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어요?”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좋아요?”
“결혼하면 어떤 게 좋아요?”
요즘 많이 듣는 질문이다.
직장 동료 대부분인 여자인데, 그 중 결혼한 여자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 딸린 아줌마는 나 혼자뿐이다 보니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다.
비록 원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나는 연애상담가 혹은 결혼상담가로 자리매김 될 모양이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결혼 적령기라면 적령기일 수 있는 나이.
연애와 결혼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이 아마도 극에 달했나 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안 지 불과 한 달도 채 안 된 후배들조차
내게 선뜻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게 아닐까.
이미 그 시절을 모두 거쳐 아이 엄마로 정착해 생활이니 살림이니
자녀교육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터에
처음엔 그들의 고민이 좀 호사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도 진지했다.
하긴, 돌이켜 보니 나도 그 나이 땐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연애와 결혼의 문제였다.
연애와 결혼 사이에서 방황하며 어려운 숙제를 풀 듯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다.
한참 연애 진행 중일 땐 ‘과연 이 사람과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언뜻언뜻 고민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겠다는 결정은 비교적 쉽게 내렸다.
그리고 간혹 삐거덕거리면서도 부단히 참아주는 남편 덕에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도 여느 여자가 꿈꾸는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림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남편을 위해 척척 사랑의 밥상을 차려내고,
꼬물꼬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달려드는 아이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그런 평범한 환상.
그러나 웬걸.
결혼의 장벽은 의외로 나의 내부에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쳐야 하는 게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아이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열어둬야 하는 육아가
나에겐 잘 맞지 않았다.
아이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책 한 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생활은 고문과도 같았다.
아이를 낳고 불어난 살들을 감당 못해 너무도 우울했고,
하루하루 퇴보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한 삶.
24시간 보모가 돼야 하는 삶은 너무 낯설었다.
그때서야 내가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하단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삶이 너무도 그리웠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솔로들을 동경했고, 솔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살림도 나에겐 맞지 않았다.
매일 쓸고 돌아서면 제자리고,
애써 음식을 장만하고 나면 또다시 그릇들이 쌓이고….
하루하루가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라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비생산적이었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취미를 붙이고 신바람 나게 살림을 하는 체질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누구나 다 하는 결혼이고,
누구나 쉽게 애를 낳고 애를 키우지만,
이 일에도 소질과 적성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게 됐다.
얼마 전 서른을 훌쩍 넘긴 직장동료가 결혼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다.
그때 나의 첫 마디는 이랬다.
“결혼에도 적성이 있는 것 같아요.”
내 대답이 좀은 황당했던 모양인지 그 동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면서도 다음 말이 궁금한지 채근했다.
“우선 상대의 조건을 따지기 전에
나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보는 게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과연 내가 결혼에 맞는 사람인가, 아닌가.
특히 여성의 경우는 육아와 살림을 병행해야 하니까,
과연 내가 그 일을 감당하고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온전히 내 자신을 바치고 희생할 수 있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결혼생활에 적합한 거겠죠?”
저녁 무렵이면 보글보글 찌개를 안치고, 조물조물 나물을 무치고,
노릇노릇 생선을 구으면서, 밥을 재촉하는 아이를 조용히 타이르며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정말 결혼생활에 적합한 것 아닐까?
철이 바뀌면 묵은 먼지를 걷어내듯 집안의 커튼을 바꾸고,
반질반질 윤이 나게 그릇을 닦고,
잠시 짬을 내 즐기는 커피 한 잔에 감사하는 그런 여자 말이다.
너무 케케 묵은 그림 아니냐고?
그러나 바로 그런 여자가 남자들이 꿈꾸는 여자 아닐까?
아무리 맞벌이를 원하는 남자들의 수치가 늘었다 해도
휴식 같은 친구를 원하듯
휴식 같은 여자, 휴식 같이 편안한 가정을 원하지 않는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불행히도 남자들에게 나른한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여자들에게 집은 치열한 일터가 돼야 한다.
바깥일에 지친 남편이 삶의 찌꺼기를 걷어내고
진공 상태로 만드는 공간이 돼야 하니까.
그래서 아직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자기 점검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똑똑하되,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
비록 부인이 없으면 밥 한끼 제대로 차려먹지 못하고,
손수 양말 하나 내놓지 못할 정도로 자기를 돌볼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아도 참고 견디는 인내심.
하루 24시간 아이의 육아전문가, 교육설계사로 살 정도의 모성애.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못하고
일년에 고작 두어 번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슬퍼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서러워말아야 할 강한 의지.
이런 것들이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이 갖춰야 할 최상의 조건이다.
그 모든 걸 꿋꿋이 견디거나 혹은 즐길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결혼하라.
----------------------------------------------------------
7~8년 전에 어느 신문에서 읽은 칼럼인데
정말 공감이 가서 스크랩해 뒀던 글입니다.
전업? 맞벌이?
정답이 없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결혼에도 적성이 있을 것 같고,
전업이냐 직딩이냐도 적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공감이 좀 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