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쯤 꼽씹어볼 기사네요..
기사출처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815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한 마디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단일후보가 됐다는데 ‘도취’된 탓일까. 벌써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보이기 시작한다. 선거 운동 개시 이틀 만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흡사 분위기는 지난 총선의 양상과 유사해 보인다. 이긴다는 ‘확신’을 갖는 것과 이길 수 있다는 ‘자만’은 다른 것이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후자에 가깝다.
민주당은 눈 뜨고 코 베인 사람처럼 하루 만에 선거 구도를 완전히 장악 당했다. ‘참여정부 실세 심판론 vs 유신독재 불가론’은 민주당에게 가장 불리한 구도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 vs 노무현’의 구도 위에선 이기기 힘들다. 노무현이 박정희만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적 파급력과 정치적 지지층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 공식 선거 운동 이틀째를 맞아 충청권 유세를 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의 모습 ⓒ뉴스1
대선은 격렬한 진영 간의 대결로 수렴된다. 특히나 이번 대선은 초박빙의 판세라고 한다. 이럴 경우 당장의 여론조사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지지층을 얼마나 결집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불확실한 산토끼 사냥보다는 안정적으로 집토끼를 지키는게 중요해진다. 새누리당이 ‘경제 민주화’ 담론을 띄우며 과격한 좌경화 경향까지 보이다가 갑자기 ‘유턴’을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상대가 문재인 후보로 결정될 것으로 보고, 맞춤한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 맞춤한 전략이 바로 ‘박정희 vs 노무현’ 구도 강화다. 언론 지형이 박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떠드는 구도가 고착화될 가능성은 99%다. 노무현 시대를 ‘혼란’과 ‘불안’의 코드로 공격하며 문재인을 연장선에 놓는 것이 박 후보의 전략이다. 이 과정에 논리적 인과 관계가 있느냐 혹은 시기적으로 적절하느냐 적절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부차적이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이 프레임을 충분히 안착시킬 수 있는 실질적 힘을 갖고 있다.
이미, 예상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말려 버렸다. 단일화 논의에 진을 너무 빼서였을까, 결정적 악수까지 두었다. 문 후보는 아예 박 후보를 ‘유신 독재의 대표’라고 규정하며 이 프레임을 강화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문 후보의 인식은 물론 민주시민의 보편적 상식에 입각해 있다. 독재자의 딸이 별다른 반성 없이, 아버지의 후광 효과로 대의제 선거에 출마한 것 자체가 부끄럽단 인식이다. 나무랄 수 없다. 맞다. 하지만 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 조건을 딛고 수행해야 하는 것이 대선이라는 게임의 숙명이다. ‘어떻게 박근혜를 지지할 수 있느냐’는 탄식만으론 절대 이길 수 없다. 박 후보는 ‘그런 당신은 실패한 정권의 실세가 아니었느냐’고 되묻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건 ‘실패한 정권’이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덜컥 사과도 했다.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해 “반성한다”는 워딩을 남겼다. 선의를 이해할 수 있다. 진심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반성하는 정치인의 자세는 훌륭하다. 하지만 선거 전술 차원에서 득보다 실이 많은 타이밍이었단 점은 선거구도 차원에서 부정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선거의 초반 흐름은 ‘독재 정권의 딸 vs 실패한 정권의 계승자'로 굳어졌다.
독재 정권의 딸이어도 괜찮다는 게 지난 수년 간 철옹성처럼 유지되어 온 박 후보 지지율의 비결이다. 반면, 실패한 정권의 계승자는 그 동안 문 후보에게 잘 보이지 않았던 점이다. 하루 사이에 두 이미지가 강렬하게 교차했는데 누가 더 손해를 입었는지 아니 어느 쪽에 치명상이 될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이제 문재인을 생각하기 위해선 실패한 정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 27일 진심캠프 유민영 대변인은 해단식을 연기한다고 밝히며 안 전 후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때 제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지민영지해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스1
민주당 입장에서는 뻔히 예상되는 새누리당의 공세와 프레임 선점에 맞서 다른 ‘카드’를 내놨어야 했다. 단일화 논의 기간 중 박근혜 후보의 움직임이 프레임 밖으로 밀려났던 것처럼, 박 후보의 공세를 묻을 역동적인 기획을 내놓았어야 했다. 가장 이상적이었던 건, 안철수 전 후보의 ‘지원’이었다.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며 ‘정치개혁’의 메시지를 분명히 했어야 했다. 박 후보를 ‘구태, 기득권’으로 각인시키고 문 후보에겐 안철수로 상징됐던, 안철수 앞에 모아졌던 현상적 이미지를 덧입히는 구도를 제시했어야 했다.
충분히 가능했던 연출이라고 여겨지는데 민주당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 사퇴 이후 민주당과 문 후보는 입으론 ‘존중’과 ‘배려’를 말하면서도 만나기 주저하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리고 선거 운동 첫날, 아예 ‘파토’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다수의 언론이 2선 후퇴를 표명한 이해찬 전 대표가 선거 운동 첫날 유세에 나섰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전했다. 이 전 대표가 당장 유세에 나서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안철수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이 안철수를 불쏘시개로 썼다’는 인상을 주기엔 충분하단 점이다.
민주당은 절대, 홀로 이번 선거를 이길 수 없다. 안 후보 사퇴 이후 정권교체에 대한 지지가 과반을 훌쩍 넘기지만 그럼에도 문 후보가 박 후보를 이기지 못하는 결과로 수렴되고 있는 여론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정권 교체를 하긴 해야겠지만, 민주당은 미덥지 않고 문 후보 역시 썩 내키지는 않는다는 심리가 바닥에 깔려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기서 ‘정권 교체를 하긴 해야한다’는 대목만 주목하고 있다. 뒤의 문맥들은 어찌되었건 12월 19일이 되면, 자동적으로 따라올 결과로 내다보는 시각이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야권이 패한 상황과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다.
상황이 기분은 한껏 냈지만, 결국 지는 결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문 후보는 아직 박 후보를 이기지 못한다. 지정학적 공학으로 51:49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는 민주당이지만, 그건 과학이 아니라 염원에 가깝다. 충청은 열세이고, 강원도 열세이다. PK 40% 득표는 이미 달성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됐으면 바라고 있는 수치일 뿐이다. 박근혜가 싫은 사람은 모두 민주당 편이 아니라 투표장에 안 갈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27일 진심캠프는 해단식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해단식 이후에나 문 후보에 대한 지원에 나설 수 있다. 안 후보는 사퇴 이후 처음으로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지지해주신, 지지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고민이 있음은 명확해 보인다. 안 후보 측 인사들은 “돕기야 하겠지만,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민주당 측에 대한 서운함을 애써 삼키고 있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프레임 위에서 싸우며, 안철수 전 후보마저 끌어안지 못하면 문재인 후보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안 후보와의 교감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민주당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12월 19일까지는 이제 20일 밖에 남지 않았다. 민주당이 혼자의 힘으론 새누리당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한국 정치의 구조적 질서에 가깝다. 희망과 낙관도 근거가 있어야 망상이 되지 않는 법이다. 분명히 말했지만, 문재인의 운명은 안철수의 생각에 달려있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라고 해도, 발을 딛지 않으면 설 수 없는 게 바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