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문제가 생겨서,
남편 말로는 제가 제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너는 도대체 니네 엄마한테 뭐배웠냐는 욕 같은 소리를 들어서,
그간의 저의 삶을 되돌아봤어요.
누구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고 남편도 잘못이고 나도 잘못일텐데
남편 잘못 따지기 전에 내 잘못이 뭔가 한번 살펴보자.. 하는 마음으로요.
그러다가 어쨌든 저는 지금 남편 월급으로 생활하는 전업주부니까
과연 주부로서 살림은 잘 꾸리고 있는가 짚어보다가요.. 울컥했어요.
결혼하고 6년째, 네살 두살 아이 둘 키우느라 직장 그만두고 전업된지 4년째인데.
큰애 만삭 때도 회사다니면서 예쁜 임부복 골라입으며 멋을 부리던 제가,
전업주부 4년차에 파우치에 립스틱이 하나 없어요.
이제 작은애 돌 정도 지나니 제법 여유가 생겨서 이런 저런 약속도 잡아보는데요
살이 쪘으니 옷 욕심은 없어도 가방이랑 구두같은건 좀 챙겨입고 신고 싶은데
번듯한 가방하나, 멋쟁이 구두 하나가 없어요.
두어달 전엔가.. 우연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이젠 맨얼굴로 다니는게 민폐겠구나 싶어서 인터넷으로 비비크림 하나 산게 다에요.
선크림이고 얼굴 로션이고 바디로션이고 애들 발라주는 세타필 크림으로 덕지덕지 바르고 살았어요.
철마다 티셔츠 두어개 사 입고, 살이 쪘다 빠졌다 하는 통에 일년에 청바지 한번 정도 사 입은게 다에요.
돈을 부풀릴 재주도 없고 푼돈 한푼 아껴쓰는 똑순이도 못 되서
그저 제 몸, 제 입에 들어갈거나 아껴서 그동안 대출 빚 갚고 남편 차 바꾸고
애들 곱게 단장시켜 키워놓은 댓가를.. 밥 한끼 제 때 안차려줬단 이유로
엄마한테 배운거 없이 자란 미련한 여편네라는 취급으로 돌려받네요.
저 배울만큼 배웠고,
일할 때 경쟁업체에서 줄곧 스카우트 제의 할만큼 열심히 했었고,
아이들 키우면서도 제 공부 게을리 하지 않고 틈틈히 책도 꾸준히 읽고,
애들 있는 집 원래 그렇다고 해도 늘 집안 깨끗이 정리하고 단속하고
삼시 세끼 몇첩 반상으로 올리진 못해도 바깥음식보단 집밥이 좋은거라고 최선을 다 했는데요.
남은건, 바닥이 이미 드러날대로 드러난 언제 산건지도 모르겠는 빈 립스틱통 하나에요.
원래는 이 글 쓰려는 목적이 립스틱 추천 받으려는거였는데
쓰다보니 한탄조가 되어버렸네요.
내일은 큰애 어린이집 가면 둘째 데리고라도 나가서 립스틱 하나 꼭 사려구요.
보자는 사람 없고, 나 예쁘다는 사람 없어도, 제 보잘것 없는 파우치에 예쁜 립스틱이라도 하나 넣어두려구요.
화장품이고 옷이고 직접 쇼핑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요새 뭐가 좋은지 모르겠네요.
둘째 데리고 금방 다녀와야 하는거라 시간이 많진 않구요. 집 가까이에 립스틱 살 곳이 신세계 백화점 뿐이에요.
로드샵 화장품이 좋은지, 백화점 입점 브랜드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요새는 립스틱이 얼마나 하는지도 몰라요.
산다고 해도 어짜피 자주 바를 일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 인생의 사치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 사려구요.
립스틱 하나 없이 칙칙하게 바래져 가는 제가 너무 불쌍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