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그때 대통령은 전두환
나도... 엄마가 너무 좋아서,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막 신경질나고 화가나서
신발주머니 빙빙 돌리며 동네방네 엄마 있을만한데 찾아다니다가 실내화도 잃어버리고...
남의집 셋방살이... 허술한 나무문 열면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뚜막과 수도꼭지 하나있는 타일로 된 부엌하나,
거기서 신발벗고 올라가야있는 작은 단칸방... 냉장고도 없었던 그때엔...
한겨울 아빠가 퇴근길 사가지고 오신 '데이트'아이스크림 배아프다며 다 못먹게해서 창문에 매달아놓고 자기도하고,
엄마 심부름으로 마당에 빨래를 걷어오면 딱딱하게 얼은 빨간내복들이 웃기고, 소매에 대롱대롱 달린 고드름도 당연했었는데...
한밤중에 화장실은 너무 싫어... 랜턴을 들고 나가서 집을 반바퀴를 돌아야했는데...
아랫목엔 노란비닐장판이 새까맣게 타고, 윗목엔 얼음이 얼고...
한겨울엔 늘 깔려있는 밍크담요. 그안엔 꽁꽁 싸놓은 밥한그릇. 퇴근 늦는 울아빠 밥 식지말라고 엄마가 넣어두었었는데...
장난치다 엎어서 엄마한테 등짝 꽤나 맞기도하고... 다락엔 쥐가 부시럭부시럭.. 부엌에도 쥐가 부시럭부시럭..
빨간색의 흑백테레비젼은 오후 5시 30분에 시작했고,
9시에는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시간이라며 안내방송도 나왔었고...
4식구 쪼로록 이불깔고 자던 그때 겨울밤엔,
엄마가 재워놓았던 유자차를 한잔씩 감싸쥐고 엎드려... 보았던 '조선왕조500년 설중매'
아직도 기억나네... 엉엉 울면서 전설의 고향도 봤었지...
그땐.. 전설의 고향 타이틀 음악도 무섭고, 산수화 그림도 무서워 이불 속에서 오들오들...
'7번 틀어봐' '몇번 틀어봐' 리모콘 없이 "드르륵~!!" 숫자판을 돌려야했던 테레비
'나가서 아궁이 막아라' '아궁이 열어라' 잔심부름이 귀찮았던 연탄보일러.
연탄보일러 위에는 커다란 솥이 있었고, 거기엔 늘 물이 한가득... 그 물로, 세수도하고.. 발도 닦고 머리도 감고...
그 물로 병으로 된 서울우유도 뎁혀서 엄마가 주셨지..
'호호해가면서 천천히 마셔~~'
겨울엔 늘 김이 가득했던 부엌
수도꼭지 틀면 뜨거운물이 콸콸 나오던 것도 불과 얼마되지 않았던 그때...
정말 울엄마는 힘들었겠네.. 냉장고도 없고, 가스렌지도 없고, 세탁기도 없었는데...
엄마가 냉동만두 뜯으며 라면에 넣고 끓여줄께 했을 때,
내복입고 있던 내동생과 나는 너무 좋아서 춤을 췄었지...
그게 왜 갑자기 생각이 날까...
라면 끓여주던 석유곤로... 모든 냄비는 새깜둥이였는데...
되돌아보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절...
울엄마 기억하면 치를 떠는 그런 시절...
울엄마아빠 젊었고, 나는 어렸던...
그때 대통령은 전두환...
그래도 난 행복했었지...
나는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어... '국민학교'를 나왔지.
할머니가 '보통학교'라고 말씀 하실 때, 갑자기 세대의 간극을 훅 느꼈던 것처럼...
내가 '국민학교'라고 하면 요즘 아이들도 그런 느낌을 갖겠지..
그래서.. 나도 우리 꼬맹이에게 '엄마가 초등학교 때...' 라고 말을 한다.
언젠가... 옛날 물건사진을 보고..
추억 돋아서...
왁스... 마른걸레.
이건 신발주머니 안에 늘 넣어놓고,
점심먹고, 또 수업 끝나고 줄마춰 쭈그리고 앉아 교실 마루바닥에 광을 냈었다.
그때는 모든 애들이 다 하는 거였으니까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지금 애들한테 이런거 시키면 아무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옆친구보다 더 광나는 내 몫의(마룻바닥의 서너줄씩 몫이 정해져있었다는...) 마루를 위해..
고체왁스가 좋은지.. 물왁스가 좋은지 문방구에서 심하게 고민했었지..(심지어 각자 사와서 했었네..)
집에 테레비가 있는지... 피아노가 있는지, 비디오가 있는지 손들어보라고 했었던 그때..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어도 한반은 늘 60명이었던 복닥복닥하던 그때...
재수없으면 학년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이 이름도 헷갈려했던 그때...
되돌아보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절...
울엄마 기억하면 치를 떠는 그런 시절...
울엄마아빠 젊었고, 나는 어렸던...
그때 대통령은 전두환...
그래도 난 행복했었지...
저는 빠른 1975년생 내년에 40살이 되네요... ㅎㅂ ㅎ
1. le
'12.12.27 8:03 AM (121.130.xxx.87)어찌 이런글을....
동화같고 소설같고 영화같은 글.
이렇게 읽어보면
흑백필름처럼 참 힘든 느낌의 일상이지만
그속에묻혀있을땐 또 그걸 몰랐던.
저는 님보다 나이도 더더많은데 ㅎ 이런묘사가 불가해요. 넘 잘쓰셨고 넘잘읽고갑니다.
그나저나 ..아...전두환 ㅡㅡ;;;2. 플럼스카페
'12.12.27 8:35 AM (175.113.xxx.206)저랑 갑장이시군요.^^
어쩐지 묘사하신 부분이 막...맞아맞아...그랬는데...
추억이 방울방울입니다.덕분에^^3. ㅁㅁ
'12.12.27 9:00 AM (122.128.xxx.50)박정희가 쿠데타 성공한 해에 태어나 초.중.고를 박정희 한 대통령 밖에 못 봤는데 고3 가을 그가 죽고 어수선한 가운데 대학생이 되었어요.
많은 정보를 알게되고 교문은 폐쇄되고 학교엔 학생반 사보켱찰 반....
사회인이 되어서도 최루탄은 여전히 우리곁에서 떨어지질 않았고 1987년 6월에 드디어 대통령 직선제를 되찿아 왔어요.
누구는 목숨을 버렸고 또 누군가는 남영동.남산의 칠성판 위에서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의 고문을 당하면서 가져온 투표권입니다.
신중하게 투표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불쌍해 보여서가 여자라서가 이유인 이유 말고 말입니다.4. 우왕
'12.12.27 9:09 AM (122.46.xxx.38)사오십대들 목숨걸고 지킨 나라가 오늘 왜이리 되어 구멍 뚤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골목 막다른 건물 안으로 쏘아대던 최루탄에 피 흘리던 학생들
눈과 목이 따가워 숨조차 쉴 수없어도 우리의 열정은 가득 했고
일영역 화사랑의 통키타를 치면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서도
우린 나라의 미래를 울분을 토하며 걱정 했고
행동하는 양심들 이였건만 지금은....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 더욱 차단 되어진 느낌이네요5. 스마일
'12.12.27 9:12 AM (101.235.xxx.166)"그래도..." 라고 했어요.
전두환이였을때에도 어린시절 추억은 되돌아보면 좋게 기억되네요.
전두환 때가 좋았다라는게 아니구요.
전 19일부터 여태도 멘붕입니다... ㅠㅂ ㅠ6. 글의 주제완 좀 상관없지만..
'12.12.27 9:24 AM (60.241.xxx.177)75년생이시면 내년에 39세 되시는건데..... 생일 빠르다고 괜히 한살 미리 먹을 필요가 있나요? ^^;;
7. 우왕님
'12.12.27 9:31 AM (122.128.xxx.50)화사랑은 백마에 있었죠.
고통스런 기억들은 다 희석 되고 이젠 추억만 가득이네요.8. 우와...
'12.12.27 10:43 AM (210.180.xxx.200)저는 67년생인데도 저보다 더 곤궁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셨네요...
훨씬 옛날 일처럼 느껴져요 묘사가....9. 어릴때 기억이 새록새록
'12.12.28 8:55 AM (14.35.xxx.1)저 어릴 때랑 비슷하시네요.
잊고 있던 옛기억....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