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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시"를 올려주세요

시를 잃어버린 사람 조회수 : 1,764
작성일 : 2012-11-26 15:34:21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을이 깊어서인지 순결한 자들의 소리가 그리워서인지 시를 소리내서 읊고 싶어요.

예전엔 좋은 글귀나 좋은 시를 만나면 고개를 들고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거나 그 여운으로 하루가 충만했던 적이 있었죠. 

이젠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82 분들의 지성과 감성을 믿어요.

서로 나누고 싶은 글귀. 시. 짧은 경구 등을 올려주세요.

IP : 122.252.xxx.30
3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karablue
    '12.11.26 3:41 PM (122.252.xxx.30)

    첫시를 올린 당신.. 고맙습니다.

  • 2. 너무 좋네요
    '12.11.26 3:42 PM (203.237.xxx.223)

    어머 너무 좋네요.
    또 올려주세요~~

  • 3. ..
    '12.11.26 3:48 PM (121.148.xxx.172)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황지우님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 4. 저도
    '12.11.26 3:50 PM (125.129.xxx.218)

    새벽 편지 / 곽재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 5. 칼릴 지브란
    '12.11.26 3:53 PM (122.252.xxx.30)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중략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6. 룸룸
    '12.11.26 3:54 PM (203.226.xxx.177)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다케

  • 7. 감꽃 - 김준태
    '12.11.26 3:56 PM (180.182.xxx.161)

    감 꽃
    -김 준 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 8. 외동딸
    '12.11.26 3:57 PM (14.63.xxx.79)

    우체국 계단 - 김충규

    우체국 앞의 계단에
    나는 수신인 부재로 반송되어 온
    엽서처럼 구겨진 채 앉아 있었다
    빨간 우체통이 그 곁에 서 있었고
    또 그 곁에는 늙은
    자전거가 한 대 웅크려 있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단물이 다 빠져나간 바람이
    싱겁게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편지 혹은 엽서를 안 쓰고 지낸 지
    몇 해가 지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써 기억의 밭에 파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 건너편의 가구점 앞에서
    낡은 가구를 부수고 있는 가구점 직원들,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저 가구처럼 낡아져
    일순간 부숴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낡은 가구처럼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정 그리워서 미쳐버릴 지경에 이르면
    내 이마에 우표를 붙이고 배달을 보내리라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갔다 여름의 끝이었고
    나는 아직 무성한 그리움의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 9.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12.11.26 4:01 PM (122.252.xxx.30)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마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10. 한 편 더
    '12.11.26 4:03 PM (14.63.xxx.79)

    어부
     
    김종삼(1921~1984)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11. 이 글땜에 로긴
    '12.11.26 4:04 PM (222.100.xxx.84)

    늘, 혹은 때때로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인해 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 갈수 있다는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때로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 12. 빈집.....기 형 도
    '12.11.26 4:04 PM (210.216.xxx.210)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난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기형도

  • 13. 냐오냐오
    '12.11.26 4:08 PM (211.47.xxx.192)

    많고 많은 사건 가운데
    둔덕에 철 늦은 꽃이 피었네.
    잠시 왔다 돌아가는 세상에
    씀데없이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
    네가 그저 한 번 바라보았는데도
    옷섶단추가 작은 소리로 찰락거리고
    내 마음은 너를 향해 넋을 잃는다.

    - 체. 다욱도르찌

  • 14. ...
    '12.11.26 4:11 PM (1.210.xxx.73)

    지금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 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 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 주고 .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나눠 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하나를 유기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여름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 15. 스뎅
    '12.11.26 4:13 PM (124.216.xxx.225)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정현종-

  • 16. ..
    '12.11.26 4:40 PM (1.217.xxx.52)

    너무 좋아요^^

  • 17. Estella
    '12.11.26 5:29 PM (211.234.xxx.101)

    편지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 왔읍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18. 모름지기
    '12.11.26 5:31 PM (180.229.xxx.94)

    내 스무 살 때 ㅡ 장석주


    참 한심했었지,

    그 땐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였지

    몸은 비쩍 말랐고

    누구 한 사람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어 오르고

    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만 했던

    하루하루는 힘겨웠지,

    그 때 구멍가게 점원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

    불안은 수시로 나를 찌르고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바닷속을 달리는

    등푸른 고등어처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 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

  • 19. Estella
    '12.11.26 5:38 PM (211.234.xxx.101)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원재훈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것 빗방울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

  • 20. 성산포
    '12.11.26 5:45 PM (210.179.xxx.194)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오놓을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때 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음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나타난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 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 21. ...
    '12.11.26 6:18 PM (180.228.xxx.117)

    풍교에서 밤을 지새며
    장계

    달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에는 서리 가득
    강가의 단풍 숲, 어화는 나의 근심스런 잠
    고소성 밖 한산사
    깊은 밤 종소리 나그네 탄 배에 은은히 들려 오네

  • 22. 면박씨의 발
    '12.11.26 6:29 PM (218.50.xxx.37)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구요? 헤아려 보겠어요.

    비록 그 빛 안 보여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내 영혼 이를 수 있는

    그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사랑합니다.

    태양 밑에서나 또는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얇은 경계까지도 사랑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에서 돌아서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잃은 줄만 여겼던 사랑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의 부름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 23. 울음이 타는 가을강
    '12.11.26 7:25 PM (125.141.xxx.210) - 삭제된댓글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니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겠네.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 24. 한지
    '12.11.26 7:36 PM (58.102.xxx.154)

    입추, 철길이 있는 강가에서

    오늘은 입추, 가을로 들어섰습니다. 덥지만 너무 덥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어코, 기필코, 마침내 가을 속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가을이면서 가을이 아닌, 이 때 쯤에서는 강가에 서 있어 볼 일입니다. 강물에 노을이 빠져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 철길이 있어 기차 울음이 강물에 빠지면 더욱 좋겠지요. 제 고향에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넓고 긴 둑길이 있고, 노을이 있고, 철길이 있었습니다. 그 둑길에 서 있으면 세상은 참 평화로웠습니다.

    강물은 흐르고
    노을은 눕고
    기차는 달리고
    마을은 앉아 있었습니다.
    저만 홀로 서 있었습니다.

    더럽거나 속이 상한 것들은 강물에 버려서 씻기고
    그럭저럭 쓸만한 것들은 노을 자락으로 덮고
    아련한 것들은 기차에 실어 보내고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황홀하게 몇 번의 해를 어둠에 묻다보면 들녘에 하나 둘 허수아비가 나타났습니다. 허수아비는 새떼를 풀어 가을을 물어오게 했습니다. 가을은 우리가 불러야 비로소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슬슬 가을에 익힐 것들, 노을자락으로 덮을만한 것들을 골라보시지요.

    〈김택근/시인〉

  • 25. 이해인님의 시
    '12.11.26 8:04 PM (14.49.xxx.11)

    나를 위로하는 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 26. .....
    '12.11.26 8:17 PM (118.219.xxx.48)

    사막 오르탕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27.
    '12.11.26 8:52 PM (218.51.xxx.232)

    겨울편지

    김일연

    소설입니다 설핏한
    마음에 눈이 옵니다

    무릎을 꺽듯이
    급기야 폭설이 오고
    나무가 쓰러집니다

    용서라는 말씀도
    이처럼 한없을까요

    나뉘어간 길과 길들
    처음으로 돌아와

    말없이 합쳐지는 한때를
    당신에게 부칩니다

  • 28. Yj
    '12.11.26 9:11 PM (122.32.xxx.157)

    산 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 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 29. Yj
    '12.11.26 9:11 PM (122.32.xxx.157)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 듣고
    몇 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30. Yj
    '12.11.26 9:39 PM (122.32.xxx.157)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이 역시 적당함의 덕목과 상통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용기(勇氣)란 무모하지도 않고 겁을 먹지도 않는 상태라 했고,
    절제(節制)란 방종도 아니요, 무감각하지도 않은 상태라 했다.
    그리고 관대(寬大)함이란 낭비도 인색도 아닌 상태고,
    긍지(矜指)란 오만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했다.
    (출처는 잊었어요 ~)

  • 31. Yj
    '12.11.26 9:39 PM (122.32.xxx.157)

    귀한 인연이기를 / 법정 스님


    진심 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한동안 이유 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안 준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내게 가장 미더운 친구
    내게 가장 따뜻한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 32. 정말
    '12.11.26 9:54 PM (122.34.xxx.141)

    좋네요~~~~

  • 33. ^^
    '12.11.26 11:23 PM (211.177.xxx.216)

    내 귀는 하나의 소라 껍데기.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여.
    장.콕토.

  • 34. 나무
    '12.11.27 12:59 AM (124.56.xxx.213)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의 "가을"

  • 35. 복숭아
    '12.11.27 10:07 AM (175.207.xxx.138)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半呂)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36. Jane
    '12.11.27 4:21 PM (125.240.xxx.134)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37. 올갱이
    '12.11.28 12:05 AM (119.64.xxx.3)

    너무 좋아요

  • 38. 다시 올립니다
    '12.12.1 6:11 PM (58.236.xxx.39)

    앞에 올렸었는데 지워져서 다시 올려요.


    동전 한 닢 / 김명수

    

    오늘 낮, 차들이 오고가는 큰 길 버스 정류장에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길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육중한 버스가 멎고 떠날 때

    차바퀴에 깔리던 동전 하나

    누구 하나 허리 굽혀

    줍지도 않던

    테두리에 녹이 슨 동전 한 닢

    

    저녁에 집에 오니 석간이 배달되고

    그 신문 하단에 1단짜리 기사

    눈에 뛸 듯 뛰지 않던

    버스 안내양의 조그만 기사

    

    만원 버스에 시달리던 그 소녀가

    승강대에서 떨어져 숨졌다는 소식.

  • 39. ..
    '13.1.28 8:40 AM (58.102.xxx.150)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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