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하고 연락을 했습니다.
나는 요즘 개를 기르고 있다, 그 애는 이번에 일을 그만두고 고향이 내려가 백수가 되었다, 몇 반에 누구는 이번에 딸을 낳았다더라 등등.. 뭐 워낙에 학력도 좋고 경력도 있는 애라 걱정은 안됩니다만.
저는 인문계를 나왔지만 집안 형편이 안돼서 직업전문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거든요.
저도 지금 백수인데 한 편으론 걱정이 됩니다. 붙임성 없는 성격이라 알바 구하는 것도 한정되어 있는데
하고 싶은 건 전혀 못하고 경력도 못 쌓고 있고 먹고 살라고 제대로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고요.
제가 하고 싶은 것 조차도 뭐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걸 생각해보니까 제가 특기적성을 살릴 수 있는 건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닌다는 거였는데
애니메이션은 진짜 숙련될 때까지는 1~2년이 훨씬 넘어야 되고 돈도 한 푼도 안 줍니다. 첫 월급은 밤새도록 해봐야 5만원 받을 수 있다고 하고요. 그래서 섣불리 도전을 못하겠더군요. 나이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재 경력이 하나도 없는 제 처지가 너무 비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학력도 마치고 가족끼리도 화목하고 직장 경력도 있는데
난 왜 아직도 겉돌고 있나 싶어서요.
이러다가 늙어서 이도저도 못하고 청춘을 낭비한 걸 후회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그나마 알고 있었던 인맥들도 다 망가지고 배신당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그래서 지금은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가진 거 없어도 그냥 서로 맞춰주며 좋아했었던 사람들이 이젠 다 무심해져 가고요.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자기 인생에 득이 안되는 사람들을 뭐하러 그렇게 만나며 매달리느냐고요.
그 얘기가 잊혀지지 않아서 가끔 집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도 무심하고 허탈해져서 깊은 얘기를 안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