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줄 알았어요.
원래 제가 쓸데없는 눈물이 과하게 많은 사람인데
근 한달간 눈물도 고이지 않아서 내가 변했구나, 독해졌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네요.
가정이 있습니다.
예쁜 두 아이도 있어요.
한 때는 사랑했기에,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결혼을 해서 남편도 있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누가 봐도 그저 그런 평범한 주부에요.
하지만 남편과는 담을 쌓았죠.
처음엔 남편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너무 미웠지만
시간이 이렇게 흐르고 보니 이젠 누구 잘못인지, 뭐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묵묵히 담을 지키고만 있어요.
남편은 정확히 밤 10시 25분에 귀가를 해요.
이렇게 서재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째깍째깍 시계가 가고 10시 25분이 다가오면 제 심박이 빨라져요.
남편이 오기 전에 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그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에 저는 그냥 정지된 채로 있고 싶으니까요.
집이라도 넓으면 각자의 공간에 숨죽이고 있겠지만 방 세개짜리 작은 아파트엔 몸을 숨길 곳이 없네요.
내 눈에 남편이 보이지 않는 곳, 남편의 눈에 내가 보이지 않을 곳은 컴컴한 거실 소파 뿐이에요.
남편도 저도 서로 부딪히고 싶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고 엮이기가 싫어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며 이렇게 피하고 지내지요.
한 집에서 이렇게 서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지내는 것, 불편해요.
불편한데 그게 또 그냥 편해요. 이상한 말이지요..
낮에는 열심히 살아요.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기도 하고 맛있게 밥을 지어 배불리 먹이기도 해요.
아이들을 깨끗이 씻기고 토닥여 재우고 아이들이 잠들면 집안을 정리하고 저를 정리하고.
그리고 제 시간을 가지다가 남편이 돌아오는 10시 25분이 되면 이제는 없는 사람처럼 지낼 준비를 하지요.
이렇게 지낸지 이제 한달이 되어가요.
남편도 저도 서로 어디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보려는 의지가 없어서,
앞으로 또 몇달을 이렇게 지내게 될지, 어쩌면 몇년을 이렇게 지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제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이 상황이 힘들거나 우울한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견딜만 하다고,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제가 할 일은 끊임없이 있으니 괜찮다구요.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제 속에서 뭔가 자꾸 끓어넘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음속에 불이나서 뭘로든지 진정시키고 싶어 소주를 물에 타서 한모금 마셨는데,
그것도 술이라고 알콜 기운이 속으로 확 퍼지니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네요.
하지만 이제 곧 눈물을 닦고 아무일도 없는 듯 멍하니 티비 앞에 앉아 잠이 오기를 기다릴거에요.
그래서 오늘 밤도 이렇게 지나가고 내일 하루도 또 시작되고 저는, 저와 남편은 서로 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지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