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느 일요일로 기억합니다.
당시 살던 집이 단독주택이 많은 주택가라 휴일 오후에는 조용했어요.
더구나 저희 집은 대로변이나 큰길에 있지 않고 약간 오르막길
안쪽 골목에 한참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죠.
그날은 다른 가족들은 모두 각자 일로 외출을 나가고
집에 어린 저랑 저희 어머니만 있었어요.
흐린 하늘 어둑어둑해질 저녁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 잠시 오후에 자다가 일어나 졸린 눈으로 엄마 옆에 있었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거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누구세요? 물으니 목소리가 잘 안들려서
현관문을 열고 문쪽을 향해 누구냐고 더 크게 물었어요.
마당이 그리 넓지 않은 작은 단독주택이었거든요.
그랬더니 밖에 한 아저씨 (비교적 젊은)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주머니.. 제가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데
밥 좀 얻어먹을수 없을까요?"
이러더라고요.
정확한 단어는 기억 안나지만 , 분명 밥을 못먹었으니 밥 좀 달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말투가 이상하거나 술취한 사람 목소리 같지 않고
비교적 차분했습니다.
지금도 그 음성의 색깔이랄까 그런 게 또렷히 기억나요.
어머니는 (아무래도 집에 저랑 단둘이만 있으니)
문을 열어주지 않고 죄송합니다, 밥이 없어요... 라고 대충 말씀하고 그 남자를 보냈던걸로 기억해요.
그 남자는 돌아가며 다른 집 벨도 누르고 그랬던 거 같아요.
전 그때 상황이 참 무서우면서도, 그 남자의 말이 꽤 진지해서
저 이가 진짜 배고픈 사람이라면 얼마나 불쌍한가...싶어
미안하고 너무 안타까운거에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무서웠어요.
그때가 80년대 후반이었고, 다들 사는 형편이 비슷비슷한
평범한 (2층 양옥이 대부분인) 주택가 동네라
마치, 전설의 고향 드라마 속 같은 대사를 현실서 직접 들으니 뭔가 무섭더라고요.
가끔 잡상인은 있었지만 저런 사람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어요.
그때 자다가 일어나서인지 그 순간이 마치 꿈같아요.
아무튼 별일은 없었지만
그때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꽤 오랫동안 가더라고요.
진짜 배고픈 이였다면... ;; (죄송합니다. 그때 저희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오랫동안 마치 영화 한장면 처럼 기억 속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