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격이 본래 냉정한 편입니다. 감정표현을 잘 안하고,그래서 마음을 닫고 있단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사회성도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나이들수록 이건 꽤 많이 고쳐졌구요.
부모님은 제가 사춘기때부터 주말부부를 하시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턴 엄마도 아빠계신 데로 자주 가셨어요.
사춘기는 심하게 앓았었고, 그때 엄마와 저는 서로의 바닥을 보곤 했어요.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대학시절도 지나고,저는 일찍 결혼했습니다.
아버지는 인자하거나 자식에게 애정이 많은 분이 아니셨고,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가족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분이셨고,
엄마도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분이 아니라 감정표현이 격렬한 분이셨어요.
그리고 살림하는 것중에서도 식구들의 끼니준비를 매우매우 싫어하셔서
창피한 도시락.일주일째 같은 메뉴의 저녁식사 같은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게시판에서 엄마가 해준 맛있는 음식.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는 글 보면
처음엔 그냥 맹숭하니..저런 부모도 있구나..하다가,그냥 부럽다.이러고 지나갔는데요.
학교다닐 때조차도 마음을 터놓는 깊은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제가
마흔이 넘어 너무너무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너무 말이 잘통하고,제가 부족한 부분을 그 친구가,그 친구가 주장하는 부족한 부분(?)을
제가 서로 메꿔주며 ,우리 나이 마흔 넘어 이게 왠 복이냐 늙어 할머니 돼서도 이렇게 잘 지내자
그랬는데요.
이 친구와 제가 서로 대화중에 어색해질 때가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나온 후입니다.
이 친구는 부모님이 아프실 거라는 생각만 해도 괴롭고,
부모님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합니다.
제가 얘기만 들어도 너무 좋으신 부모님이더라구요.
매우 현명하시고,배려가 많으신..그런 부모님이요.
문제는 그 친구가 무심코 그런 말을 할 때
나도 그래..같은 공감을 못한다는 겁니다.
공감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화제는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돼요.
그냥 전..언젠간 부모님은 아프실거고,언젠간 돌아가실거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게..집안분위기도 그런 것 같아요.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셨을때
부모님 포함 친척들은 덤덤하셨고,그냥 인생의 한 과정이지..정도의 분위기?)
원래도 냉정하고 감정표현이 서투른데다.부모님과 사춘기 이후로는 거의 뭐 떨어져지내다시피 한거고
도저히 친구가 그러는것처럼 그런 감정이 안생깁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제가 아이를 키우면서,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누르고,
그냥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다,부모님께선 최선을 다한거다,라고 이해했거든요.
그리고 이제 더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날 괴롭히지 말자..정도까지 마음이 정리된 상태구요.
그 친구도 저의 이런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알기에 그냥 얼른 말을 접고 마는데
그 친구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큰 존재이신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저와 이렇게 다른데...
그 친구는 절..얼마나 멀게 느낄까 생각하면..슬퍼요.
그리고 점점 늙어가고 힘없어질 부모님을 보는 그 친구의 고통을
제가 공감못할 시간이 더 많아질텐데 그래서 이 점 때문에 그 친구와 혹시
멀어지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그런 계산적인 걱정도 듭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가사도 있는데,
마흔 넘어서 만난 이 보석같은 친구를 ..잃을 수도 있을까요?
그러지 않으려면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