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정리를 했어요.
친정 엄마가 저 애 둘 키우면서 못 먹고 살까봐 해다주신 이런 저런 묵은 반찬들,
먹기엔 이미 늦었지만 버리지도 못하고 냉장고 칸 채우고 있던 것들, 다 정리했어요.
음식쓰레기 내다 버리는데 제 몸이 휘청할 정도로 양이 많네요.
어짜피 버릴거 더 일찍 갖다 버릴걸.. 그러면 사료로 만든다 해도 더 먹을만 했겠지.. 싶었어요.
내친김에 옷장 정리도 했어요.
결혼 전에 입던 옷, 큰애 임신해서 배 부르기 전에 입던 옷, 둘째 낳고도 미련을 못 버리던 옷들.
그냥 과감히 다 봉투에 넣었어요. 지난 여름에도 못 입던 옷들 다 챙겨 넣었어요.
재활용 함에 들어가면 어짜피 다 풀어지고 구겨질테지만 그 옷을 입었던 날들이 하루하루 떠올라
곱게 곱게 개어서 봉투에 챙겨 넣고 재활용 함에 넣고 왔어요. 두번이나 왔다 갔다 했지요.
그 중에 한 옷은 제 학부모 중에 한 분이 선생님 이 옷 입으시니까 너무 고우세요.. 해서 기억하고 있던 옷도 있었어요.
이제는 살이 쪄서 영영 입지 못할 옷이지만 그날의 기억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옷이기도 했죠.
그랬더니 냉장고도 너무 가뿐해 져서 자꾸 열어보게 되요.
옷장도 공간이 많이 남아서 보기에 훨씬 홀가분하네요.
결국엔 이렇게 버릴걸.. 진작에 다 정리할걸 그랬죠.
그리고나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우리 사이도 이제 끝내자.. 나는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
구구절절 보냈지만 남편으로부터의 답은 없어요.
우리 사이도 이렇게 버릴걸 .. 진작에 다 정리했어야 해요.
아이들이 아직 어립니다. 네살 두살이에요.
이혼하면 아이들은 니가 데려가라.. 했던 남편의 말, 제가 녹음해 뒀어요.
네. 아이들이 불쌍하고, 아이들 덕분에 제가 살아서, 지금까지 버텨왔어요.
이혼하면 저는 무직의 이혼녀가 되고 당분간은 남편의 도움을 바랄 수 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배운게 있고 하던 일이 있으니 어떻게 됐든.. 애들과 잘 지내보려고 합니다.
제 감정에 빠져 지난 숯한 날들.. 아이들 한번 제대로 안아주지도 않고
큰애한테 화풀이 하듯 지내온 지난 날들.. 이제는 정리해야 되겠어요.
결국엔 이렇게 될 걸.. 아이들에게 상처나 남기지 않게 진작에 정리할걸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