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는 9년 되었고 지금 돌이 안 된 아기가 있습니다. 늦게 낳았죠.
이 어린 아기가 너무 예뻐요. 하루하루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남편과는 2년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개천에서 용난 사람입니다. 의사는 아니에요. 월소득도 그리 높진 않지만 저희 세식구 살 만큼은 벌어 옵니다.
저는 공부며 여러가지, 집안의 지원을 받아 좀 곱게 자란 편의 여자이고요. 친정은 아직도 경제적으로 여유있으세요. 사회적으로도...
다들 아시다시피 이렇게 집안 차이가 나는 경우 부부사이가 좋기는 좀 힘들어요. 각자 자라온 사고방식이나 뭐나 다 달라서.. 게다가 저희 시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격이시라, 집안에서 아예 사람 취급을 못 받으세요. 제 남편은 그저 우리엄마 불쌍해만 연발하고.. 그나마 시아버지가 제 입장을 이해해주십니다.
남편은 막아주지 못하고 효자에, 와이프가 자기 집에 잘하기를 바라는,, 뭐 그래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은 짐작하시라 믿습니다. 개천의 용과 세상모르던 공주의 조합.
달콤했던 신혼 1년이 지나니 몸싸움의 시즌이 찾아옵니다. 치고박고 물건 부수기도 여러번,, 결혼 햇수가 지나갈수록 그것도 잦아들긴 했습니다.
남편에게 정신적 문제(강박증)가 있어 시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정신과에 같이 가서 약도 먹였고,,
정말 너무 힘드네요. 결혼생활이..
저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서로 너무 잘못 만났다는 생각만 들고..
남편은 아기를 절실히 원했습니다. 아기가 있으면 제가 떠나지 못할거 같았대요. 또, 저와의 사이가, 아기가 있으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대요.
얼마전엔 남편이 매춘업소 영수증을 저에게 들켰어요. 엄청 싸웠죠. 자긴 아니래요. 후배 매춘 결제를 해준거라는군요.
허허.. 저는 예전 직장에서 법인카드 업무를 했었어요. 사용처 중에 매춘이 있으면 적발해서 상부에 보고 올리고 법인카드 없애버립니다. 제 권한이죠. 남자들 백이면 백 다 친구 거 결제해줬다 하더군요.
제 남편까지도, 너무 전형적인 변명에 창의성을 좀 가졌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근데 차라리 끝까지 부정해준게 낫죠. 어쩌면..
그래 나 했다 어쩔래, 로 나오면 제 멘탈 붕괴되겠죠?
남편하고 안 살 것 아닌데요.. 너무 예쁜 아기가 있으니까요.
성관계 안한 지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남편 살이 닿는 게 징그럽습니다. 수건도 같이 못 쓰겠어요. 더러워서.
그 영수증 들킨 날은 남편과 같이 있기가 싫어, 아기 안고 친정에 가는데 잡지도 않더군요.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버리네요. 원래 매사에 그래요. 닥치면 회피만 하죠.. 해결 방법을 모릅니다. 남편은요.
하도 답답해 제가 문자로 남편에게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그럴때는 인정하지 말고, "오해할 만한 일을 해서 미안하고 절대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고 모든걸 네 뜻대로 맡길게" 라고 하고 붙잡아야 되는 거라고..
그러겠다는 문자가 오긴 왔어요.
이것도 참,, 몇달전의 일이네요..
남편은 평소에 문제가 닥치면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그냥 묵묵부답으로 피해버리는 성격입니다.
오로지 적극적일 때는, 시댁에 문제가 생겼을 때죠. 갑자기 a부터 z까지 챙기는 섬세한 슈퍼맨이 됩니다. 이런걸 보면 참,, 남편이 아예 문제해결능력이 없다고 여기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아무튼 남편이 그럴 때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요. 결혼했으면 서로가 서로의 것이기를 바라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저이기에..
또 다른 문제는, 곱고 똑바르던 저도 거칠어져 간다는 거에요. 남편하고 싸울 때.. 원래는 욕설 전혀 못했죠. 지금은요? 싸우면 제 입에서 먼저 나옵니다.
몇년전의 폭언, 폭력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분노로 남아있어요.
아이를 낳고 나니 남편을 향한 미움은 여러가지로 제어가 안 되는군요. 사이가 좋던 부부도 이 시기에는 서로 힘들어 (남편은 회사에서 중간급으로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을 시기죠, 저는 집에서 혼자서 아기 키우느라 주말에는 가끔 도움도 받고 싶은데 남편은 나몰라라하고,,) 하는데 원래 문제가 있었던 저희는 오죽하겠습니까.
물론 주말에 아기 데리고 나들이도 하고 외식도 하고 매일 매일이 고통스러운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남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사라지니, 싸우지 않을 때에도 행복하지 않고 싸우고 나서도 그닥 불행하지가 않아요. 그냥 안보이니 시원하고 이래요. 이 상태가 참 문제되는 것 같은데요..
낼모레면 마흔이지만 저 아직 30대인데 이런 감정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되고 무엇보다도 아기에게 미칠 악영향이 걱정되는데 부부상담이 도움이 될지도 믿음이 안생겨요. 지금은 아기 때문에 갈래야 갈 수도 없지만요. 제가 오래 안 보이면 울거든요.
어떻게 저 남자를 믿고 살지 막막~하네요.
단 한가지 희망, 아기를 위해 변하고 싶어요. 부부관계가 좋아질 리는 없겠지만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기적적인 바램만 있네요.
저혼자 심리상담도 오래 받았습니다. 들인 돈과 시간, 어마어마하죠..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공부도 오래 했습니다. 어설프게, 아는건 많죠.
그런데 생활의 변화는 너무 느리게 일어나다가 변화 자체가 아예 멈추어 버리는군요..
이래서 제가 상담의 효과에 대해 좀 불신감을 갖게 되었어요.
부부문제는 초기에 고쳐져야 한다고, 오래되면 교정하기가 힘들다는 말,
부부간의 사랑과 우정 의리 같은 좋은 감정은 서로 오래오래 저축해놓아야 나중에 늙어서 버틸 수가 있다는 말,
이런 말들이 계속 생각이 나고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만..
여리기만 했던 제가 '결혼'에 기대했던 게 너무 많았나봅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낮추어지질 않네요.. 결혼 9년이 지났는데도요.
남편을 1차 포기, 2차 포기, 3차 포기해도 더더욱 밑바닥을 보여주는 당신, 당신을 믿고 어떻게 살런지..
매춘 이후에는 (당연히 이번이 처음이 아니겠죠. 상습이야 아니겠지만.. 돈관리를 전부 제가 하거든요. 노래방 접대비 한 번 들켰고요. 아주 가끔 가나봅니다. 이번에 경을 치긴 했지만 앞으로도 안 간다는 보장은 없죠.)
그냥 남편을 현금지급기처럼 생각하고 살까, 하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면 저야 편하고 좋고 상관없지만,
아기가 걱정되네요. 많은건 못해주어도 화목한 가정에서 키워주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마음이 아파요.
남자들은 아기가 말도 하고 웬만큼 크기 전엔 아이와 유대감을 잘 못 느낀다고 하지만 제 남편은 더더욱 그런 걸 잘 못해요. 제가 만들어줘야 하는데 저도 이제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요.
아기 앞에서 싸운건 딱 한번이지만요.. 다시는 안 그럴 겁니다. 소중한 아기 앞에서만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겁니다.
또 걱정이 되는 건, 제가, 아기를 제 편으로만 만들고 남편을 적대시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까봐, 그렇게 어리석은 엄마가 될까봐 마음이 무거워요.
저는 남편과 아기가 잘 지내기를 바라거든요.. 아기의 예쁜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줘도 그냥 예뻐만 할 뿐, 식물에게 물을 주고 영양제를 주듯이 아기에게 사랑을 줄 생각은 없어보이네요. 할 줄도 모릅니다. 남편이 사랑을 못 받고 자랐습니다.
제가 다 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버거워요. 머리가 뜨겁고 열이 나요. 가슴이 타들어가요.
남편이 매춘 영수증을 들킨 후에는 제가 타다주던 정신과 약도 다 끊어버렸어요. 남편을 돕고 싶다는 생각마저 안 들었습니다. 남편이 약을 먹기 싫어했거든요.
저에게는 종교가 있어요, 천주교..
결혼하고 삶이 너무 힘들어 종교를 가지게 되었죠.
제발 부부사이가 좋게 해달라고, 내 마음의 독을 없애달라고, 남편을 예전의 사랑하던 그로 되돌려달라고,
그냥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나봐요. 기도가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너무나 사랑하는 아기를 위해 내 감정이 변화되기를 내 분노가 사그러들기를 기원해봅니다.
써놓고 보니 글제목은 '도와주세요'인데 글내용은 하소연이군요. 여기에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분노의 감정이 더더욱 제어가 안될 것만 같아서.. 그런데 이제는,, 너무 묵은 감정이 되다보니 써도 별 차이가 없네요. 정말 이대로 굳어져 가는 걸까요. 아기를 봐서, 그래서는 안 될 텐데 말이죠. 저희부부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한국의 많은 아내가 그렇듯이, 대개 남편에게 맞추고 살았습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요.
이제는 더는 그러기가 힘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