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닌 대통령 후보로서…"
박정희 부분적 평가 '진일보'
"무덤에 침뱉는 것 원하진…"
아버지 부정 '역풍' 의식한 듯
'지지율 하락 마지못해…' 비판
당내서도 '너무 늦었다' 한숨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24일 기자회견은 당내에서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다만 사과 시기가 좀 늦어서 만시지탄이란 한숨이 곳곳에서 나왔다.
박 후보가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는다"고 말한 대목은 얼마 전까지 5·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규정했던 것과 달라진 태도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을 '헌법 가치 훼손'이라고 명확히 규정한 대목도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했던 기존 발언에 견주면 진일보한 것이다.
박 후보는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며 감성에 호소하는 등 사과의 진정성을 강조하려 애썼다. 그가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는 대목에서는 "얼굴도 보지 못한 장인 때문에 나더러 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린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박 후보의 기자회견은 또다시 진정성 논란을 불렀다. 사과 시점 때문이다. 이날 도하 언론엔 박 후보의 대세론이 깨졌다는 여론조사가 일제히 보도됐다. 사과가 지지율이 떨어진 최근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새누리당 안에서도 나왔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안 할 수도 없었겠지만 너무 늦었다"며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뒤늦게 사과하는 모양새여서 속 보이고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국민 눈엔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태도 변화의 계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 영남 중진 의원은 "진작에 할 수 있었는데, 너무 늦게 했다. 국민은 이게 진심이냐고 의아해할 것"이라며 "예전엔 왜 그랬는지(오늘처럼 말하지 못했는지)도 얘기했어야 했다. (국민이) 지금까지 뱉어놓은 말을 궁금해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대변인으로 임명된 김재원 의원의 전날 발언도 박 후보 사과의 진정성 논란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전날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박 후보의 사과와 관련해 "이번 기회에 국민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할 정도로 확실하게 하고 가야 한다"며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 아버지의 복권을 위해서인데, 그런 사람이 마치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부정해야 하는 건데 그게 쉽겠느냐"고 말했다. 김 의원은 박 후보의 오랜 측근이다.
다만 당내에선 일단 사과 관련 시비가 줄어들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한 재선 의원은 "역사관 문제 탓에 생긴 짐은 좀 벗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당도 그런 문제에 대한 부담 없이 표 모으는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준비해 온 회견문을 읽은 뒤 따로 질문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자리를 떴다. 따라붙는 기자들에게는 "앞으로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세차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