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이십 여 년 됐네요...
남편은 출장중이었어요, 큰 애 네 살때이구 둘짼 뱃속에서 6,7개월쯤...
한여름 새벽이었어요.
월드컵 축구로 나라가 난리도 아니었구, 경기 중계 끝난 새벽 3시 경이구요.
자는데, 누가 등을 두드리는 겁니다.
남편이 돌아왔나 싶어, 어, 왔어 하구 돌아눕는데
식칼을 들이대더군요.
벌떡 일어났어요.
조용히 건넌방으로 들어오라더군요.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초반쯤 되는 룸펜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서울 혜화동 시장관사 좀 아래께 있는 다세대 주택 반지하 위 일 층에 살았구요.
제가 임신중이라고 사정했지만 ,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
근데 , 마침 큰애가 깨서 엄말 찾으며 안방에서 나오는 겁니다 .
부들부들 떨렸는데 , 애한테 혹시 해꼬지할까 겁나서요 , 제가 당한 건 암것도 아니더라구요 .
다행히 그 놈이 애한테 가 보라며 돈 갖고 있는 거 다 내놓으라구 ...
현금 십 만원밖에 없다니까 카드랑 비밀번호 얘기하래서 알려 줬어요 .
신고하면 죽인다면서 나가더군요, 애 붙잡고 멍하니 있다 날이 밝길래 나가봤어요 .
텅빈 골목에 아무도 없더군요 , 나중에 보니 골목으로 향한 건넌방 창문에 퍼런 나일론 재질 방충망을 라이터로 지져 구멍을 내고 들어왔더라구요 .
정신 차리고 경찰에 신고했어요 .
제가 지금까지 더 상처로 남은 건 그 경찰이에요 .
그 놈보다 다 명확하게 기억나는 얼굴도 그 경찰이구요 .
신고받고 경찰 둘이 왔어요 , 하나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 중 젊은 경찰이 저를 심문하더군요..
그 놈이 어떻게 하더냐고 , 아주 상세히 말하라고 ...
어이없어하니 건넌방 침대에 걸터앉아서, 이렇게 저렇게 자기한테 행동으로 설명해 보라구 ...
너무너무 수치스러워 꼭 그래야되냐구 물었더니 그래야 된대요 .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건 변태쪽이었다고밖에 결론이 안 나요...
평소엔 똑똑하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 그날은 제가 멍청이가 된듯 아무런 판단이 서질 않았어요 , 마치 표백처리된 백짓장이 된 기분이랄까... 강도한테 반항하거나 경찰한테 항의하지도 못 했어요 .
막상 그런 상황에 부닥치니 , 제가 넘 무기력해지더군요 ...
경찰한테 두 번 당하는 느낌...
간신히 경찰한테 그만 가 달라고 했어요 , 나중에 경찰서에서 다시 연락오길래 , 신고 취소한다 했구요 .
그때 당시만해도 사회 분위기가 성폭행이나 이런 게 지금처럼 표면화돼서 이슈가 되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누군한테도 말 못했어요, 심지어 친정 동생한테도...
지금까지도 제겐 가슴 깊숙한 곳에 상처로 자리잡혀 있어요 .
그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지금 여고생이에요, 그 일 때문인지 아이가 애기때부터 어른 남자를 넘 무서워하더군요.
엘리베이터에서 아저씨들 보면 막 울고 그랬어요, 좀 클 때까지 영화도 못 봤어요, 큰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래서요.
다행히 '아이 엠 샘'이란 영화부터는 극장에서도 보더라구요.
전 너무나 이 사회가, 남자들이 무서운데
그렇게 큰 우리 딸애는 지금은 천방지축이에요. 아무리 해 지기 전에 들어오라 해도 잘 모르네요.
우리 딸애한테만은 그런 일을 막아주고 싶어요.
그 당시 주인이 시의원 나간다고 설쳐대던 인간인데 제 사고에도 귀찮은듯 나몰라라 하다
방충망 없애고 보안창살 설치해달랬더니, 밍기적거려 방빼달래서 이사나왔더래죠...
이번 수원 사건도 그 경찰이 깁급조치 안 하고 변태처럼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니 오랜 상처가 덧나는 듯 싶네요...
그리고...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 기필코 그 놈과 혜화 경찰서 소속 그 경찰놈을 수소문해서 꼭 그 면상에 대고 제 얼굴을 똑똑히 각인시켜 주고 싶어요 . 그 때 너희가 능멸했던 그 임산부라구 ....
절대로 가능하지 않겠지요 ....