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게시판에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좋아했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구요.
제 미천한 경험을 좀 나누고자 적어봅니다.
1. 초등시절
일기를 잘 써서 가끔 담임 선생님의 오해를 받았습니다.;
이거, 니가 쓴 거 맞냐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동네가 부유하지 않아서 학생들의 쓰기 수준이 높지 않았구요.
저는 집에서 달리 하고 놀 게 없어서, 책이나 읽으면서 보냈는데요.(학원 갈 형편이 안되었거든요.)
어머니께서 주말에 도서관 다니는 습관을 들여주셨고,
무엇보다 세살 터울의 언니 책까지 읽다보니 또래보다 독서량이 많았습니다.
인풋이 있으니 아웃풋이 친구들보다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대표로 독후감 대회도 나갔고, 학교 신문에 동시가 실리는 등
제 글쓰기의 전성기였습니다. 제가 글 잘 쓰는 줄 오해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진정성은 없는 테크닉만의 글쓰기를 했던 시절입니다.
2. 중등시절
이 때부터 본색이 드러나 글쓰기의 재능이 없다는 게 밝혀집니다.;
어머니께 진지하게 '초등 때는 글쓰기로 칭찬 많이 받았는 데 지금은 왜 안그런지 모르겠다'고 물었을 때
'니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머릿속으로 집만 열두 채 짓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막연하게 글쓰기는 독서에 경험이 더해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3.고등시절
입시 지상주의 시절이었습니다.
4.대학교 시절
독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책은 좀 읽었지만 글은 안썼습니다.
같은 독서 동아리에 서울예전 문창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글은 문장이 아름다우나 매력이 없었습니다.
공주과여서 사는 게 멋지지 않으니 글에도 본인 품성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더군요.;;
5.아카데미 시절
대학교 졸업하고 모 방송국 아카데미 구성작가 반에 들어갑니다.
주로 현직 작가들이 강의를 하고 과제물을 내면 피드백을 해주구요.
학원생들이 스터디를 만들어 글을 쓰고 얘기하고,
사무실에 가서 매일 인사를 합니다.--;;;;;
(그럼 방송국 알바자리가 낫을 때 연락을 빨리 주지요.;;)
이 때 느낀 거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 나는 잘 쓰는 사람이 아닌데다, 방송용은 더더욱 아니구나.
방송구성작가의 생명은 아이디어 입니다. 트렌드에 맞는 꼭지를 만들고
끊임없이 다른 걸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순발력 있는 인간은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글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잡일을 하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합니다.
특히 이게 싫더라구요.;;
둘, 방송이 참 야비하구나.;;
제가 모 방송국의 특집 프로그램의 구성작가 알바를 가게 됩니다.
당시 박찬호 선수가 완전 날릴 때라, 제 2의 박찬호를 찾아라 컨셉의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전국의 중고등 야구 선수들을 모아놓고 여러 경쟁을 붙여서 제일 잘하는 학생을
미국 다져스 구장에 보내어 야구경기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였습니다.
그 짧은 장면 하나 찍으려고, 그 많은 학생들이 버스 타고 지방에서 와서 고생하고
허무하게 집으로 가는 걸 보고, 이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정말이지 단물만 쪽 빨아먹고 버리는 곳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알바를 기점으로 방송작가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6. 이 후
전 요즘은 그냥 평범한 공무원입니다.
업무상 편지글 비슷하게 쓸 일이 꽤 많은데, 그 글을 정성들여 쓰면서 혼자 기쁨을 느끼는 게
제 글쓰기의 전부입니다만, 전 만족합니다. 왜냐면, 저는 제가 전문 글쓰기를 하기에는 실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았으니까요.
요는, 글쓰기를 원한다면 일단은 원하는 분야에 부딪쳐서 내가 거기에 맞는 사람인지 아는 게
우선이 아닌가 합니다. 학교는 그닥 중요하지 않는 듯 합니다. 제가 쓸데없이 대학을 두 군데나
나왔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제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문창과라고 해서 특별히
커리어에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은 안듭니다. 학교가 아니라도 글쓰는 모임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 곳이 오히려
경제적, 시간적 부담이 덜 되고 글쓰기 피드백을 잘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