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에 내가 아는 누구도 노태우 찍은 사람없는데,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던 그 황당함에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웠죠.
역시나 이번에도 그런 황당하고, 참담한 심정에 빠졌고, 도저히 납득이 안되어 주말동안 지방을 둘러보고 왔어요.
지금은 납득이 됩니다.
그들은 정책비교, 누가 날 이롭게 해줄 것인지, 누가 더 정의롭고 올바른지, 누가 더 능력있는지...
아무것도 따져보지 않더군요.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1번보다 2번이 낫다는 거 쉽게 알게 됩니다.
시골 구석구석, 음식점, 문화센터, 노인정, 마을회관...가보세요.
1번 찍고 너무 좋아서 TV의 ㅂㄱ ㅎ 보면서 눈물 글썽이는 많은 이들이 있더군요.
"거 뭐여 문뭐시기(이름조차 제대로 모릅니다) 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나 몰러"
"불쌍한 근혜...정말 다행이여, 근디 밤에 문뭐시기 나와서 말하는거 보니께 짠하기는 하대"
박정희 나오는 TV보며,
"잘할거여, 박대통령이 최고여!"
"밤에 육영수 여사 나오는데...참, 눈물나더라구"
"젊은 것들이 몰라서 그렇지 근혜가 얼마나...피눈물 흘렸는디...부모잃고, 이번에 보니께 그렇게 모함당하고...
그러고도 참곱대..., 잘됐어"
이렇게 말도 안되게 생각하고 공감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사는 건 사는대로, 나라일은 일대로, 그냥 흘러간다고 생각하더군요.
그저 7,80년대 착한 며느리가 악한 시어머니께 당하고 사는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결국 승리하는 것을 본 사람들처럼.
전혀 정치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이유로 추위에 수고롭게 투표에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경상도는 너무 충격적일까봐 못가봤어요.
그들에게는 세세한 정책비교도, 정치적인 공방도, 토론도,부정선거도, 아무짝에 쓸모없습니다.
그저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 지켜주고 싶은 공주님이 있을 뿐입니다.
경상도쪽에서 민주당일 하는 친구가 몇달전에 도저히 희망이 안보인다며
'차라리 이명박대신 박ㄱ ㅎ 가 되었더라면 이미 했으니 다음을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전혀 흘들리지 않는 믿음, 거의 자신의 피붙이처럼 느끼는 절망스런 사람들이 천지야.' 했을 때는
우리에게 안도 있고, 문도 있어 "왜그리 비관적이냐"고 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납득이 됩니다.
너무 비관적인, 패배주의적인 글이라 죄송합니다.
힘을 빠지게 해서 죄송한데, ...
문득 김종필없이는 김대중도 안될거였고,
15%갈라간 이인제 없이는 노무현도 안될거였고,
우리의 힘만으로는 결코 정의가 이기는 역사를 볼 수 없을 것만같은 절망감에...
마음 일으킬 길 없어서...
그 동안 희생했던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피와 눈물, 시간과 노력들이 너무도 부질없고 억울해 보여서...
참을 수가 없는 분노가 일다가,원망이 일다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하며 여전히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 안되었어서...
내 눈에 보이는 사람만이 다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신앙같은, 그야말로 백성같은 마음으로 1번을 찍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이정희때문도, 친노의 자신들만 옳다는 편협성때문도, 정치평론가의 선동때문도, 철수의 사퇴 때문도 아닌,
그저 ㅂㄱㅎ라서 찍었다는 것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또하나 친노와 문이 싫어서, 민주당이 싫어서, 이정희의 공격성이 싫어서 1번 찍었다는 사람!
만일 진짜 그게 이유였다면 차라리 기권을 했겠죠.
알고보면 그들은 그저 ㅂㄱㅎ가 좋아서, 자신에게 유리해서, 기득권 놓지 싫어서 찍은 거지 다른 이유 결코 없습니다.
안철수였다면 찍었을 거라는 사람!
안철수는 너무 어리고 경험부족이고 우유부단하고, 뜨뜬미지근해서 대통령감 아니라고,
절대로 안되다는 사람들이 그만큼 또 많더군요.
여론조사로 이긴 적있다는 것도 믿을 것 못됩니다.
결정적으로 양강구도가 되었을 때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설정하고 하는 선택은 아주 다릅니다.
결국 우리의 표는 48%가 다인 거지,
기권이 아닌 1번을 찍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안철수였대도 1번 포기하고 찍어주지는 않습니다.
또다른 이유를 대서라도 ㅂㄱㅎ 찍었을 사람들이, ㅂㄱㅎ찍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서 변명거리를 찾을 뿐입니다.
우린 어차피 질 게임을 한 거였어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 등장하지 않는 한 저는 정치에 관심 끊을 겁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해 왔거든요.
그리고 1번찍은 이들을 철저히 비웃어 줄 겁니다. 앞으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정답이 뭔지는 금새압니다.
단지 그 정답이 자신의 토대와도 맞아떨어지는지 저울질을 하다가 변명을 늘어놓으며 1번을 택할지는 몰라도.
(3차토론 끝났을 때 조금이나마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ㅂㄱㅎ의 무식함 느껴 걱정하더군요.물론 그러고도 1번찍었겠지만...왜냐, 종부세로 폭탄맞은 악몽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코 내가 접할 일 없는 무수히 많은 저 1번에 집착하는 보수적인, 무조건적인 사람들...
그들이 있는 한 민주적 선거 혁명은 없다는 것, 절감하고 절망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