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오누이가 된 워쇼스키들과 배두나의 만남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어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이야기 6가지 에피소드로 교차편집을 해서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이끌고 가는 그 귀신같은 편집의 역량이 일차적으로 신묘했고,
무엇보다 배두나 에피소드가 참 아름다워서 잊혀지질 않네요.
이제 갓 개봉한 영화이니 상세 스포는 피할게요.
6가지 이야기는 다 별개인 것처럼 보이나
탐욕에 찬 착취자와 착취당하던 자의 반란, 이라는 큰 에피소드로 묶여져 있었어요.
학대받다가 탈출한 흑인노예와 금품에 눈이 먼 백인의사와 그 사이에 놓인 백인 청년 어윙이 각성하고 노예해방운동에 나서게 되는 에피소드.
대작곡가 밑에서 자기의 음악성을 착취당하다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라는 아름다운 곡을 만들 게 된 천재작곡가 프로비셔가 그 곡만은 자기 것으로 지키려는 반항과 그가 사랑하던 동성연인과의 에피소드.
핵발전소의 위험보고서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거대정유사의 탐욕에 먼 이기심과 이에 맞서는 여기자 레이의 에피소드.
출판업자로 성공한 듯 했으나 사채업자에게 협박당하던 티모시가 결국 믿었던 친형이 운영하는 강제요양원에 갇혀 절망하다가 지인들과 탈출에 성공하는 에피소드.
음식점 서빙용 복제인간이었던 손미가 복제인간을 착취하며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정부군에 맞선 반란군 혜주와 만나면서 인간의 가장 귀한 가치인 사랑과 인간 자의지의 최고점인 혁명을 겪으면서 가장 인간다운 반란을 일으킨 에피소드.
핵원자력으로 초토화된 지구에서 착취와 탐욕의 식인족과 악마 올드조지에 맞서며 원시문명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 자크리와 다른 행성에 피난 가 있던 메로와의 만남 에피소드.
이 여섯가지 이야기가 교차편집으로 동시진행되기 때문에 처음엔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조금만 지나면 각각의 에피소드와 함께 3시간이 훌쩍 진행돼 있습니다.
이 개별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또한 하나로 연결된 환생의 결과물이기도 한데 그 표식으로 별똥별 문신을 몸에 갖고 있어요.
결국 가장 미래로 그려지는 자크리의 시대가 가장 원시화된 모습으로 시대도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주고 있고.
어떻게 보면 장르도 골고루 다른 뜬금 없는 개별 에피소드들을 이렇게 하나로 엮어서 영화로 만들어 낸다는 시도 자체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반항, 저항, 반란과도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생소한 시도에 평가도 극과 극이지만 개인적 취향으로는 참 좋은 영화였어요.
특히 배두나가 주연으로 나오는 에피는 꽤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아요. 스포있어요.
반란군의 마지막 혁명 때 혁명연설을 하던 손미가 현장에서 죽음을 맞는 동지이자 연인인 혜주를 지켜보던 눈빛과 눈물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냈어요.
손미와 혜주가 함께 있던 은신처가 왜색풍이고 시장거리가 중국홍콩풍인 건 아쉬웠지만 경계를 넘는 융합을 이야기하는 에피였고 먼 미래였기 때문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어요.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영화에서는 사실 장소 자체도 서울일 필요는 없었는데 워쇼스키가 서울이 소울(영혼)과 발음이 같아서 좋았다는 것처럼요.
어쨌든 그 에피에서 손미는 감독의 말대로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영혼' 에 가까워요.
이 영화의 전체 주제를 가장 잘 관통하면서 밀집하는 힘을 가진 에피이고 복제인간 손미는 역설적으로 가장 순수한 영혼처럼 다뤄지거든요.
손미가 사형당하긴 전 인터뷰에서 감독관이 당신의 진실을 누가 믿어 줄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손미는 감독관을 쳐다보며 이미 누군가는 믿고 있을 거라고 말하던 장면도 의미있는 컷이었어요.
자크리가 나오는 가장 미래 에피에서 손미는 선조들의 신으로 신격화되어 믿음의 대상이 되어 있거든요.
어쨌든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진정한 주연은 손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담당도 손미였고.
그러고 보니 우리 82에서 사랑받았던 레미제라블 못지 않게 혁명적이고 좌파적 영화라는 생각도 드네요, 아니 어쩌면 더.
영화에서 장발장과 자베르 그리고 판틴과 에포닌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정작 미래세대 주인공인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실망스러웠어요.
장발장의 희생과 보호 아래 귀족처럼 자란 코제트와
그런 그녀의 우아한 미모에 한눈에 반해서 혁명동지들을 뒤로한 채 떠나려다가
코제트가 먼저 떠났다는 말에 다시 돌아와 바리게이트에서 혁명에 나선 마리우스.
그 또한 장발장의 희생과 보호 아래 살아남아 혁명전선의 현장을 다시 찾지만 노래 한곡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부자집 손자로 돌아와 코제트와 결혼하는 그 마무리가 어쩐지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사상적인 힐링제가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레미제라블 뮤지컬 자체가 명작이다 보니 노래 듣는 재미로 봤어요.
자베르의 절대적인 신념 간의 갈등도 인상적이었고.
판틴이 일찍 죽어서 제가 좋아하는 앤헤서웨이를 짧게 본 게 아쉬웠지만요.
아이공 쓰다보니 스포도 있게 됐고 길어졌네요.
어쨌든 어제 신랑이랑 보고나서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이 여흥을 나눠봅니다.
82엔 클라우드 아틀라스 이야기가 없네요.
북미에서 선개봉 했으나 흥행 실패를 했다는데 초기 상영관 확보 문제도 있었다지만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만한 시도라는 건 인정해요.
6가지 에피소드를 동시에 진행하니 처음에 집중을 안하면 3시간 앉아있을 수가 없어요 무슨 이야기인지 따라갈 수가 없을 테니.
그것도 기독교적 세계관인 그곳에서 동양적 관점의 환생과 윤회를 전제하니.
그러나 미국 유명 영화 사이트인 imdb에서 6만명 이상 사용자들이 매긴 평점이 8점이라는 걸 보면 꽤 높은 평가를 받은 흥행실패작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네이버나 다음 평점도 8점대가 넘고.
저는 화제작이나 의미작은 가리지 않고 다 보는 편이라 평점에 의지하는 쪽은 아니지만 1점 10점 극과극이길래 갸웃했더니 영화를 보고나니 그럴 수 밖에 없겠더라구요.
그럼에도 이 영화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82성향이면 이 영화가 궁합이 맞으실 거라고 생각해서 적어 봤습니다.
다만 두통이 있으시거나 복잡하게 머리굴리기 싫으신 날은 피하시고 보셔요, 머리에 열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