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보름쯤 전에 술 마시고 사고를 쳤어요.
원래도 술주사가 심한 사람이라 거의 끊다시피 살다가
마음이 풀려 막걸리 두 대접 마시고 그 사단이 났네요.
동네 싸움도 나고 아직 어리지만 애들도 좀 놀랬고..
그런데 저는 제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 이번엔 제가 너무 마음을 다쳤어요.
저한테 남편이 못할 말을 했거든요. 이전에 술 마시고 저희 부모님을 욕되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남편한테 화도 뭣도 아닌 지친 감정이 들고 그렇네요.
남편은 뭐.. 보통 그렇듯, 술 주사만 아니면 성실하고 능력 좋은 그런 사람이죠.
이번에도 술 깨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과하고 나름대로 자숙의 기간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시댁에서도 남편이 그러는거 잘 아셔서 시어머님은 뭐라 말씀 안하셔도 전후 사정을 다 알게 된
시누님이 저를 달래기도 하시고 미안하다 말씀도 하시고 다독이시네요.
그래봤자 팔이 안으로 굽긴 하겠지만 그간 남편의 주사에도 시어른들 생각해서 풀고 넘긴게 많아요.
이번엔.. 제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져서..
술김이라곤 해도 아주 마음에 없던 소리는 아니겠지 싶은 생각이 계속 들고..
내 인생이 뭔가, 저 사람한테 나는 뭔가, 우리 사이는 어디서부터 꼬인건가.. 그렇네요.
보름 째 남편과는 말 한마디 안하고 있어요. 이젠 소리 지르고 화내고 싸우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거 같아서.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릴 그런 에너지도 남편에겐 쓰고 싶지 않은 그런 상태에요.
그런데 어제 저녁엔 남편이 평소처럼 저에게 말을 걸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데
정말 대꾸도 하기 싫고 남편을 보고 싶지도 않고.. 애들도 있는데 이러면 안되지 싶어서 건성으로 듣는 시늉만 했죠.
남편은 별 말 안해요. 말 꺼내봤자 제 말이 열배는 더 많이 나올걸 알테니까요.
이런식으로 아무 의미없는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계속 되고 있는데요.
애가 하나일 땐 이혼도 쉽게 생각했어요. 이젠 둘이되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렇게 살기는 아직은 제 마음이 너무 얼어서 . .
하지만 결국 이렇게 그냥 살거라면 제가 또 이번 일을 없었던 듯이 잊고 마음을 내려놔야 하는걸까요.
하루하루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것 조차 마음이 힘드니 너무 힘들고 지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