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을마다 알러지가 심해서 여러모로 대비하지만 나이 오십을 넘으니까 어지럼증까지 생겼다.
비염이야 약 먹거나 소금물로 조치하면 어느 정도 좋아지니까 견딜 수 있는데
어지럼과 더불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방법이 없다.
이비인후과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였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 말을 길게 할 정신력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장을 보러 가서 유령처럼 걷다가 엉뚱한 것을 사오기도 한다.
멀쩡한 날도 있다. 아무 증상이 없는 때는 아프다고 했던 것이 꾀병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다. 늘 아프다고 하는 데고 짜증내는 법이 없고 도와주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장볼 때 물건을 너무 많이 사오는 것만 빼고 다 좋다.
어제는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간신히 걸어 돌아오는데 냉장고는 비어있고 막내는 늘 배가 고픈 게 생각났다.
집 근처 마트입구가 공사중이라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힘도 없어 길도 아닌 비탈을 마구 올라갔다.-아프다는 거 다 거짓말
포도, 고기, 우유 딱 세 가지 사가지고 나오는데 작은 포도 박스를 끈으로 묶는 것조차 귀찮아서 허리에 끼고 집으로 걸었다. 신호등 앞에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가 "그거 끈 으로 묶어서 들지 왜 고생하느냐?"고 하신다.
-아 그거 다 알죠. 끈 있는 테이블까지 한참 걸어가서 조여서 묶을 힘이 없답니다.
처량하게 박스를 끼고 비척비척 걸어간다.
도와달라고 하면 친정 엄마도 오실수 있지만 앓아 누운 건 아니니까 내가 이 정도 힘들면 집이 유지된다.
저녁 때 들어온 막내가 고깃국을 맛있다고 먹어치운다.
남편도 포도를 보더니 반갑게 냠냠!
나는 밥을 만들어만 놓고 소파에서 실신해 있으면 애들이 들어와서 밥이랑 국이랑 떠 먹는다.
큰 애는 설거지 해 줄 거이고
그래서 가을이 지나가는 거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