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저의 직장 생활은 을 이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빼는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누구나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죠. 부당한 일이 있어도 내가 을이었고 내 밥그릇이 어찌 될까 부당해도 속으로 울먹이며 참고 참고...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은 초등학교 특기적성 영어 강사였어요.
원래 꿈은 다른 것이었지만 꽤 적정에도 맞아서 이 일을 했는데...
그때 참 제대로 학교,,그것도 초등학교의 권위주의에 마음이 힘들었어요.
가장 기억이 남는 한 사람... 제가 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초등학교 교장이 부임해 옵니다. 당시 특기적성 수업료는 제가 받아서 특기적성 담당 정직교사인 선생님께
드리는 그런 형식이었죠.
교장이 와서 하루는 특기적성 담당교사와 특기적성 강사인 저를 교장실로 부릅니다.
그리고 저를 앉혀놓고 한다는 말이 교장이 그 담당교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토시하나 빼 놓지 않고 이렇게요
" 이 여자를 어떻게 안다고 수업료를 이 여자가 받게 해요? 어떻게 믿고? 이여자가 가져가면 어떻게 할라고.."
저랑은 애초에 대화 할 생각조차 없어보였어요. 그저 그 둘의 기 싸움에 그냥 저는 병풍이었죠.
그 담당교사는 그 교장의 말에 어쩔 줄 모르고..제 눈치를 한번 보고.... 당당히 그 남자교장은 역시
뭐라고 주절주절... 너무 치욕스러웠고 저를 도둑취급하는 불쾌감... 천진난만한 아이들을의 눈동자가 너무 이뻐
눈물까지 흘리며 아이들을 사랑하며 가르쳤다 지부하는 저였는데.... 지금말로 멘붕이었죠.
그리고 저희 부모님 생각에...내가 이런 대우를 받고 일하고 있다걸 아시면 얼마나 맘 아파 하실까 싶어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당시 25살이었던 저는 너무 어렸고 그 치욕스러웠죠. 그리고 교장실에 그 담당 선생과 나와는데
그 담당선생님이 제게 위로를 하더군요..듣고 흘리리고..첨 부임해서 자신의 기선제압하려고 저런다고.
저를 두고 한말이 아니라..자신을 두고 한 말이니...잊으라구요...
저를 두고 했던 말이 아니라도..왜 제가 그 희생의 병풍이 돼야했을까요? 정말 잊을 수가 없었죠.
더욱이 밑에 계셨던 컴퓨터 특기적성 선생님(강사)은 매일 나이든 컴퓨터 모르는 선생님 교실에 부름을 받고
가야했어요. 부당함이죠... 평상시 복도에서 인사를 해도 싸늘함을 보이면서 자신들이 필요할때는 언제든 호출..
그렇게 거기서 6개월을 일하고 제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돼서 그만 두고 됐어요.
그리고 몇년뒤 이직을 하게 됐는데 한 공사의 지사였어요.
하는 일은 일반 직원들보다 거짓말 안하고 고된 정도가 10배 가량이었어요.
다음날 생각하며 불면증 걸린 동기들이 많았을 정도로..하지만 거기에 있던 정규직 직원들은
정말 손만 까딱까닥... 밑에 비정규직 직원들이 다~하고.... 토요일은 무임금으로 일을 해야했지만
타이틀과 어디 또 가야할까라는 막막함에 버티고 버텼죠. 우리가 햇던 업무가 평이 좋아 담당 직원은 상도 탔지만 우리는 비정규직이었기에 떨어지는 콩고물 하나 없었죠. 6년간 일했지만 저희들 임금은 제 자리였죠.
하지만 매년 그들은 임금올려달라며 노조운동을 하더군요. 야근하는 직원들은 밤에 자기들끼리 술판 벌려서 술먹고..
나이가 들면 그 쪽 계통은 감이 떨여져서 일을 하기에 접합하지 않은 분야임에도 연봉은 항상 1억..
먹고 놀아도 1억였고. 법인카드로 자기들 식구들끼리 밥먹고... 회사로 들어오는 상품도 고객들에게 줘야하는데
자기가 가져가버리고... 일은 비정규가... 그 평가는 모두 정규직에게.....
뭔가 부당함을 이야기하면 찍혀서 일이 줄고..돈도 줄고....
지금 생각하면 왜 거기서 일했나 싶었네요. 그래서 제 소원이 정규직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죠
내가 정규직이 되기엔 나이도 환경도 아니었고... 놀랍게도 공사였지만 빽으로 들어온 사람도 많았고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가는게 아니라는 걸...절실히 거기서 더 잘 알게됐죠..
결국 저는 대기업 정규직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일하는 근무환경..보수를 보면 내가 얼마나 을의 입장에서 힘들게 일을 했나 싶어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고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해요.
남편은 꽤 연봉이 높은 편인데... 저는 비정규직이었기에 주말에 나가도 무임금으로 정규직의 일을 대신 해줘야했는데
남편은 주말에 일하면 특근 수당으로 25만원 내외의 돈이 나오고. 틈틈히 보너스라는 것도 있어
일의 활력도 생기는 거 같고..복지 혜택도 보면 제가 생각한 이상의 것들이더군요.
참 촌스럽운 발견입니다만...제가 그렇게 살았더군요.
회사 식당에서 비정규였기에 공짜로 먹던 정규직들 사이에서 저희들은 제돈으로 사먹어야했죠.
남편은 점심.저녁 회사에서 제공에 근무시간 초과에 따박따박 수당이 붙고..주말 근무에도 수당이 붙고.
연말 연초. 분기별 보너스에... 내가 이런 남자를 만난 것에 감사해 합니다...
어쩌면 대부분이 이렇게 사는데... 저는 을로 살아 이게 행운 같다고 할까요...
세상의 을로서 산다는게 얼마나 상대적 박탈감과 기득권층과의 괴리감에 괴로운지...아마 모를겁니다.
특히 "공" 자가 들어가는 기관의 모습들을 보면 그들의 자만과 나태함..그러나 변하지 않는 문화....
아마도 비정규직중에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그들이 더욱더 상대적 박탈감이 클 꺼에요.
저~ 밑에 을로 사는 자신이 너무 힘들다는 글을 보고 저도 공감가는 생각에 몇 자 적어보았네요.
세상에 을로 사는 사람들...너무 힘든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