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리플들 정말 감동이었어요.
옛 추억 생각나신다는 분들, 네! 제가 같이 그러자고 쓴 거예요ㅋㅋ
아저씨팬분, 절 포함해 대부분이 길버트가 첫사랑인데, 앤이 첫사랑이시네요ㅋㅋ
보충 리플 달아주신 분들, 저도 까먹은 사실들 많았습니다. 저도 기억에 의지해 쓰는 거니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고, 추억 나누는 분위기가 정말 좋은 거 같아요ㅋㅋ
그래서 추억 2탄으로 제인 에어 나갑니다.
(아, 제가 아서왕 광팬이라 국내 출간된 책은 아발론 포함해 다 봤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워낙 방대해서,
란슬롯, 멀린, 성배 등 각기 테마를 잡아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뭐 하나 빼기도 그렇고, 다 하자면 끝도 없고 하네요.
언제 한번 한 가지만 이야기해볼게요. 지금은 좀 더 모두 아실 이야기들이 더 끌리네요)
사랑을 다룬 영국 삼대 소설로, 저는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를 꼽습니다.
앞에 둘은 이견이 없겠지만 제인 에어는 잉? 하실 수도 있는데, 제 생각엔 최고의 로맨스입니다.
폭풍의 언덕은, 음...그건 가치 판단 대상이 아닙니다. 심지어 사랑 소설도 아닙니다.
그냥 모든 경계를, 장르를 초월합니다.
오만과 편견도, 콜린 퍼스가 주연해서 역시 가치 판단 대상이...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인 샬롯 브론테는, 여동생들에게
못생긴 여주로도 로맨스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자 제인 에어를 썼습니다.
무서운 언니입니다.
여주만 못생길 뿐 아니라, 남주도 공평하게 못생겼습니다.
지금, 이렇게 해서 성공한 현대 로맨스 있으면 가져와 보세요ㅋㅋㅋ
그렇듯, 제인 에어는 가장 전통적인 로맨스기도 하면서 여러 모로 파격적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로맨스 소설 공식을
세웠으며, 지금까지도 못 따라가는 급진성이 돋보여요ㅋㅋ
고아 소녀 제인은, 거둬준 외삼촌마저 잃고 외숙모 집에서 구박받고 자랍니다.
붉은 방에도 갇히고, 기숙사로 보내져 갖은 고생하다 병으로 친구마저 잃습니다.
여튼 건너뛰고 제인은 훌륭하게 자라 로체스터의 저택에 가정교사로 고용됩니다.
로체스터의 사생아 아델을 가르치는데, 아델은 로체스터 옛 여친이 죽으며 떠맡긴 애로
얼굴로 보나 뭘로 보나 친자식 아니에요. 뭐, 그런 아빠 닮아봐야...
그녀와 로체스터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모든 걸 골고루 갖췄습니다.
운명처럼 둘밖에 아무도 없는 황야, 운명처럼 휘몰아쳐 온 바람, 운명처럼 내리깔리는 어둠,
운명처럼 낙마한 남자,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여자...
둘은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러나 제인 에어는 가끔 속터질 정도로 조신한 처녀라, 자기 감정 같은 거 입도 뻥긋 안 합니다.
처음 읽을 땐 저도 어려서, 반한 거야 아니야 하고 보다가? 로체스터 결혼 소식에 갑자기 제인이 슬퍼하니까,
어, 언니, 역시 반한 거였어? 언니 진작 말 좀 해ㅠㅠㅠ하고 기겁....
로체스터는 집에 드가자마자 제인 에어를 불러다노코 상견례하는 시모처럼 꼬치꼬치 신상을 캡니다.
털어봤자 달님처럼 깨끗한 여자, 캐봐야 없는 여자.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가 무슨 속셈인지 자길 놀리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상한 남자.
근데 그의 저택도 주인따라 이상합니다.
로체스터의 침대에 뽜이야! 불이 붙질 않나, 제인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로체스터를 살려 줍니다.
그럼 로체스터가, 처자,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소. 결혼해주오.
이랬다면, 로체스터를 모르는 소리죠.
로체스터는 대신 동네방네 이쁜 처자, 혼기 꽉 찬 처자, 처자란 처자는 다 초대해서 파티를 엽니다.
제인은 신데렐라처럼 파티에 갈 수 없긴 커녕, 이쁘고 몸매 빵빵한 빅씨 모델들 사이에 둘러싸여
초라하게 애나 보며 한 구석을 지켜야 합니다.
그 중에는 블랑슈 잉그램(이름 정확히 기억 못함)인가 하는 여자가 있는데 짱 미인입니다.
제인과 아델을 보며, 저 기지배는 기숙사로 보내고, 저 여잔 내보내면 이 집안엔 여자가 나뿐~~
시집도 오기 전에, 계략을 짭니다. 이 여자야말로 로체스터의 천생연분이었는데....
손님들이 며칠 묵고 있는데, 로체스터는 갑자기 런던에 다녀온다고 자릴 비웁니다.
그리고 웬 집시 노파가 와서 손님들 손금을 봐준다고 합니다.
제인도 깍두기로 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제인이 가서 쓸데없는 소리에 맞장구치고 있는데,바로 그 집시 노파가, 그렇습니다, 로체스터입니다!
이 얼마나 권모술수에 능한 남자입니꽈!
맘에 둔 처자 손좀 주물락거려 볼라고
당당한 귀족이, 우락부락한 남자가, 천한 집시로, 늙어빠진 노파로 변장까지!
변장도 셜록 홈즈 급입니다.
이런 분은 시골에서 연애질이나 하지 말고 시대는 다르지만 프랑스로 보내
나폴레옹과 맞장 뜨게 해야 합니다. 영국 역사의 큰 손실입니다.
보통은 귀족 주인이 성추행이나 하고 그럴텐데 고결한 거 같기도 합니다.
아마 밀레니엄 이후로도, 여친을 헬기로 데리러 오건 잠수함에 태우건
어떤 남친도 널 위해 준비했어~~ 여장 이벵을 하진 못했을 겁니다.
로체스터가 유일무이한 여장 남주입니다. 그야 다른 사람도 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 우락부락한 얼굴에, 그 건장한 몸으로!
참으로 용기 있는 남자입니다.
근거는 좀 이상하지만, 여자를 꼬시겠다고 여장까지 하는, 이것이 로맨스 남주의 긍지입니다.
그후에도 손님이 칼에 찔리는 듯 엑소시스트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어쨌든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하게 됩니다.
그 블랑슈 언니는 어찌 되었느냐, 제인도 우리도 궁금했습니다.
당시로선 여자랑 그정도 친한 척 해놓고, 청혼 안 하면 결투 고고씽입니다. 여자말고 여자집 남자랑.
그러나 로체스터가 파산한 척하자, 여자 절로 떨어져 나갑니다.
과연 권모술수의 대가...아예 정치를 하시죠!
못돼먹은 서브여주 불쌍해 보긴 첨이었습니다.
로체스터는 씬 나서 제인을 백화점으로 데려가, 자갸, 이거 이거, 보석이랑 옷이랑 막 사줍니다.
제인은 막 사양합니다. 언니 속터져-_-
그리고 대망의 결혼식날.
이 결혼에 이의가 있는 자는 지금 말하든가 아니면 포에버 셧더 뻑업~~ 그 뻔한 혼인 선언 순간에
이의 있습니다! 노통처럼 용감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쭈볏대며 나온 사람!
로체스터의 무려 처남입니다! 칼에 찔렸던 손님, 로체스터가 유일하게 꺼리던 자.
로체스터의 전처 버사는 멀쩡히 살아서, 다락방에 갇힌 채로, 오멘, 엑소시스트, 폴터가이스트 등을
차례로 찍고 있었습니다. 광년이.
(브론테가 쓰진 않았지만 그녀 입장에서 다룬, 광활한 사르가소 바다란 소설도 있습니다)
로체스터를 보자마자 덤벼드는 그녀를 로체스터가 제압합니다.
이것이 내가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누릴 수 있었던 신부의 포옹이오.
이 무서운 여자와 저 맑은 여자를,
이 들끓는 눈과 저 고요한 눈동자를 비교해 보시오~~~
이중결혼 미수범 로체스터가 호소해댑니다.
본래 이 씬은, 배신당한 신부 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너죽고 나죽자고 로체스터에게 달려들어 수염을 쥐어뜯든가 싸대기를 갈기든가 해야죠.
근데 뭐뀐 놈이 성낸다고 펄펄 날뛰는 로체스터가 독자의 시선을 혼자 다 차지합니다.
이 여잔 이따위고, 저 여잔 너무 순수해서 저 여잘 가지고 싶었던 거야, 당연한 거 아냐? 나만 그래?
이해 못하겠단 자, 내게 돌을 던지라, 침을 뱉으라~~ 지랄 떨어요 아주-_-
지금에야 돌 던지겠지만, 당시엔 불쌍해서 울 뻔했어요-_-
하여간 순진한 처자들에겐 독 같은 남자입니다...
로체스터의 장광설, 열정적인 무대 매너에 말려든 제인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어흑 속터져ㅠㅠ
이런 천부적 배우가 귀족으로 태어나다니, 영국 연극계의 크나큰 손실입니다.
제인은 결국 몰래 집을 떠납니다.
보퉁이 하나만 들고 나왔지만, 그나마 마차에서 두고 내렸습니다.
남자 없는 저도 지갑 두고 다니는데, 로체스터에게 말렸던 언니는 오죽했겠어요ㅠㅠ
그래서 돈 한 푼 없이 거지꼴로 헤맵니다.
천애 고아로 태어나, 지금껏 전력을 다해 사회에서 자기 힘으로 우뚝 섰던 제인입니다.
그 고생을 했는데, 남자 하나 잘못 만나, 하룻밤새 홈리스가 되었습니다ㅠㅠ
참으로 무정한 세상입니다ㅠㅠ
그러나 굶주림에 지쳐 마침내 쓰러진 제인을 구조한 것은
미남! 초미남!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고 직장도 있는 미남! 마침내 로맨스 공식에 딱맞는 미남 남주였습니다!
드디어 제인에게, 똥차 가고 벤츠가 나타난 걸까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