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결혼해 신랑따라 성남 구시가지로 이사왔어요.
저는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30년 넘게 살았어요.
518때 국민학교 1학년이었는데...
학교선생님이 당분간 학교 나오지 말고 학교에서 나오라고하면 나와라...
하는 말에 박수치고 멋모르고 좋아했더랬어요. ㅠ.ㅠ
광주사람들이 많이많이 죽어나가는 날에 (저도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진 않아요)
울 엄마는 창호지가 발라진 문에 이불 두터운거 둘러놓으시고...
바깥에선 총탄소리가 들려오고
우리 식구((엄마, 나, 남동생, 여동생)는 방에 불을 끄고 (불이 켜져있으면 총탄이 날아옵니다),
두꺼운 이불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요. ㅠ.ㅠ
(그때 아빤 누군가?한테 잡혀간다고 외삼촌이랑 어딘가로 피신하신 상태였어요.)
4살 여동생이 이불 속에서 배고프다고 계속 울어대네요.
엄마가 할수없이 더듬더듬 그릇에 밥을 퍼와 이불속에서 동생의 입속에 밥을 넣어주셨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불안이 온통 밥알투성이....
지금도 그때의 일을 여동생에게 얘기합니다.
동생은 어렸지만 어렴풋이 그 상황이 기억이 난답니다.
나주에 살던 할머니가 소식을 듣고 광주로 들어갈려고 시도했는데...
군인들이 광주로 들어가는 경계를 막고 못들어가게해서 발만 동동 구르셨어요.
울 엄마도 낮에 딸기밭에 나갔다가 참사현장을 피해 다리밑으로 기다시피 피해서 구사일생하셨구요.
엄마 지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 기다리다가 덧문대져있는 구조의 마루에서 총맞고 돌아가셨어요. ㅠ.ㅠ
여러분 이일이 엄청오래된 과거의 옛일 같으신가요?
하긴 전 제가 겪고도 그땐 너무 어렸을때라 잘 기억이 나진 않아요.
동생처럼 그때의 상황만 기억이 생생합니다.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다 아시긴 힘들거예요.
높은 투표율, 90프로 넘는 몰표~
다른 도 분들이 이해해주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