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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길냥이가 새끼들을 데려왔어요.

gevalia 조회수 : 2,635
작성일 : 2012-06-25 04:00:17

전 미국에 살고있는데요..4월 중순부터 제가 먹이를 주는 길냥이 같지 않은 길냥이가 있거든요. 너무 깨끗하고 예뻐서 얘가 살던 길 건너 집을 방문하면서 다 물어봤어요. 이런 고양이가 혹시 댁네 고양이인지.

그러던 5월, 배가 점점 불러오는거 같았고 급기야 임신이 확실한걸 알았죠. 동물보호소에선 모조리 유산시키고 어미를 입양보낼수는 있어도 새끼를 가져오면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봄이라 새끼들이 넘쳐났거든요.

중간에 한번 동물병원 데려가서 검진도 받았구요. 수의사왈, 새끼를 지우기엔 너무 늦었다고 했어요. 처음부터 이 길냥이를 만질수는 없었거든요. 한 2주 지나가니까 먼저와서 제게 몸을 비비고 그래서, 잡아 간 건데. 저때도 병원의사도 간신히 만졌거든요. 이동장에서 나오더니 창문이며 문으로 나가려고 막 길길이 뛰는데, 정말 무섭더군요..놀래서 학학대고..전 괜히 못할짓 했나 싶기도 했어요..저러다 새끼들이 무사할지 걱정도 됐고..이젠 거의 집고양이 처럼 만질수가 있죠. 밥먹을 때 만져도 괜찮을 정도예요. 안는걸 싫어하지만 안아도 괜찮구요.

 

임신 막바지엔 얼마나 먹는지 말도 못해요. 저보다 거의 3배는 더 먹고, 아침 저녁 치킨 겉에만 구어서, 캔이랑 같이 줬거든요. 사료도 같이. 영양이 필요하니 새끼들 먹는 사료를 줬어요. 얘가 물을 잘 안먹어서, 그리고 길고양이라 그런지 날 것을 더 좋아하는 거 같아, 겉만 익혀서 잘라줬죠.

그러더니 이틀 안보이고 배가 홀쭉해서 돌아왔죠. 다음 주 화요일이면 새끼들이 6주가 돼요. 제가 토요일 아침에 캐나다에 일이 있어서 왔는데 금요일 밤..슬슬 짐을 챙기려는데 옆집 할머니가 문을 두드리셔요. 까만 새끼고양이를 안고.

뒷마당에 있는데 고양이 새끼 울음소리가 나서 와보니, 우리 뒷마당에 까만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있더래요. 두번째 고양이는 어미가 물어오는걸 보니, 힘겹게 데려오다 떨어뜨리고 떨어뜨리고 그러면서 오더래요.

 

제가 늘 걱정했거든요. 어미가 길 건너 집 지하에 살아요. 일차선 왕복도로를 건너오는데, 볼때마다 전 조마조마했죠. 차들이 꽤 다니는 곳이거든요. 밥먹고 돌아갈 때 길건너가는 걸 다 뒤에서 지켜보고 잘 건너간 걸 보고야 집에 들어왔어요..그래서, 이웃들이..제가 잘 챙겨주니 새끼들을 다 데려올것이다 그랬는데, 한달이 지나도 안 데려오고, 전 일주일 집을 비워야하고..걱정만 했는데..

새끼 데려올 걸 대비해, 옆집할아버지가 집도 만들어 준게 있어서, 거기에 먼저 온 두마리를 넣어두고, 할머니가 제가 건너가서 데려오는게 나을거 같다고..위험하니..그래서 건너가니, 두마리를 데리고 잔디밭으로 나오는거예요..길 건널 준비를 하기에, 제가 냉큼 안아서 길을 건넜죠..

그런데 보미 (제가 길냥이 이름을 지어줬어요..올 봄에 이녀석을 만나서, 보미라고..)가 또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거예요. 그래서 또 뒤따라갔더니..세상에..또 두마리를 데리고 나와요. 깜깜한 밤이라 제가 랜턴들고 간신히 두마리를 잡았어요. 어린것들이 얼마나 빠르던지.

그랬더니 다시 길을 안건너가요..6마리 다 데려온걸 아는거겠죠..어떻게 자기 자식이 6마리인걸 알까요?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두마리씩 세번 데려왔으니 6마리..2x3=6,,곱하기도 잘하는 보미는 아마도 냥이계의 아인슈타인.

 

밤 12시는 다가오는데, 에미가 새끼나르느라 지쳐보여 (이날 저녁은 왠지 잘 안먹더라구요), 닭가슴살이랑 캔을 또 주니 허겁지겁 먹어요. 새끼를 부르는 특이한 목소리가 있는데..그렇게 부르면 새끼들이 모여들어요. 너무 신기한 경험이예요.

지금은 옆집 창고와 제집이 붙어있고, 그 창고밑에 공간이 약 8cm 정도 있는데, 거기 다 들어가 있어요. 어미는 좁아서 못들어가구요. 다른 동물도 그렇고. 거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나봐요. 2주전 부터 계속 우리 뒷뜰 여기저기를 조사하더니 거기로 낙점을.

짐 챙기려다 이런 일을 당하고, 새벽 4시에야 전 다 짐도싸고 대충 집정리를 했어요. 두시간 자고 일어나 또, 보미먹이주고 새끼들 한번 보고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와서도 계속 이 녀석들 생각이네요.

30년 넘게 계속 개만키우다, 우리 검은 고양이 나비를 키우게 됐는데요. 2년전 겨울, 무턱대고 문만 열면 이녀석이 들어오는거예요. 의사 왈 일년이 채 안된 고양이라고..까만색이라 무섭기도 했고, 전 고양이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좀 무서워했었거든요. 그러다, 제가 코가 꿸 줄이야..우리 나비때문에 고양이가 정말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걸 알았구요. 하는 짓이 그렇게 다를수가 없어요..거의 개냥이과에 속하는 고양이이기도 하구요. 놀아달라고 할땐 자기가 즐겨노는 품목을 물고와서 제 발밑에 떨어뜨려요..안 놀아주면 손으로 계속 툭툭 치구요. 너무 보채서 사실 좀 힘들때가 많긴하죠.

 

그리고 나비때문에, 길냥이들이 다르게 보이고 급기야 이런 일이..다른 길냥이들도, 주인이 있었으면 팔자늘어지게 살텐데 참 고달프게 사니까요. 첨 우리 나비 집에 들어와서, 늘어지게 자는데 많이 안스럽더라구요. 밖에선 조마조마 하게 사니, 잠을 푹 잘수가 있었겠나요.

 

다행이 이웃들이 모두 호의적이라, 제가 없는동안 동료와 이웃분들이 돌봐주기로 했어요.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안 좋은거예요. 보자마자 제가 떠나오니..보미가 저 만 의지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겐 저와 있으면 도망은 안가도 계속 하악댔어요. 이웃들이 먹이 두고 멀리서만 관찰하기로 하고 제게 매일 이멜을 보내줘요.. 제가 하도 걱정을 하니..

 

웃긴 건, 보미가 다른 고양이들에겐 다 하악대는데 검정색 아주 못생긴, 쌈만 하는 숫고양이가 있거든요. 이녀석에게만 다가오는 걸 허락 해요.. 아마도 이넘이 남편같아요. 목둘레가 멀쩡한 날이 없이 피가 흘러요. 최근에도 약 4-5cm 정도 가 벗겨지고 피와 짓물이 나오고 모기들이 덤벼들기에, 수의사에게 항생제라도 받아와 먹일까 했는데, 직접 보지않고 약은 못준다네요. 아직 이녀석은 제가 만지질 못해서, 먹이만 좀 잘 챙겨줬거든요. 상처회복이 빨리될까 해서요. 떠나기 전 보니, 아물어가는 듯 하기도 하구요. 옆집 할아버지 왈 야생고양이는 상처가 나도 회복이 빠르다는데 그런건지..상처난지 10일 정도거든요.

 

여튼, 이 검정고양이가, 보미가 새끼물어오는 날, 길건너에서 보미와 새끼를 지켜주는거예요..참 신기하죠.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선 얼굴을 보고 사귀는게 아닌건 확실한가봐요. 제가 넌 어떻게 저렇게 생긴녀석이 남자친구냐..그러거든요.

보미는 이제 7-8개월 정도 밖에 안된, 자기도 새끼고양이에 해당돼요. 너무 작고 여리여리해요..그런데 어떻게 6마리를 그렇게 키웠는지..대단하죠. 새끼들이 하나같이 토실토실해요.

 

검정색 두마리에, 앞 발 하얀 고등어 세마리..그리고 턱시도예요.

이름은, 데려온 순서로 도,레,미,파,솔,라..로 붙여주기로 했어요. 오늘 하루 여유가 있어서 나가서 좀 관광이라도 할까 하는데, 너무 감동적 경험이고 색다른 경험이라 흥분해서 긴 글을 남기게 되네요. 호텔 22층에서 밖을 내다보며, 경치 좋다..가 아니라, 돌아가면 새끼 들 뭘 해서 잘 먹여키울까 궁리중입니다..마당에서 놀수있는 어떤 걸 더 옆집할아버지에게 만들어 달라고 할지 웹 둘러보며 궁리중이기도 하구요. 아주 큰 나무 밑에 새끼들을 데려다 놨으니 좀 크면 놀 곳은 충분한거 같아요.

약 3주동안 제가 더 돌봐주고 입양보내려고 하거든요. 동료들에게 알아보고 있어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고 어딜가면 틈틈이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커피만 네잔 마시고 관광 의욕도 떨어지네요. 빨리 집에가고 싶단 생각만 하구요. 이제 이곳은 오후 세시..슬 슬 나가서 뭘 좀 먹어야 겠어요.

 

 

 

 

IP : 216.46.xxx.18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캣맘
    '12.6.25 4:33 AM (77.57.xxx.161)

    저도 한국에서 캣맘활동중인데 지금 잠깐 유럽에 와 있어서 늘 걱정되요. 남편에게 대신 일임하고 왔는데도 맘이 안놓여요. 집에 강쥐도 한 마리있구요.. 남편보다 더 보고싶고 늘 걱정되고 그래요^^;; 힘 닿는 데 까지 돌보고 싶어요, 저도... 애기들이 좋은 주인들 빨리 만났으면 좋겠네요.

  • 2. ....
    '12.6.25 6:19 AM (175.253.xxx.229)

    가슴 따뜻한 사연이네요~^^

    아이들 보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글님과 냥이 가족 앞날에 좋은 일만 함께 하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 3. .....
    '12.6.25 6:28 AM (108.54.xxx.221)

    저도 미국 이예요.
    지금 저희집 거실에도 길냥이 한마라기 푸우욱 자고 있어요.

    이놈도 정말 강아지 같고 , 참 우아하고 , 막 그래요.
    얼마나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는지.....

    저희집 아이들은 하루종일 얘만 신경써요.
    저희집 애도 누워 있으면 고등어 한마리예요.

    원래는 밥만 줬는데 허리케인 이후로 저희 합쳤어요.

    정말 고양이는 매력적인 동물이죠.
    불러도 꼭 금방 안봐요.
    튕김이 예술이죠.

    첨엔 저희가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얘때문에 살아요.


    그 어린 고양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나 키우고
    독특한 힘센 남편까지 있다니 신기하네요.

    저희는 2층짜리 뒷뜰있는(공용공간) 아파트 인데
    뒷뜰있는 님이 너무 부럽네요.
    (저희도 뒷마당있는 데로 이사가고 싶어요)

    그 고양이도 참 복이 많네요.
    여행지에서도 그 고양이 생각 뿐이라니.....

    참 반갑네요.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작년에 가족들이 다 피부과 같었어요.
    고양이 벼룩 때문에요.
    이게 무척 간지러워요.

    꼭 예방약 발라 주세요.

    하여튼 저희처럼 길냥이 키우신다니 너무 반가워서.....글 남겨요.

  • 4. 가슴이 정말
    '12.6.25 7:34 AM (124.185.xxx.105)

    훈훈해 집니다.
    저도 원글님의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 5. gevalia
    '12.6.25 11:43 AM (216.46.xxx.180)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 나가보려다 그냥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먹고 쉬었어요. 보미를 따로 아침, 저녁 챙기면서 많이 신경쓰이고 피곤했었거든요.

    제가 게을러 저 혼자 해먹는것도 잘 안해먹고, 치우는건 더 귀찮고 그런 사람인데, 난 못먹어도 이 녀석 임신했을때, 그리고 새끼낳고 나서 먹이를 줄때마다 허겁지겁 많이 먹으니 신경을 안 쓸수가 없더군요.

    금요일 밤, 네가 이렇게 다 잘 키운거냐고 칭찬을 해줬어요. 아줌마 돌아 올 때까지 어디가지 말고 친구들이 주는 거 잘 먹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잘 있다고 하네요. 새끼들도 6마리도 다 잘 있구요.

    우리 나비도 애교가 어지간 하지만, 고양이 키스라고 하나요..그 건 잘 안 해주는데요. 보미는 볼 때마다 세네번 제게 해 주는거예요. 고맙고 황송해서 원..그리고 저와 있을때 유난히 제 눈을 뚫어지게 이넘이 자주 쳐다보거든요. 마치 뭘 말하는 거 같은데 제가 알길이 없죠. 근데 좀 불안해 하는 눈 빛 인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전 눈 마주칠때마다, 아줌마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걱정하지 말아..알아 듯 건 아니건 그렇게 말해줘요. 엉덩이도 수시로 두들겨주고요. 이렇게 정 들면 안되는데.. 전 새끼먼저 분양 다 시키고 정말 좋은사람 찾아 보미도 보내주려고 하거든요.

    마음 같아선 데리고 있고 싶지만, 우리 나비가 하도 보채고, 사랑을 갈구하는 타입이라 전 마치 고양이 세마리 키우는 기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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