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 회사 점심시간에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어요.
근처에 있는 00면세점 0층에 있으니 시간되면 잠깐만 와보라며...
마침 점심도 평소보다 좀 빨리 먹은 터라 얼른 달려갔지요.
다음주에 시부모님께서 해외 여행을 가시기때문에 면세점에서 뭘 보고 계시나보다, 오신 김에 가까이 근무하는 저 커피라도 한잔 사주시려나 해서요.ㅎㅎㅎ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바로 몇몇 매장으로 데려가셔서는 숄더백들을 들어보이시더라구요.
이건 어떠니? 이건 실용적일것 같지? 이게 이쁠 것도 같고....
저도 열심히 같이 봐 드렸어요.
근데 어머니가 제가 제일 이쁘다고 찍은 어떤 브랜드의 숄더백을 들어보시면서 몇 번 저한테 더 물어보시더라구요.
"이거 근데 양가죽이라 스크래치 많이 날 것 같은데 괜찮을까? 아까 000꺼가 더 괜찮지 않겠니?"
저는 일단 이쁜게 최고라며 더 비싼 브랜드의 가방을 추천했어요. 근데 어머니가 계산하시면서
"이 가방은 우리 00(제이름) 꺼다."
그러시는거에요.
헐....
저 가방 꽤 많습니다.
4년전 결혼하기 전에 시어머니가 꾸밈비 조로 펜디 백을 사주셔서 잘 들고 다녔구요. 결혼후 석달 후에 제 생일을 맞았을때, 시아버지께서 샤넬백을 사주셨었더랬죠.
이유인즉, 다른 친구분 며느리 맞을때 샤넬백을 해줬다는데, 우리 며느리는 그런거 해달란 소리도 안하고 있어서 생일선물로 주신다며....감사히 받아서 옷장안에 잘 모셔두고 있습니다.^^;
죄송스럽게도 두개 다 회사에 들고 다닐 데일리백으로는 잘 안씁니다.
그 외에도 결혼 후에 신랑한테는 선물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시부모님께서는 당신들 어디 여행가시거나, 무슨 기념일 올때마다 아들 몫은 없어도 며느리 몫은 챙겨주십니다.
회사에 요즘 주구장창 들고다니는 큼지막한 숄더백도 우리 딸 낳고 출산선물로 시어머니가 해주신 명품백입니다.
오늘 굳이 다른 가방을 사주시는 이유도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회사에 하도 그 가방만 들고다녀서 그 정도 크기 가방이 제일 편한가보다, 싶어서 하나 다른거 사줘야겠다고 계속 마음먹고 계셨다네요.
어머니께 계속 사양했어요.
저 가방 없어서 이것만 들고다니는거 아니라고. 아기도 있고 회사 업무상 제가 서류 파일을 들고다니거나 업무용 넷북을 들고다닐 일도 있어서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거라고 말씀드렸지만, 결국 어머니는
'너 이쁜거 사주는 것도 내 사소한 행복이니, 그 행복 뺏지마라.'
라고 하셔서 절 지게 만드셨네요.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 참 좋은 분들입니다.
아들이랑 며느리랑 싸우면 꼭 제 편 들어주시고, 하나뿐인 손녀 낮에 잘 맡아서 그야말로 애지중지 금이야옥이야 키워주고 계시고요.
제가 회사에서 승진하거나 뭐 좋은 일 생기면 항상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십니다.
오늘처럼 간혹 회사 근처로 쳐들어(?)오셔서는 백화점에 데려가서 옷을 사주시기도 하고요. 뭐 하나라도 늘 더 해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시부모님은 아들만 둘, 시댁 전체를 통틀어 신랑의 사촌들도 모두 남자뿐입니다. 우리 딸에겐 고모라는 존재가 없지요.
그래서인지, 시부모님은 늘 제가 딸같다고 하십니다.
특히 어머니는 시댁 험담도, 시아버님 험담(?)도, 시할아버지나 시할머니에 대한 험담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제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세요.
우리 시아버지는 친구분들 오시거나 모임에서도 늘 며느리 자랑하십니다. 우리 며느리 예쁘고 똑똑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고...(아버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지요..;;)
친정 부모님에게도, 시부모님에게도 저는 여우짓을 못하는 딸입니다만, 그래도 모자란 구석은 모자란 그대로, 내세울 구석은 실제보다 훨씬 많이 칭찬해주시고, 무엇이든 베풀어 주시는 부모님이 또 생겨서 오늘도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보기드문 시부모님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불어 남편이라는 보기드문 십자가도 같이 지워주셔서 ....참....그렇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