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시댁제사라 퇴근후 시댁에 와있습니다. 저는 하나뿐인 며느리라 이것저것 도와드려야 해요.
여덟시 좀 넘어 아기 재우고 있는데, 시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오셨어요.
"안철수가 대선 사퇴한댄다! 어쩌니!"
헐.
시어머니께서 잘못들으신 줄 알았는데...
잠시후 카톡이며 문자메세지로 회사 동료들, 친구들....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메세지가 쏟아지네요.
저와 저희 회사 사람들, 안철수 교수님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보며 사무실에서 다들 환성을 질렀었고, 펀드에 십만원씩 넣으면서 서로들 장난삼아 '동지'라고들 하며 좋아했었습니다.
30대 초반에서 중반이 대부분인 울 팀 직원들....오늘 점심시간에 함께 직원식당에서 밥먹으면서도 지난 대선처럼 찍을 사람이 없어서 고민했던거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하냐며 한마디씩 희망을 꿈꿨었는데....
지난 대선때 이명박을 찍었던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었다며 고백하던 팀원, 찍을 사람이 없어서 와이프랑 제주도 갔었다던 직원, 문국현을 찍으며 정말 될 줄 믿었다던 직원, 이회창이 명박이보단 낫겠다고 찍었다던 직원, 정말 싫었지만 그래도 최악은 막아야 할것같아서 정동영을 찍었다던 직원.....
모두들 이번에는 같은 희망을 보고 있었는데....
글쎄요.
전 82에서 꽤 오래전부터 회원이었고, 개인적으로 기쁜일, 궁금한 일, 넋두리 기타 등등 많이 올리기도 했었고, 도움도 정말 많이 받았던 회원이지만, 최근엔 여기 들어오는게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다보니 바로 옆에 떠 있는 최근 많이 읽은 글의 제목들만 봐도 또 울컥하네요.
기자회견 하겠다던 발표에 ㅋㅋㅋㅋㅋ날리며 비웃는 글, 망가졌다고, MB아바타라고, 박그네 스파이라고....기타 등등 온갖 할말 못할말 다 퍼붓던 분들.....
정말 어쩌다 댓글로 한번 편들다가 순식간에 머리털나고 단 한순간도 좋아해 본 적 없는 새누리당 알바 취급을 당하질 않나....
최근의 82는 정말이지 무서웠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여기서 '알바', '회색분자'로 몰리는 흔한 중도보수입니다.
뭐, 중도층 따위는 어차피 투표장 안갈거니 필요없다고 하셨던 분도 계셨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제 나름 소신껏 투표는 해왔습니다. 어떤 한 당을 지속적으로 지지해 본적도 없고, 정치인 누군가를 후원하거나 특별히 좋아한 적도 없지만, 나름의 원칙과 제 기준에 맞는 후보에겐 대선이든 총선이든 투표를 해왔습니다.
기권하는건 누구만 좋게 해주는 일이라고, 정신차리라고,
이성은 그렇게 말하는데....
감정은 따라가질 못하네요.
계속해서 욱욱 치밉니다. 알바에 무뇌 소리까지 들어봤는데, 내가 왜 표를 줘야하지 하는 격한 생각만 들고....
정도껏 깠었어야지......그 말만 아까부터 신랑은 계속 하고 있네요.
시댁은 원래 민주당 성향이 강하지만, 친노 성향과는 거리가 먼 분들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쪽이라고 해야할까요) 시아버지는 계속 '아깝게 됐다'고만 하시고, 시어머니는 침울해 지셨네요.
친정은 원래 한나라당 성향이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친정아빠가 '새누리당 후보 말고 다른 사람을 뽑아볼까 한다'고 말씀하셔서 급 딸들과 정치 얘기가 통했었더랬죠....
과연 시부모님, 친정부모님의 무너진 기대는 어떻게 될지...
심란한 밤에 두서없이 주절주절하고 있네요.
며칠 지나면 이성을 찾겠지요.
제 딸에게 상식이 통하는 나라와 그런 나라를 만들 대통령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조금 슬프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