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임신 7개월입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3-4개월이면 성별을 알려주지만 제가 다니는 병원은 성별을 25주에나 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전 궁금하긴 했지만 그 기다림도 행복한 기다림이라 생각하며 지냈어요.
지난 수요일이 입체 초음파를 보는 날이었고 그날이 병원에서 제 뱃속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는 날이었어요. (병원 예약을 1달 전에 했어요) 또, 우연히도 시할머니 제사와 겹쳤어요
(아, 저는 홀시어머니 모시고 살고 맞벌이하는 결혼 만 2년에 임신7개월 여성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반차를 내고 와서 어머님이 제삿상 준비하는 걸 도왔겠지요.
그러나 그날은 4시에 병원예약을 했고 임신 초기 때 입덧을 심하게 한 터라 연차도 거의 다 썼기도 했어서
남은 연차도 거의 없었고요 회사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조퇴를 하기로 되어있었고요..
그 날 아침에 출근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서운하단 듯이 <그래서 오늘 늦는다고??> 이렇게 물으셨고 (이 물음은
반차내고 안 오냐 그 뜻이겠지요,) 전 <아니요 병원 갔다 오면 한 6시 되겠는데요> 이렇게 대답하고 출근 했어요.
병원 갔다 집에 오니 작은어머니가 1시간 전 쯤에 오셔서 전을 부치고 계셨고 다른 음식들은 어머님이 혼자서
다 장만하신 후였어요. 절 보자마자 < 나 오늘 이것들 장만하느라 죽을병 났다. 힘들어 죽겠다.> 계속 우는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그 말 속 뜻은 넌 왜 하필 오늘 병원예약을 해서 제사를 안 도우냐 이쯤 되겠지요..
그리고 궁금한 것. 제 뱃속 아이의 성별이셨어요.
평소에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 난 아예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련다.. 그래야 나중에 진짜 딸 낳아도 실망 안 하지...
딸이어도 괜찮아... 병원 갔다 올 때마다 아들이래냐? 물으시고 아들 낳면 크게 본인이 크게 한 턱 쏘고 딸이면
니가 크게 쏴라.. 그동안 아들 아들 아들.. 아들손주 바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도 그럴것이 시어머니가 저희 남편 낳기 전에 딸만 3을 낳았거든요.. 오직 아들 낳기 위해 낳은 딸들이었죠
그래놓고 얼마나 귀하게 아들을 키우셨는지 제 남편 그 나이 먹도록 형광등 한번 갈아끼운 적이 없어요
어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님이랑 둘이만 15년 넘게 살아와 놓고도요...
신혼 초에 (한 3개월이나 됐을까) 왜 늬들 애 안 갖냐면서 은근히 절 들볶았고(아들한테는 한 마디 안 하심)
나보고 너도 아들 낳아야 한다 대를 이어야 하니까 이런 말씀도 하셨고 암튼 그런식으로 절 스트레스 주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어쨌든,,, 저에게 성별을 물으셨고.. 아들이라고 대답해드렸더니
덩실 덩실 춤을 추시면서 자기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거에요
전 솔직히 아들 딸 상관없었지만 시어머니가 저렇게 아들을 원하니까 반감이 생겨서 그런지 은근 딸을
기다렸거든요...
그렇게 제사를 끝내고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으시다며 술을 드시고는 취하셔서 술 못하시는 작은어머님께도 술을 권하시고 남편의 사촌 형인
시아주버님께도 계속 술을 따라드리면서 너무 좋아하시는 거에요
전 그 모습이 너무 너무 너무 싫었어요.
아들손주를 바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정도 일줄은 몰랐거든요. 진짜 이러다 딸이었으면 어쩔뻔 했나
싶기도 하고.. 아들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진짜 그래요
어머님은 딸을 셋을 낳았지만 아들보다는 딸들이 어머님께 훨씬 잘합니다.
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해서 이얘기 저얘기 하는데 반면 아들은 같이 살면서도 하루에 어머님이랑
딱 두마디 해요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인사만요..
어머님 생각하는 것도 딸들이 훨씬 깊고... 그런데도 그렇게 아들이 좋으시답니다.
당신 아들 보시곤 아직도 내가 이거 안 낳았으면 어쩔뻔 했냐면서... 흐믓해 하십니다.
암튼 전 그냥 아들이라 든든하다고 생각 하시는 줄 알았는데 대를 안 끊기게 한 것에 대해 엄청나게
크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왜 이렇게 제 뱃속 아기가 벌써부터 안쓰럽죠?? 물론 이 아이가 커서 결혼 할 때 즘이면
우리 사회도 많이 변해서 대를 잇는 것, 제사를 지내는 것 등에 많이 해방 되어있겠지만
그런 부담을 안고 살아갈 것 생각하면 벌써부터 참.. 그렇네요
저희 남편이 7대 장손이에요
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아빠도 장남도 아니셨고 명절 때에만 큰집 가서 차례 지내는 거 보기만 해 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대를 잇는 것, 제사를 지내는 것 등 이 한국의 유교적인 사상이 이해가 안 되거든요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거는 제사에요..
피도 전혀 섞이지 않은 남의 집 귀한 딸들은 조상을 모신다는 명목 하에 전혀 뵙지도 못한 분의 제삿상을 차리기 위해
부엌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그 조상들의 후손인 남자들은 다 차린 제삿상 앞에서 절만 몇 번 하고 의무를 다 했다고
하는지 이해도 안 되고요..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노인네들은 다 그렇다
다 아들 바란다
라고 하는데 다른 분들도 다들 그러시나요?
대를 잇는 것, 아직까지도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정말 그토록 중요한 건가요?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달라서 그런건지, 아님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선 그런 것들이 중요한 건데
저만 유독 쿨(?)하게 생각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