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
특징: 학계, 재계, 관료, 문화예술계 인사가 많으며 정계 진출자는 적음 (친일경력 부담 때문일 것으로 짐작)
정계진출자
이회창(전 한나라당), 정두언(한나라당),박근혜(한나라당),김무성(한나라당) 등등
민영휘 (조선왕족/ 조선병합지지/ 자작/ 매국공채 5만원/ 부정축재- 조선최대갑부 반열)
손 민병도 : 제일은행장, 한국은행총재 지냄
증손 민웅기 : 남이섬 소유
증손 민인기 : (대치동) 휘문고교 이사장(현/ 교정에 민영휘 동상
세워져 있음)
현손 민경현 : (인사동) 풍문여고 이사장(현)
이완용
을사오적. 한일합병 공로로 백작작위 및 은사금 15만원 받음.
손자 이병길 (귀족작위 및 재산 승계), 증손 이윤형 (광복후 숨어지내다 60년대말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 역임, 17년간 캐나다 생활후 80년대말 귀국, 이후 땅찾기 소송 승소로 수십억원 챙김) 손자 이병주 (62년 일본 밀항, 일본정부가 귀화시키고 환대), 증손 이석형 (79년 이완용 부부 묘를 파내어 화장) 이병도 : 실증사학으로 유명한 친일사학자. 이완용의 친척으로 알려짐. 화장 후 관 뚜껑 태워버림.
송병준
을사오적. 일진회 총재. 한일합병 공로로 백작작위 받음. 아들 송종헌 (작위 및 재산 승계, 중추원 참의, 조선농업주식회사 설립), 손자 송재구 (홋카이도에서 조선목장 경영) 증손 송돈호 (역삼동 건설회사 운영, 90년대 중반 이후 송병준 명의 토지 상속소송 주도. 사기 혐의로 07년 4월 구속. 최근 친일재산 특별법 위헌소송 냈으나 기각)
이근택
을사오적. 형 이근호, 동생 이근상 등 총 6명의 일제 귀족을 배출한 대표적 친일집안. 아들 이창훈 (자작작위 승계), 증손자 이상우 (전 공주대 총장), 이춘우 (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2005년까지 선대의 친일재산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총 9건의 소송.
민영휘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받음. 관직자리에서 모은 재물로 일제시대 최대 갑부가 됨. 휘문고교 상속. 증손 민덕기 (풍문여고 설립), 민인기 (휘문의숙 이사장), 고손 민경현 (풍문학원 이사장) 손자 민병도 (제일은행장, 한국은행 총재), 증손 민웅기 (남이섬 소유)
이병무
정미칠적. 해산된 군대가 일으킨 의병 진압.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수여받음. 아들 이홍묵 (자작작위 승계), 증손 이진 (12대 국회의원, 현 웅진그룹 환경경영담당 부회장)
민병석
경술국적.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받음. 총독부 중추원 고문 다섯 차례 역임. 아들 민홍기 (자작작위 승계), 민복기 (일제시대 사법부 근무, 5~6대 대법원장) 손자 민경성 (일본계 기업체 사장), 민경택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검사), 민경삼 (기업인)
박제순
을사오적.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받음. 중추원 고문 역임. 아들 박부양 (중추원 서기관), 손자 박승유 (성악가, 강원대 음대 교수)
이해승
조선왕족 종친. 한일합병 공로로 후작작위 및 매국공채 16만2천원 받음. 손자 이우영 (그랜드 힐튼 서울 호텔 회장) 2007년 경기도 포천 일대 시가 300억원대 토지 국가 귀속 결정
김연수
호남지방 대지주. 친일 기업인. 중추원 참의. 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경협 회장 역임. 장남 김상준 (삼양염업 명예회장), 차남 김상협 (16대 국무총리), 3남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5남 김상하 (삼양사 회장)
최남선
3.1 운동 후 변절. 어용단체 조선사편수회 참여. 중추원 참의. 장남 최한웅 (서울대 의대 소아감염학 권위자), 손자 최국주 (피부과 전문의), 최득주 (경기대 경영학부 교수)
문명기
제지업, 수산업, 금광개발로 부 축적. 태평양전쟁 당시 본인소유 광산을 일제에 기부. 중추원 참의. 맏손자 문태준 (7~10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최준집
강릉 갑부. 중추원 참의 역임. 37년 중일전쟁 발발하자 회갑연 취소후 국방헌금 1000원 납부. 아들 최돈웅 (8, 14, 16대 국회의원. 02년 대선 당시 이회창후보 불법선거자금 연루돼 징역1년 선고)
현준호
호남의 대표적 친일 부호. 중추원 참의 임명 후 변절. 손자 현양래 (현우실업 대표) 아들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손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졸업, 만주군 장교로 근무. 창씨명: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친일경력 논란. 5~9대 대통령 장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차녀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
홍진기
일제시대 판사로 근무. 창씨명: 德山進一. 법무부, 내무부 장관 역임. 전 중앙일보사 회장.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사위 장녀 홍라희 (이건희 부인, 리움 관장), 장남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전 주미대사), 차남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
방응모
일어 상용운동 주창. 친일잡지 <조광> 발행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9대 조선일보 사주. 손자 방우영,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 증손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성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2대 부통령. 고려대학교 설립. 동아일보 창간. 손자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
이병도
중추원 산하의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한 친일 사학자. 한국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 일제하 식민사관 정립. 손자 이장무 (서울대학교 총장), 이건무 (문화재청장)
백붕제
조선총독부 관리 출신 아들 백낙환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회장, 인제학원 이사장)
윤치영
침략전쟁 찬양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 받음. 대표적인 친일파 집안. 안중근 의사 숭모회 초대 이사장 장남 윤인선 (국회 사무처 서기관), 손자 윤인구 (KBS 아나운서)
박희도
목사.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으로 2년 복역. 일제말 친일 변절. 아들 연대 세브란스 병원 의료행정직 근무 중 변절자 후손 비난에 못이겨 도미
이갑성
민족대표 33인. 이후 일제의 밀정으로 일했다는 증언 다수. 창씨개명. 아들 이용희 (전 국토통일원 장관), 손자 이재현 (서울 성수동에서 물류회사 운영)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유공자 유족 6283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고, 봉급생활자는 10% 남짓이며,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일부는 친일파 후손에 밀려 외국으로 피했다.
특징: 대다수가 가난을 대물림하거나 국내에 적응 못하고 해외로 이주. 사회주의 계열은 독립운동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함. 봉급생활자 중에 경비원 다수.
안중근
독립운동 최고명가. 40명 넘게 독립운동에 투신, 11명 서훈 받음. 부인 김아려 (중국 상하이에서 별세), 맏아들 안우생 (안분도. 여섯살 때 일제 밀정에게 독살) 사촌동생 안경근 (4.19혁명후 '민주구국동지회' 설립, 5.16 군사정권 하에 7년간 투옥) 조카 안민생 (평화통일 운동에 매진 중 5.16 군사정권 하에 10년간 징역), 안진생 (80년 전두환정권 하에 강제해직 당한 후 8년간 투병 뒤 별세) 이후 후손들 해외로 이주: 손자 안웅호 (미국 심장병 전문의), 손녀 안선호 (LA), 안연호 (시애틀), 외손녀 황은주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 황은실 (미국), 동생 안공근 가족(북한), 조카 안연생 가족(파나마), 사촌 안봉근 가족(독일)
안창호
임시정부 지도자. 흥사단 창립한 민족계몽운동가 자녀 모두 도미 후 성공했으나 한국과 왕래 전무: 장남 안필립 (헐리웃 영화배우), 차남 안필선 (하워드 휴즈 항공 부사장), 장녀 안수산 (미해군 최초 여성 포격장교, 미국 안전보장국 비밀정보 분석가), 차녀 안수라 (미국), 3남 안필영 (미국)
김구
사회적으로 대접받은 유일한 독립운동가 집안 아들 김인 (안중근 조카 안미생과 결혼, 광복직전 요절) 아들 김신 (공군참모총장, 교통부장관 역임) 손자 김진 (참여정부 주택공사 사장,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김양 (상하이 총영사, 국가보훈처장), 김휘 (광고대행사 에에블리 대표), 김미 (김호연 빙그레 회장 부인)
신채호
1912년 망명 후 지금까지 국적 회복되지 못함.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땅과 집 소유권도 인정받지 못함. 아들 신수범 (일제하 은행 근무, 광복 후 실직. 신채호가 이승만 정책에 반대하자 자유당 정권에게 신변위협. 넝마주이, 부두노동자로 생활하다 이승만 하야 후 은행 복직) 며느리 이덕남 曰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치다"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서장 역임 아들 차영조 (백범 암살 후 임시정부 관계자 가족 모두 숨어지냄. 19세까지 성을 申씨로 바꾼 채 생활. 아버지가 귀국하지 못하고 별세하자 광복 후 동냥살이. 초등학교 졸업 앞두고 어머니 중풍으로 쓰러지자 학업 중단)
장병준
호남 갑부 출신. 임시정부 외무장관 역임. 4형제 모두 독립운동. 장남 장경식 (제대로 교육받지 못함), 손자 장하정 (경기도 용인 시골마을에서 양자로 입적한 스리랑카 노동자 오산다의 보살핌을 받으며 말년을 보내는 중. 오산다曰 "스리랑카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인지 한국에 와서 독립운동 자손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조카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손자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장하석 (런던대 교수) 조카 장충식 (한국후지필름 사장), 손자 장하성 (고려대 교수), 손녀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
김성숙
조선의열단 선전부장,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내무차장, 국무위원 역임. 이승만 독재 반대로 궁핍한 생활. 아들 김정봉 (일제 때 징용, 귀국 후 정신이상으로 경제활동 중단), 손자 김덕천 (아내 위암, 본인 구강암 진단받았으나 독립유공자 혜택없어 치료 못받음)
이원근
1919년 4대문 사건 주동자로 옥고 치름 손자 이승봉 (경비원으로 근무)
방한민
조선총독 암살계획으로 옥고 치름 손자 방병건 (최근까지 경비원으로 근무)
홍병기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장로, 독립선언서 서명 손자 홍재웅 (노모 치매와 중풍으로 사망, 본인 사업실패 후 당뇨와 치매 환자, 아내 동사무소 공공근로. 보상금 혜택대상 제외)
이승훈
민족대표 33인. 3.1운동 당시 기독교 측 수장 5대손 이기대 (지하셋방 살며 포장마차 운영. 보상금 혜택 전무)
유여대
민족대표 33인. 목사. 1919년 의주에서 독립선언문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 헌신하다 1937년 작고. 후손 유창근 (부친 사망후 의료지원 혜택 중단. 노모 병원비 부담 위해 시간제 아르바이트)
신흥식
민족대표 33인.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 치르다 1937년 사망. 손자 신덕수 (교육 못받고 자라 막노동판 전전. 본인 허리와 부인 뇌수두증 치료하기에 보상금 턱없이 부족)
박준승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지도자. 손자 박기수 (10년 전 뇌경색으로 와병. 부인 고혈압에도 불구하고 남편 대신해 남의 논농사 도움), 증손자 박정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파로 키우던 소 40마리 헐값에 매각)
나인협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교사. 손자 나일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 증손자 나명재 (평택시 개인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