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입니다.
1년 정도 연애하고 작년 10월 말에 결혼한 새댁입니다.
저는 36, 남편은 41입니다.
이제 7개월째 접어드네요.
결혼하고 초반 2개월은 둘이서 엄청 사소하게 싸워댔던지라 결혼을 왜 했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그랬는데,
조금 적응도 되고, 남편과 같은 스타일과 살기엔 어떤 자세가 필요할지 공부도 해보고
(레몬테라스에서 부부싸움 얘기 읽은 게 도움이 됐어요. 성질도 죽이고...ㅜㅜ)
한 뒤로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올해 3월 아빠가 많이 편찮으셨을 때는 밤에 잠이 안 올 때 남편의 팔이나 손을 잡으면
마음이 안정이 돼서 결혼하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구요.
누군가 내 편이 있는 게 좋구나 하는 마음 말이에요.
그런데 어제 또 크게 싸웠습니다.
닷새전 밤 잠자리에서 아기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남편을 만나면서 남편은 아이를 바라고,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부부의 합의된 의견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는 낳아야겠구나 라고 생각을 바꿨습니다.(지금도 계속 스스로를 세뇌 중입니다.)
결혼 전에도 이 부분을 얘기했고요. 아이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 나의 그릇 등 고민되는 부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할 테니, 기다려주고 같이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작년 연말 또는 올해 3월쯤으로 생각하던 결혼이 10월 30일로 당겨졌어요. (궁합을
보고 오신 시어머니께서 꼭 그날 해야 한다고 하시고, 저희집에서도 이왕이면 좋다는 날로 하자고-저희 집은
11월 중하순을 밀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때가 추석이었어요;;
1달 반만에 상견례와 이사(둘다 외지에서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결혼까지 다 해치운 거죠.
여튼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이 아이를 갖자고 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부터 싸운지라,
저는 시간을 좀더 가지고 적응이 된 뒤에 갖고 싶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결혼했다면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을 시기이니 나에게 시간을 좀 줘도 되지 않나 했던 거고요.
그리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검사 받을 것도 미리 받고 준비해서 가졌으면 좋겠다고요.
좀 허약하기도 해서, 다니는 한의원에서는 몸을 좀 만들고 애를 가지라는 조언도 했지요.
(애가 3명인 그 선생님은, 결혼한 제 친구에게는 어서 아기를 낳으라고, 아기를 낳으면
정신적인 문제-스트레스-도 해결될 수 있다고 하신 분이구요.)
10월에 회사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쪽에 문제도 있었던지라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있다고, 3월쯤 다시 검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남편과는 이러저러하니, 3월쯤 검사를 받고 괜찮으면 그때부터 노력해 보자 했지요.
그 사이 1월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둘다 적게 버는 편인 아니지만 많이 버는 편은 아닌 딱 중소기업 중간관리자 월급입니다.
결혼하고나서 살림을 합치고 보니, 남편이 넣고 있던 적금까지 쳐서, 둘이서 버는 돈을
다 털면 저희 살림규모에 맞더라고요.
하지만 일단 구조조정인지라 위로금도 나오고 실업급여도 나올 거라,
차라리 1년쯤 고생을 하더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원래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 둘이 아니라 애까지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남편이나 저나 10년쯤 후에는 회사 생활을 접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 할 시점인데,
그때면 한참 돈이 들어갈 타이밍이고 둘다 불안정하면 가계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라고 생각해서요.
회사를 그만둔 지금 시점이 차라리 저에게는 진로를 바꿀 시기인데,
지금 무언가 사업을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보단 안정적으로 정년까지 일하고(정년 후에 저희 노후도
어느 정도는 보장되고요), 중간에 남편이 진로를 바꾸게 될 때도 쫓기지 않고 여유있게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점점 꼭 시험에 붙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3월 아빠가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3월 한달의 반절은 부산 친정에 가 있었다고
봐야 할 거예요. 회사를 다니지 않아 참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도 고마웠고요.
그리고 4월에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한번 치고, 6월에 있는 서울시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집에서 인강으로 공부해요)
그리고 닷새 전 밤에 남편이 산부인과 다녀왔냐고 하더라고요. '아직 못 갔다, 귀찮기도 하고
(제가 이렇게 말했나 보더라고요.-반성합니다.) 시간 내기가 안 좋네. 가봐야겠다.' 그랬습니다.
근데 실은 전 좀 고민이긴 했어요. 올해 시험은 아무래도 힘들 테고, 그럼 내년에는 붙어야 하는데
지금 임신을 한다면-물론 맘처럼 된다면 말이죠- 내년 초가 예정이잖아요.
9급 공무원 시험은 3월에 국가직, 5월에 지방직, 6월 초에 서울시 이렇게 3번 볼 수 있습니다.
내년도 시험을 못 친다는 얘기는 그 다음해로 넘어간다는 거고, 혼자도 아니고 애를 데리고
공부를 해서 시험을 붙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실미도라고 웃픈 이야기들 하시잖아요-.
그래서 계속 고민이었죠. 저나 남편이나 적지 않은 나이이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아이를 가지면
향후 몇년간, 심하게는 계속 경제적으로 힘들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여튼 그 다음 날 아침부터 남편이 이상하더라고요. 눈도 안 맞추고, 물어보는 거에 단답형 대답 말고는
대화도 없고, 어버이날 시댁 선물 때문에 얘기를 해도 짜증스러운 답.
무슨 일이 있냐고 해도 아니다, 나한테 화가 났냐고 해도 아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회식이라고 12시 귀가했더라고요.
그날 저는 산부인과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하지 않은 초음파를 했는데,
자궁에 혹이 최소 2개, 각 5센티, 7센티 정도 된다고 수술하는 병원에 가라고
다음 주에 다른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소견서를 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잘하는 병원에서는 복강경으로 수술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개복을 권할 수도 있다고
그건 수술하는 의사가 결정할 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12시 넘어 귀가한 남편이 1시쯤 침대로 들어오고, 자궁근종 얘기를 했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복강경 수술을 잘한다고 유명한 병원이 있더라며, 거길 가보겠다고도요.
남편은 '꽤 크네. 소견서 기다리지 말고 빨리 가봐'라고만 하더군요.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 그냥 지나갔습니다.
1시에 내일 출근할 사람 붙잡고 뭘하겠어요.
그리고 남편은 다음날은 지인을 만난다고 11시 귀가,
어제는 사우나 다녀온다고 연락한 뒤 12시 넘어서 귀가했더라고요.
원래는 어딜 가거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사우나는 한달에 한번 정도)
대화를 피하는 거죠.
어젯밤에는 마지막 부부싸움 후에 효과를 본 방법대로,
자기 전에 남편을 안고 얘기를 나눠보려고 자러 들어가자고 했더니 좀 이따 자겠다고 하더라고요.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서 얘기를 꺼냈습니다.
나흘 동안의 이상한 태도며, 아프다고 한 데에 대한 오빠의 반응도 이상하다, 분명 무언가 일이 있다고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니 결국은 애 문제로 화가 났다고 하더군요.
본인의 나이며, 주변의 압박(주변의 모든 사람이 애 소식 없냐고, 안 가지냐고 묻는다네요.), 게다가 본인은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내 의견 때문에 자신이 다 감수하며 참고 있는데,
저는 가겠다고 한 산부인과도 4월 내도록 가지 않았다는 점에 화가 난 거지요.
그리고 공무원 시험이 아이를 가지는 것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제 생각에도 화가 나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너무 계획을 세워서 살려고 하는데, 어차피 그건 자꾸 흐트러지는 거고 변하는 건데
그냥 순리대로 살면 되지 않냐고, 돈이야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않냐고,
제가 세우는 모든 계획은 '제'가 우선이지, 가족을 위한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10년 후에 우리가 다 잘 살자고 하는 거고, 미래가 좀더 탄탄했으면 좋겠고,
힘든 시기에 남편 혼자서 짐을 지지 않으면 좋겠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 거다 라고 했지만,
남편은 그게 결국 다 제 욕심이라고 하더라구요.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대답은 안 했지만, 실은 제 친구들은 상당수 제 의견에 동의해요.
어려운 문제이긴 하죠. 아이도 급한 나이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낳기엔
제 걱정과 불안이 너무 크고요.
남편은 먹고 사는 문제와 노후는 자기가 걱정하고 책임질 부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남편이 좀더 큰 책임을 질 순 있더라도, 기본적으론 공동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요.
한쪽이 지치지 않도록 가사든 사회든 육아든 같이 나눠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야 한쪽이 지쳐서 잠시 쉬고 싶을 때 쉬라고 할 수 있는 거고요.
실제로 쉬지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서 언제든 쉴 수 있어 하는 마음이 있으면
살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오래된 제 생각이고, 지금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문제가 더 심각하네요.
남편이 화가 난 부분은 조금은 이해가 돼요.
본인과 본인 주변의 여자들(누나, 친구의 아내들 등)은 모두 애가 우선인데, 저는 그렇지 않으니
이해가 안 되겠죠. 이해는 안 되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이니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봤다고, 하지만
저는 전혀 제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으니 화가 난다내요.
게다가 본인의 나이도 있고, 성적으로 감퇴된다는 느낌도 있으니, 더더욱
애를 빨리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요.
저는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주변에서도 무척 뭐라고 하는 모양이에요.
(저는 친정 엄마 말고는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남편은 제가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게 싫대요.
(결혼 초에도 이런 문제로 한번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장기적인 여행 계획이었죠.)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닥치면 닥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고요.
남편의 생각도 틀리진 않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요.
너무나 다른 우리 두사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정신수양이라도 해서 내려놓고 남편과 맞춰야 할까요?
하지만 솔직히 무척 속물적인 저는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요.
애한테 기본적인 건 해주고, 1년에 한번 정도는 해외는 아니라도
제주도라도 가족여행을 가고, 10주년, 20주년, 이런 큰 날에는 좀 좋은 곳에도 가고 싶고,
저희 노후 준비도 해서, 정년 후에는 남편과 제가 손잡고 여행도 다니고
텃밭도 가꾸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큰 욕심일까요?
앞으로 남편과는 어떻게 얘기를 풀어나가면 좋을까요?
지혜로우신 선배 여성이자 엄마, 아내이신 분들의 의견 달게 듣겠습니다.
긴 글 읽어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지어 화창한 토요일 오전에 말입니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주절주절 써봤습니다.
혹시 시간내서 끝까지 읽어봐 주신 분, 마음 써서 댓글 달아주실 분께는 미리 감사드립니다.
82에 있는 친구가 알 거 같지만, 모른 척해 줄 거라고 믿어요;;
다들 평화로운 주말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