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뜨니 비가오네요.
이곳엔 잔잔한 비가 오지만 두차례의 태풍이 휩쓸고 있다는 남도는 지금쯤 얼마나 심란한 지경일지 마음이 아픕니다.
실은 볼라벤 때문에... 남편과 아주 오랜만에 감정이 상해있기에 처음으로 이곳에라도 주절거려 볼까하구요.
수도권에 무서운 강풍이 예보되던날, 퇴근해 돌아온 남편과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이다가 한마디.
내일 너무 바람이 심해 간판같은거 날아다니면 출근 안해도 되지 않냐고.
아이들은 휴교도 하는데, 누구나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라면 하루쯤 쉬어도 되지 않냐 했죠.
그말에 남편은 당신은 내가 직장을 쉬는게 그렇게 쉬워보이냐 하더군요.
물론, 당연 아니죠. 하지만 만약 허리케인처럼 바람이 세다면 길을가다 혹은 운전하다 사고를 당할수도 있는데
생명을 지키는게 우선이지 출근하는게 우선은 아니지 않으냐....
그런데 문득 남편이 그러더군요. 당신은 다소 내가 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는거 같은 생각이 든다, 라고...
그럴리가 없지 않아요? 우리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는데, 더구나 남편은 그 직업내에서도 능력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과 존경을 받고 있는데....
어쩌면 어느 가정에서나 한번쯤 있을수 있는 이야기.
그런데 생각해보니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색 안하고 속으로 자존심 상해왔다는 생각을 하니
되려 제가 기분이 상하는 거예요.
그럼 아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데 진지하게 얘기해볼 생각도 안했다는 건가?
평소에 저희 가족은 대화를 엄청 많이 하지요. 아침 저녁으로 왠만하면 식사를 같이 하기에 늘 할 이야기가 넘쳐서
밤에도 속닥거리느라 바쁜데... 그런데 정작 중요한 말은 마음에 남겨두고 있었다니...
남편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뭔가 서운한 말을 평소에 제가 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걸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갈만큼 소통이 안되는 부부라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제가 더 감정이 상해 있네요.
어젯밤에 함께 영화 보자고 <건축학개론>을 고르더군요. 저는 다른걸 골라 돌렸지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대학 3학년때 만나 8년동안 연애, 결혼한지 17년 되었군요.
생각해보니 참 오래 연애한 듯, 아직도 설레는 마음인데... 비오니 여러가지 생각이 나네요.
연애시절 함께 남도를 참 많이 다녔네요. 버스도 타지 않고 한여름 나절을 손잡고 걸어 다녔던 담양의 정자들.
한겨울 첫키스를 나누었던 눈쌓인 다산초당과 강진 앞바다. 동백이 흐드러지던 선운사....
처음 있는 냉전이라 고딩 큰딸은 어젯밤 동생에게 우리 일찍 자야 한다고. 엄마 아빠에게 지금 필요한건 뭐? 라며
눈을 찡끗거리더니, 아들내미와 둘이서 아침부터 뽀뽀해/ 결혼해 라며 손뼉치고....-_-
남편 출근한뒤 책상앞에 앉으니, 갑자기 담양이 그립네요. 그곳이야 매년 여름이면 그렇겠지만,
비바람 견디고 있을 소쇄원 대숲과 배롱나무 흐드러지던 명옥헌, 면앙정, 식영정....
20년도 더 지난 오랜 기억들 속의....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면. 한번 다녀오고 싶은데... 부디 무사히 잘 견디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