제는....
전 악보를 외우는데 소질이 없어서...
연습 때도 세번째 변주 중간에 멈추면 다음 대목이 더 이상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러기를 수십 차례.
한 번 틀리기 시작하면, 그 공포 때문에 3-4 프레이즈 전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고
'틀릴까, 안 틀릴까', 불안한 마음으로 나 스스로와 내기를 하다가...결국 또 막혀 버리고.
결국 그 변주 부분과 다음 부분을 일부 잘라 내고 발표를 하게 됩니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대굴욕.
당시 녹화 뜬 비디오가 부모님 집에 있는 걸 알고 재차 경악을 했더랬습니다.
그래도 테마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외우고 있고, 켐프옹의 담백하고 우아한 연주가 생각나네요~~~
http://www.youtube.com/watch?v=47D2dFOEHLA
..... 그 원장샘은 지금 잘 계실까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