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미용실이 있었는데 반년동안 머리를 계속 망쳐서...
결국 지인이 다닌다는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갔어요.
도시에 지점이 3-4개쯤 되는 미용실인데 제가 간 곳은
본점이라더군요.
가운입고 앉아서 머리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저를 계속 유심히
쳐다보더니 다가와서 말을 걸더라구요.
'혹시 ## 고등학교 안 나오셨어요?'
'네. 맞는데요'
'어머..너 @@ 아니니? 나 &&야'
허거덕... 고등학교때 둘 다 키가 큰 탓에 맨 뒷줄에
항상 같이 앉다가 친해진 친구였어요.
어찌나 반갑던지!...
저는 고등학교때나 지금이나 체중변화가 별로 없어서
늙기만 했는데
친구는 굉장히 아이가 통통했었는데 지금은 날씬해져서
말 안했으면 저는 못 알아봤을거에요.
그거 있쟎아요.
뜨거운 기계에 머리 고정하고 있는거......
그 상태로 폭풍수다를 떨고 있는데
디자이너가 다가오더니 친구한테 '원장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야..네가 원장님이야?"
'어..ㅎㅎㅎ'
'와...이 미용실 유명하던데 너 대단하다'
디자이너들 모두 단체로 앞치마를 입고 있는데
그 친구는 그런게 없어서 전 그냥 손님으로 온 줄 알았지요.
학교때 많이 친했었는데
저는 대학을 가고 친구는 대학을 못갔었어요.
가정환경 탓은 아니고 그 친구가 공부에 재능이 없어서.....
그 친구는 재수했고 그 해 여름 방학에 만나고
그 후로 연락이 끊겼었어요.
그때도 천리안 하이텔이 있기는 했지만 둘 다 컴맹이어서
이메일같은거는 없었고 삐삐도 흔해지기 전이었으니...
연락할 방법은 오로지 집전화인데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어찌하다보니 흐지부지 연락이 끊어진거지요.
우리 둘은 친했지만 둘이 어울리는 그룹은 달라서
공통된 친구도 없어서..... 다른 친구 통해서 소식듣거나
연락처 알아낼 수도 없었고.......
그렇게 서로 아무 것도 얽히지 않은 관계여서
가장 속마음 많이 털어놓을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수다를 떨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친구가 시간되면 머리 다 하고 자기랑 차 한잔하고 가라고
청하더군요.
끝나고 옆에 커피숖에 갈 줄 알았는데 승강기를 타자더군요.
커피숖 안 가고?라고 물어보니 위에 자기 집에 가서
마시면 된다구....
그 빌딩 꼭대기가 친구 집이더군요.
인테리어 잡지에 나와도 될 정도로 집이 좋더군요.
폭풍수다떨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친구는 재수할때 여름에 나를 만난 후에
부모님께는 재수학원다닌다고 거짓말하고 미용학원을
다녔다네요.
나중에 부모님이 아시고는 뒤집어져서 난리가 났지만
본인이 고집부리니 어쩔 수 없었다고.
미용사자격증 금방 따서....바로 미용실 시다로 일 시작하고
imf때 자리는 좋은데 망한 가게를 권리금없이 인수해서 시작했었대요.
그동안 자기가 모은 돈에.... 부모님이 다른 자식은 다 대학갔는데
너만 안 갔으니 그 학비하고 용돈에 해당하는 목돈을
줘서 인테리어 싹 새로 하고 시작할 수가 있었다네요.
다른 형제들은 대학다니면서 용돈 받았지만 그 친구는
바로 돈을 벌었으니 집에서 전혀 용돈을 안 받았었는데
부모님이 공평해야한다고 그것까지 챙겨주시더래요.
다행히 그게 대박나서 체인까지 내고 잘 된거지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미용실 정도면 그 빌딩도 아마
그 친구 소유일거에요.
기분이 참 좋았어요.
나는 학교때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편이었었는데 그냥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고...
그 친구는 공부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훨씬 성공했네요.
그당시 앞머리 세우는게 유행이었어요
구르푸 감거나 롤빗으로 말아서 드라이하고 스프레이뿌리기...
그 친구 그 앞머리를 목숨처럼 여겨서 방과 후에
학교를 나서면 거울보면서 머리부터 세웠었어요.
가방에 항상 스프레이하고 빗을 여러개 챙겨다니다가
불시 가방점검때 걸려서는 손바닥맞고 벌서고 했던 기억이 나서
내가 넌 그때부터 헤어디자이너의
재능이 있었던거라고 했더니 막 웃더군요.
자기는 기억이 잘 안난다고....
내가 성공한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오는 기분이 상쾌하더군요.
참 잘 됐어요.
10년 전만 같아도 질투가 났을 듯 한데...
지금은 좋기만 한걸 봐서는 나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
근데 다 좋은데 그 미용실 계속 다니기는 왠지 불편하네요.
됐다는데도 계산할대 할인을 해줘서 그것도 부담스럽고...
머리가 맘에 안들면 다른데도 옮기기도 좀 미안할거고....
그런데 천성이 안 변했다면 그냥 학교때처럼
솔직하게 이러저러하다고 말하면 될 듯도 해요.
그 친구도 내가 반가운 이유가...손님이라서가 아니라
학교때 친구였기 때문일테니 별문제는 안 될 듯도 하네요.
그냥 중구난방 내용없는 일기장 대용 수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