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 체격도 여리고(120cm 18Kg) 마음도 여립니다.
요즘 부쩍 짜증에 신경질 부리기 일쑤. 참다참다 못해 제가 아이를 붙잡고 하소연하듯 물었습니다.
너 요즘 왜 그러느냐,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 엄마하고 얘기 좀 해보자.
그랬더니 녀석이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면서 서럽게 울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바로 앞 자리에 앉은 여자친구가 1학기때부터 딸아이의 물건을 말도 없이 마음대로 가져가서는 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딸아이가 돌려달라고 하면 그 친구는 '내가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고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이 사항은 딸이 이야기를 해서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찜찜하게 생각했는데 또 막상 하교시에 데리러 가서 보면 그 아이와 자주 놀고 있어서 그래도 나름 서로 잘 지내고 있나보다 여기고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죠.
그런데 딸애가 말하기를 그 아이가 이젠 수업시간에도 자기 물건을 빼앗아가고 딸아이 남자 짝에게 "야, 장하성(실명 아님) 너 ㅇㅇ 공책 뺏어서 네 가방에 넣어" 라고 시킨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남자 짝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중에 돌려주었다고는 합니다-
또 그 아이가 좋아하는 같은 반 남자애가 있어 딸에게 'XX가 널 좋아한대'라는 내용의 쪽지를 써서 그 아이에게 주라고 시켰는데 딸이 쪽지를 써주고 나서 주는 건 네가 하라고 하자 그 아이가 주먹으로 딸아이의 배를 때렸다고 합니다.
결국 그 쪽지는 그 아이가 다른 아이를 시켜서 전달했다고 해요.
그 애가 때린 횟수와 부위를 물어보니 발로 다리를 찬 건 5~6회, 주먹으로 배와 가슴을 때린 게 각각 1회씩, 팔이나 등을 때리는 일은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딸아이 말로는 장난으로 때린 건 절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기 말대로 안 한다고 딸아이 앞섶을 잡고 '죽는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놀라서 그래서 넌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손으로 확 그 아이 손을 밀쳤다고 하고, 전 '잘했어 잘했어' 하고..이게 뭐 하는 건지 참..)
또 같은 반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귓속말로(하는데 다 들렸어, 엄마.라고 ) OO랑 놀지 말라고 딸 앞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 말때문에 친구들이 너하고 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지 않았다, 얘들이 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신경도 안 쓴다고 대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고...
아이들끼리 해결할 문제는 이미 아닌 듯 생각되어서 담임 선생님께 상담 신청을 해서 그 내용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 아이가 다른 친구들 물건을 뻣어서 쓰는 건 선생님도 이미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자꾸 낑낑대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그 아이가 뒷 자리의 아이(저희 딸은 아니었다 합니다)지우개를 가져다 쓰려고 하고 있었는데 뒷자리의 아이가 뺏기지 않으려고 손에 지우개를 꽉 쥐고 안간힘을 쓰고 있더라 합니다. 낑낑은 바로 그 뒷 자리 아이가 내는 소리였고요.
선생님께서 "XX야, 친구가 싫어하는데. 넌 지우개 안 가져왔어?" 하시니 그제서야 자기 책상 서랍에서 그 아이가 지우개를 꺼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뭐야? 너 네 것도 있는데 친구 걸 억지로 가져다 쓰려고 한 거야?" 하셨더니 그 아이가 울먹울먹하길래 거기까지만 하고 말았다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한 해정도 보니까 나중에 저 애가 어떻게 되어있겠구나 대충 감이 오는데(선생님이 연세가 꽤 있으십니다) XX는 나중에 파벌을 형성할 법한 아이라고, 하지만 그 아이가 OO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지는 전혀 눈치를 못 챘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내리신 결정은 일단은 두 아이를 떼어놓고 반 아이들 전체에게 주의를 주겠다, 어머니도 OO에게 부담가지 않게 상황을 가끔 물어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두 아이 자리를 최대한 떨어뜨려 놓고( 딸아이는 1분단 , 그 아이는 4분단) 주의 사항도 말씀해주셨다고 하고
그 아이 뒷 자리에는 그 애와 친한 아이를 앉혔다고 합니다.
그걸로 상황은 일단락 되는 듯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어제 급식실가려고 한 줄 기차로 섰는데 그 애가 딸아이 뒤에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애가 또 발로 제 딸 다리를 찼다고 하네요. 얘길 자세히 들어보니 교실에서 아무래도 자리가 머니까 부딪힐 일은 적은데 가끔 마주치면 그 애가 제 손으로 제 목을 긋는 시늉(외국영화에서 가끔 애들이 해보이는 그런 행동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죽는다'의 동작형인가 봅니다) 을 한다고...
저는 그 말 듣고 흥분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뮬레이션 가동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하지 말라고 애기했는데도 또 때린다, 그럼 두 번째부터는 너도 맞지말고 때려. 그건 폭력이 아니라 널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괜찮아. "
"엄마, 내가 발로 차면 걘 목 졸라."
"목 조르면 넌 발로 차, 아님 팔로 때려."
"그럼 걔가 손으로 때려."
"야, 걔가 문어야. 팔이 둘인데 어떻게 목도 조르고 때리기도 해. 그러니까 목 조르면 네가 팔로 이렇게...또 이렇게..알았어?"
남편은 이야기 듣고 흥분해서 리철진식 무술지도 들어가 주시고 속없는 딸은 옆에서 좋다고 깔깔대고,
저는 또 옆에서 "못된 행동 하는 애들은 2학년때도, 3학년때도 분명히 있다, 절대 당하지 말고 맞서서 싸워야 된다, 너는 강하다. 지금은 작아도 넌 강하고 말랐어도 넌 강하다.." 흥분해서 계속 정신교육하고.. 뭔가 링에 오르기 전의 락커룸같은 분위기.
그러면서도 머릿 속에 계속 맴도는 말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였습니다. 저와 남편이 딸아이에게 지금 가르치려고 난리치는 게 바로 이 말인 걸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말해줘야만 하는 건지..
남편은 저보고 너무 고지식하게 원리원칙대로 교육시켜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 합니다.
기말고사 준비로 들여다본 딸아이 교과서에 붙임딱지가 잔뜩 붙어있어 못 쓰게 된 페이지가 눈에 띕니다.
딸애에게 물어보니 그 아이가 그전 남자 짝에게 시켜 그렇게 해놓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속이 상해서 넌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하니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고, 너무 떠들면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하지말라고, 하지말라고 얘기만 했다고..
그 이야길 들으니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선생님을 또 찾아가야 할까요?
아님 맞지 말고 너도 같이 때려라, 선생님한테 혼나더라도 당하지 말고 싸워라 계속 딸을 단련시켜야 하는 걸까요?
내가 학교 다닐 땐 그렇지 않았은데, 왜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요?
학교가 전쟁터입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