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부산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대학때부터 서울 살아서 거의 서울 남자예요.
저와 정치성향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상식/비상식은 구별할 줄 알기에 이번에도 2번 찍은 사람이구요.
그런데 사실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는 않아요. 그놈이 그놈이다..이런 생각이 강하죠.
어제 개표방송을 보면서 저는 피가 마르는 것 같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이회창이나 심지어 홍준표라도 이렇게 어이가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말 비교도 안 되는 후보였는데..경상도에서 그렇게 몰표가 나오는 거 보니 정말 정이 떨어지더군요.
남편 친구들은 다 경상도, 구미에서 창원에 이르기까지 포진되어 있습니다.
시가 친척들 역시 경상도, 다행히 남쪽에 흩어져 계십니다.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단, 그저 경상도 정서에 충실할 뿐이죠.
절망과 분노에 어젯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남편은 방에서 쿨쿨 잘 자더군요.
아침에 나와서 날 보고 밤 새웠느냐고 묻는데 대답 안 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절망을 남편은 이해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정치는 정치고..생활은 생활이라는 느낌.
그래서 남편 출근 후 메일을 보냈습니다.
386세대로서 저는 빚이 있습니다.
내가 편히 학교다닐 때 최루탄 맞아가며 민주화 항쟁을 하던 친구들에게 평생의 빚을 졌습니다.
고문치사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박종철 열사, 데모하다가 최루탄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등
그 시절 피흘리며 투쟁한 이들에게 저는 빚이 있습니다.
저는 비겁한 여학생이었습니다. 그저 시험 잘 보고 점수 잘 받아 좋은 데 취직하고..
이런 생각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저로서는 무임승차해서 얻은 민주주의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역부족입니다. 지도에 그려지는 경상도의 뻘건 색을 보면서 절망합니다.
저는 이제 경상도에 갈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도 4대강으로 파헤쳐진 낙동강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운 산천을 그렇게 유린하고 불산가스로 뒤덮이는 도시를 방치하여도 그들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잠깐 경상도의 어느 빵집에 들렀을 때 그 빵집에 걸려있던 박정희의 흑백 사진, 2절지 정도의 크기로 걸려있던 그 사진 앞에서 빵집 주인이 자랑스럽게 자신이 박사모 회원이라고 말하던 그 순간의 현기증이 지금 다시 일어납니다.
저는 이제 경상도에 갈 수가 없습니다.
남편에게 이런 뜻을 전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이제 시가에 가지 않겠노라고.
서울에 올라오시면 반갑게 뵙겠지만, 이제는 도저히 그 땅에 갈 수가 없노라고.
남편은 제 이런 행동을 아마 이해못하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풀어질 거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 땅에 갈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제 마음이 풀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남편의 가족을 존중하지만...이제 그 분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않는 한 저는 그 땅에 가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