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가 9회 만에 시청률 1위에 등극했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온 ‘적도의 남자’가 본격적인 극 전개와 더불어 연기자들의 호연으로 드디어 그 빛을 발휘했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김인영 작가의 전작 ‘태양의 여자’를 접했던 경험을 빗대어 봤을 때 1위 등극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적도의 남자’의 출발은 시청률로 평가받지 않았다. ‘적도의 남자’는 극 전개가 언제 급물살을 타 고조에 오를 지에 따라 무섭게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적도의 남자’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18일 9회분에서 그 가능성이 실현되었다. 잔잔했던 극 물결이 13년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폭풍처럼 휘몰아 감겼다. 하지만 이제 막 선우(엄태웅 분)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처럼 ‘적도의 남자’는 아직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적도의 남자’는 탄탄한 스토리에 극적 장치가 다분한 작품이다. 꼬여있는 실타래를 풀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주인공들의 얽히고 얽힌 운명과 욕망, 배신이 보인다. 여기에 작가는 치밀하고 내밀한 극적 요소를 주인공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작가는 캐릭터를 설정과 더불어 4명의 주인공들을 어우러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최수미(임주은 분)의 직업도 그 중에 하나다. 작가는 수미의 직업 ‘극 사실주의 화가’를 통해 주인공 선우(엄태웅 분)의 이야기를 표현할 것으로 보인다. 극 사실주의는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처럼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 그림들은 수미가 향후 장일(이준혁 분)을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기 위해 이용할 수 있을 가능성을 내비친다.
9회분에서도 극 사실주의 화가로 성공해 전시회를 여는 수미는 장일만을 위해 초대장을 준비했다. 장일에게 무시당했던 지난날을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려는 것도 있지만, 선우를 벼랑 끝으로 내몰린 범인이 장일이라는 사실을 안 수미가 그를 사로잡기 위한 계략을 펼칠 기회로도 볼 수 있다.
점자를 그린 장면도 이 같은 이유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미 작가는 앞으로 극 사실주의 화가로 설정된 수미를 이용해 시청자에게 내비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검사가 된 장일(이준혁 분)도 마찬가지다. 지난 8회분에서 법대생으로 견학을 간 법정에서 그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법정에 세우고, 심적 고통에 시달렸다. 13년 후 장일은 완벽한 비주얼과 명석한 두뇌, 화려한 언변술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서울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가 되었다
자신의 죄를 숨긴 채 다른 이의 죄를 심판하는 그의 직업으로 인해 장일은 덧대지는 죄목이 쌓이고 있는 상태다. 누군가를 법정에 세우는 장일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을 때 어떤 광기가 피어오를 지도 기대되는 이유다.
‘적도의 남자’에는 특정한 주인공 어느 한 명에게 비중이 쏠려있지 않다. 엄태웅의 욕망에 대한 분노, 그런 욕망에 대한 분노를 감싸줄 이보영의 사랑, 이준혁의 이유 있는 욕망의 분출, 그리고 이준혁의 욕망을 이용하려는 임주은 등 4명의 주인공들은 여느 4각 로맨스보다 치열하고 숨 막히는 상대자로, 적대자로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고, 연결시켜야 한다. 어려울 수 있는 과정이지만, 쫀쫀한 스토리와 극적 장치가 마련된 상태이기에 기꺼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연기자들의 완벽한 캐릭터부합이 더해지니 ‘적도의 남자’는 진정한 웰메이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기에 ‘적도의 남자’의 1위 등극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