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번 주말이 저희 작은애 돌이에요.
크게 돌잔치 하지 않고 양가 식구들만 모여 식사합니다.
저희는 전남에 살고 언니는 경기도에 살아요.
보통 주말에 언니가 내려오면 금요일에 왔다가 일요일에 가는데
이번엔 형부가 일이 있어서 토요일 저녁에 왔다가 일요일 점심만 먹고 또 바로 간대요.
여덟살, 세살짜리 조카들도 있고 토요일 한창 막힐 시간에 왔다가
친정에 내려오는데 많이 머무르지도 못하고 바로 또 일요일 제일 막힐 시간에 올라가는 것이고,
오랜만에 내려와서 금방 가니까 좀 아쉽기도 하구요,
그래서 제가 말 끝에
"에구, 차 많이 막히는 시간에 오가면서 괜히 힘들겠네.. " 그랬습니다.
5월이면 어버이날 즈음에 늘 내려왔던 언니네 식구들인데
지난 주말에 내려왔으면 연휴고 해서 하루라도 더 머물다 가겠지만
지난 주, 이번 주 연속으로 내려오긴 어려우니까 보통 때와 다르게 어버이날 지나서
이번 주말에 내려오는 거에요. 저희 애 돌이 꼈으니까요.
그랬더니 언니가 좀.. 신경질적으로 대꾸합니다.
"너는 왜 그래? 너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왜 그렇게 말해?
우리가 즐겁게 잘 내려갈 건데 왜 힘들겠다느니 피곤하겠다느니 그런 말을 해?
니 애 돌잔치가 이슈니까 니가 우리 식구 초대한거나 마찬가진데 왜 그런 말을 해?" 그러네요.
순간 작년 여름에 엄마가 저한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작년 여름에 둘째 조카 돌 무렵에 언니네 식구가 강원도로 휴가를 갔는데
저희 엄마 입장에서는 애기도 너무 어리고 성수기 중의 가장 성수기 때 사람 많은데 오간다니까
엄마도 아이고 그 먼데까지 애기들 데리고 어떻게 가냐.. 그러셨다는데,
언니가 그때도 대뜸, 왜 재밌게 휴가가는 길에 재밌게 다녀와라 소리는 안하고 힘들겠단 소리 먼저 하냐고.
그때도 아마 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답니다. 엄마는 그게 또 서운하셔서 제게 하소연 하셨었지요.
엄마가 그래 잘 다녀와라 말씀을 안하신 것도 아니고,
엄마 입장에서, 애들 할머니 입장에서 당연히 걱정은 되시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언니는 '힘들겠다..' 그 말만 귀에 쏙 들어왔던 모양이에요.
언니 성격이 그런건지 생각하는게 다른건지 그런 식으로 서로 맞지 않을 때가 왕왕 있어요.
저는 어릴 때 부터 언니랑 나는 다르니까.. 생각하고 그냥 넘겼지만 아무래도
칠순 넘은 부모님은 그런 순간에 (부모님은 걱정하시는데 언니는 그 말이 너무 싫은.. ) 서운하셔서
제게 여러번 힘없이 말씀 하신 적이 많았어요. 언니는 대학가면서 부모님과 떨어졌으니 20년 넘게 따로 산거고
저는 대학도 결혼도 친정 가까이에서 했으니 주로 속엣 얘기는 제게 더 많이 하시거든요.
저희 언니 나이가 마흔 둘이에요. 대학 교수랍니다. 어릴 때 부터 영재소리 들으면서 공부 잘 했어요.
항상 어디서나 어느 분야에서나 1% 안에 드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지요.
공부만 했고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뭔가 좀 사고방식이 다른건가요.
보통 의례적으로.. 의미를 크게 두지 않고 그냥 나누는 인사말 같은거,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나봅니다.
부모님과 언니가 떨어져 산지 20년이 넘었고 매일 매일의 삶이 서로 달랐으니 부모님과 척하면 척! 하는 식의
대화는 나누지 못한지 한참 됐죠. 그렇다보니 부모님은 잘 있냐, 밥은 잘 먹었냐, 아픈데는 없냐.. 그러셨고,
조카들이 태어난 후에는 잘 크냐, 밥은 잘 먹냐, 유치원은 잘 다니냐, 학교는 잘 다니냐, 그렇게 되셨구요.
그런데 언니는 잘 있는데 왜? 밥 잘 안먹으면 왜? 목소리 들으면 아픈데 없는거 알면서 왜? 이런 식이에요.
아.. 전화 뿐만이 아니고,
부모님이 종종 언니한테 택배를 보내세요.
그러면 잘 도착했는지 잘 받았는지 무슨 말이라도 좀 먼저 해주면 좋을걸
꼭 부모님이 전화 걸어서 잘 받았냐. 받았으면 연락이라도 주지 그랬냐 잘 갔는가 궁금해서 전화했다.. 그러시면
언니는 또 요즘 세상에 택배 잘 오는데 무슨 걱정이냐 내가 굳이 잘 받았다 연락할 필요가 있느냐 그래요.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제 말에도 그렇게 대꾸하는 언니에게 그냥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거지, 무슨 나쁜 말을 한것도 아니고 먼길 오가는 사람 걱정되는건 당연한거 아니냐,
그냥 있는 그대로 듣고 그냥 알았다 잘 내려갈께 그러면 될걸 무슨 대화의 패턴이 왜 그런식이냐까지 따지느냐..
그랬더니 언니는 화내는 제가 이해가 안됐나 봅니다.
어찌어찌 그냥 좋게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는데 생전 문자 같은것도 먼저 안보내는 언니가
괜히 전화해서 화만 나게 만들었네 미안하다 잘자라.. 그럽니다.
그 문자 보는데 어찌 그리 또 제 속이 답답하고 속상하던지 괜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그런식으로 부모님과 늘 사이가 삐걱거리는 언니와 부모님을 옆에서 지켜본게 20여년이 흘렀으니까요.
언니가 안하무인이라거나 경우를 모르거나 (아.. 경우는 좀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드네요;;)
냉정하고 신경질적이고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애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죠.
그런데 그 '이성'과 '합리'가 종종 이런 서운함을 불러일으키고
늙으신 부모님은 그 서운함이 쌓이시고 옆에서 보는 저는 같이 속상하고..
그러다보니 제가 대뜸 화를 냈나봅니다. 언니 입장에서는 좀 황당했을 것도 같네요.
남들은 어떤지 궁금해졌어요.
먼길 오가는 형제 자매와 미리 통화하면서 조심히 와라, 피곤하겠구나.. 그런 말씀 안하시나요..?
저희 언니 생각처럼 즐거운 귀향길이 될텐데 뭐하러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하느냐.. 그런걸까요..?
모르겠네요.. 모르겠어요..
저는 저희 언니가 있어서 참 좋아요. 오빠도 있지만 오빠와 나눌 수 없는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눌 수 있고,
결혼하고 시댁일이나 애들 키우면서 궁금한 것들 상의도 할 수 있고,
먼저 문자 오거나 전화하는 언니가 아니기에 언니한테 뭐라도 문자한번씩 오고 먼저 전화 걸려오면 참 반가워요.
멀리 살아서 서너달에 한번씩 밖에 못 만나니까 서운하기도 하고 와봤자 주말에 잠깐 있다 올라가면
그 시간동안 잠깐이라도 언니랑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친정에 들락날락하고 그래요.
아 그런데 어제 통화하면서는 그 순간에 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뭐가 답답하고 뭐가 짜증이 나는건지 구체적으로 정리가 안되는데
오랜세월 묵혀오고 쌓여온 자잘한 것들이 이제 막 출렁이는 것 같아요.
아.. 정말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