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못했던 말들, 지금은 그래도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서 좀 해볼까 해요...
엠비정권과 새누리당과 박근혜라는 '거대악'에 대한 여러분의 적개심은
당연해요. 지극히 당연해요. 실상을 잘 알면 적개심을 안 가지는 게 이상하죠. 맞아요.
그러나, 부디 부탁이니 그 적개심을, '거대악'을 찍는 일반 유권자들에게까지 돌리진 말아주세요.
그들때문에 나라가 이모양이죠. 맞아요. 그러나.....
유권자들은 우리가 탓할 대상도 계몽할 대상도 아니고, 그저 설득하고 포섭하고 끌어안아야 할 사람들이에요.
다들 머리 굵은 성인들이예요. 자기 생각을 쉽게 버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실 선거만 아니면 미워해도 되죠. 안봐도 되고 무시해도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투표권을 가진 이상,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죠. 어쩔 수 없잖아요.
새누리당을 찍거나, 투표를 안 하는 사람들,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이제 뒤로 하고,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부터 우선 해주세요.
여러분들의 눈에 비친 유권자들은 솔직히 이렇지 않나요?
새누리당 찍는 사람들은 역적, 무투표자들도 반은 역적, 부동층은 투명인간인지 안보이고......
새누리당 찍는 게 옳다고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니라,
지역패권이건, 레드컴플렉스건, 이권이건, 그런 게 중요한 사람들이 한국엔 아주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시라고요.
그리고 부동층을 제발 인정해 주세요.
'새누리 콘크리트' 가 아니면서도, 엠비심판만 중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역시 인정해 주세요.
또한, 저처럼 새누리당은 당연히 악이지만, 그럼에도 야권 특히 친노나 나꼼수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해'는 안 가더라도 '인정'은 해 주세요.....
세상 사람들이 이 정권과 새누리당의 실체를 알기만 하면 같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어쩌겠어요. 사람들의 생각과 성향은 너무나 다양해서 도저히 그게 되질 않는 걸요.
똑같은 걸 보면서도 서로 정반대의 말을 할 수 있는 게 인간인 걸요.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틀렸다는 것만 자꾸 생각하면서,
저 절대악을 처단해야 한다는 적개심만 붙잡고 있으시면, 이런 결과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왜. 야권이 여러분과 같은 정서로 선거에 임했잖습니까.
엠비심판 정권심판만 외치고, 정작 제대로 된 지역 공약이나 거시적 정책은 뭘 보여줬나요? 없잖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거기서 거기라는 한계만 잔뜩 노출하고요...
제가 나꼼수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도 그래서예요.
이런 야권의 한계를 제일 심각하게 품고 있는 게 다름아닌 나꼼수라고 생각해요. 또는 김어준...
제가 나꼼수를 다 들은 건 아니지만, 나꼼수의 내용이 대부분 정권 비판이었죠? 새로운 컨텐츠가 아니었죠?
또한, 김어준이 주도해서 비키니 사과를 거부하고, 김용민 사퇴를 거부하고,
거꾸로 카퍼레이드로 세를 과시하는, 최고 "강경파" 노선을 유지했는데,
이런 게 평소에는 몰라도, 막상 가장 중요한 선거에선 결국 패착이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우리의 컨텐츠 없이 '적'들의 잘못만 까발리는 건, 사실 생각만큼 그리 파급력이 넓지 못한 반면,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이 이명박에게 졌을 때 이미 검증된 거죠....)
김어준식의 강경한 "우리편 사수, 무조건 전진" 방식은 그 지지자들에게만 먹힐 뿐, 부동층에는 악영향을 끼치니까요.
솔직히 카퍼레이드 보면서, 다른 지역은 몰라도 최소 김용민 본인 선거는 어쩌려고 저러는 건가 심히 놀랍더군요.
지지자들이야 함께 즐겁겠지만, 그 외 사람들에겐 도저히 용납될 수가 없는 거잖아요.
납작 엎드려서 잘하겠습니다 읍소해도 모자랄 판에. 어휴....
문재인 비롯한 친노 역시, 참여정권의 과오를 반성하긴 커녕,
민주당 기존 인물들을 구태니 뭐니 대거 몰아내고 자기들 세력으로 당을 휘어잡아 놓고는
컨텐츠 부재에 전략 부재와 인물난만 드러내고 만 무능함을, 철저히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아무튼, 야권 정치인들도, 나꼼수도, 지지자들도, 정권심판에 매달려서는 정말 안 돼요.
사실상 이번 선거는 이미 엠비가 아닌 박근혜로 공이 넘어가버린 거였어요.
그런데도 엠비정권 심판만 외치고 정작 스스로는 좋은 모습 못 보여주다가 이리 된 거죠.....
컨텐츠가 필요합니다. 전략이 필요해요. 그리고 부동층을 늘 고려해야 하고요.
선거를 전쟁보다는 차라리 영업, 장사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부동층이나 저쪽 지지층을, 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얹어서 적으로 간주하는 게 아니라
영업사원의 마인드로 그들에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거죠.
라면시장 보세요. 농심라면이 질이 더 안좋고 나쁜 기업이고, 삼양은 억울한 피해자고 속에도 좀 편한 편이고.....
이런 사실이 많이 알려지면서 판매양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농심의 1등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죠.
그러나, 꼬꼬면 나가사끼짬뽕이라는, 전혀 새롭고 흥미로운 '컨텐츠'가 등장하자,
라면업계 판도가 확 바뀌어 버리잖아요. 졸지에 농심이 뭔가 구태의연해 보이고.
또한 라면 자체에 대한 관심이 확 늘어나서, 평소보다 라면 한 개라도 더 먹게 되고요.
이런 걸 야권에 원하는 겁니다.
지금 투표율 보세요. 60%도 안 돼요. 정치 자체가 희망과 비전을 주지 못하는 겁니다.
현정권을 심판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투표장으로 가는 숫자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비전을 주는 정치세력이 있을 때, 내 한 표에 희망이 보일때, 뭔가 색다르게 맛있어 보이는 꼬꼬면이 등장할 때,
비로소 투표장이 북적이게 되는 겁니다. 그 역할을 야권이 해야 하는 거구요.
야권이 속히 이런 마인드를 갖추려면, 우리가 변하는 게 우선입니다.
지지층인 우리의 마인드가 바뀌면, 야권 정치인들도 따라올 수 있어요.
그러니 부디, 이 나라에 대한, 특히 '옳지 못한' 유권자들에 대한 개탄과 분노를 좀 줄여주시고,
냉철하게 야권의 쇄신을 요구해 주세요. 정책 개발을 요구해 주세요.
'저쪽' 사람들에게 정권을 심판하자는 '바람'이 아닌, 함께 밝은 미래를 설계하자는 '햇볕'을 쬐어줘서
다음엔 꼭 승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